해는 이글이글 타올랐다. 그리고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 강렬했다. 이른 아침이지만 날씨는 한여름의 낮처럼 뜨겁고 후덥지근했다. 여름이 한 발짝 다가오는 시기였다. '휘황찬란한 유리벽이 둘러싼 높은 건물 안으로 사람들이 바삐 움직인다. 솔지도 그중 한사람이었다. 오늘도 솔지는 깔끔하지만 세련된 스커트정장에 아찔하게 높은 하이힐을 신고, 매끈한 다리를 뽐내며 발걸음을 옮겼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그녀의 머리에선 은은하게 샴푸향이 풍겨져 나왔다. 그녀는 완벽한 여자였다. 본인의 생각만 그러할지 모르지만, 얼굴도 그만하면 빠지는 얼굴이 아니었고 학벌도 꽤 좋은 편이었다. 거기다 지금 다니는 직장은 더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 물론 임용고시에 몇 번이고 떨어졌다는 것이 흠이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국내에서 손꼽히는 소위 대기업이라는 곳에 입사한지 어언 세 달이었다. '이따금씩 불어대는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솔지는 오늘 아침도 만족스럽게 시작하려 했다. 물론 그것은 사무실을 가기 전까지였다. ‘홍보팀’이라고 쓰인 팻말을 보며 솔지는 그 앞에서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서성거렸다. 언제나 그 홍보팀 앞에만 서면 그녀를 조여 오는 위압감에 숨이 막혀버렸다. 남들 앞에서 완벽하면 뭐하겠는가. 사무실 안에만 들어서면 꼭 자신이 저능아, 바보, 천치가 되는 기분이었다. '들어가기에 앞서 창밖에서 빠금히 안을 넘겨다보았다. 몇몇의 직원들은 야근을 했는지 늘어지게 하품을 해대고 있었고, 아침부터 바삐 뛰어온 여직원들은 분주한 손놀림으로 화장품을 얼굴에 바르고 있었다. '그래, 이것은 어디에나 있는 풍경이었다. 그녀가 두려워할 이유는 이 속에 한 가지도 없었다. 하지만 시험을 앞둔 수험생처럼 긴장되고 두려움에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솔지는 입모양으로 ‘위스키’를 외치며 억지로 미소를 지어보였다. 속으로는 몇 번이고 기도를 하면서. '‘천지신명님, 부처님, 하느님, 예수님 부디 이 어린 양을 굽어 살펴주시옵소서.’'두 손을 정갈하게 가슴에 모으고 정성껏 기도했다. 마치 절실한 신자처럼 빌고 또 빌었다. 항상 부서에 들어가기에 앞서 치르는 신성한 의식(儀式)중 하나였다. 없는 신, 있는 신, 다 불러가며 치성(致誠)을 올리고 마음이 안정될 때쯤 문을 열었다.'“좋은 아침…….”'그녀를 뒤덮은 검은 그림자, 그리고 등 뒤로 타고 드는 사악한 오로라, 순간 온몸에 한기가 밀어닥쳤다. 생선 머리처럼 댕강 토막 난 말을 정리하기도 전에 솔지는 등 뒤에 누군가를 직감했다. 항상 같은 사람 때문에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기 때문에. 출근시간을 바꿔 봐도 왜 항상 저 인간하고 겹치는 것일까. 아, 벌써부터 몸서리가 쳐진다. '“신혁 씨! 이제 출근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