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히 20평은 되어 보이는 방 안. 아이 혼자 쓰기엔 꽤나 너른 공간이었다. 한쪽 면을 채우고 있는 책장엔 온갖 책이 가득 꽂혀 있었고, 그 맞은편엔 여러 가지 로봇들과 진귀한 장난감이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방 안은 금천댁이 가져다 놓은 여러 가지 과자들로 인해 달콤한 향내가 솔솔 풍기고 있었다. 얼음이 담긴 차가운 주스 잔에 물방울이 서리기 시작했다. '재호는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여자아이의 눈을 바라봤다. 양쪽으로 쫑긋 묶은 귀여운 갈래 머리. 자신보다 반 뼘 정도 큰 키. 하얀 얼굴에 동그란 눈. 체리 같이 오밀조밀 부드러워 보이는 빨간 입술. 하얀색 불투명 면 스타킹에 무릎까지 오는 원피스는 아이에게 잘 어울렸다. 오늘은 아버지가 새로운 가족을 소개해 주겠다고 했던 바로 그날. 어른들은 1층에서 한 참 얘기 중이었고, 재호와 아이는 재호의 방으로 안내되었다. 어른들 말씀이 끝나실 때까지 재호는 이 아이와 단둘이 이곳에 있어야만 했다. 왠지 자신을 친근하게 보는 것 같은 아이의 눈에 재호가 입술을 삐죽였다. '순간 재호가 날랜 손놀림으로 아이의 갈래 머리 중 한쪽을 잡아당겼다. '“아!”'여자아이의 입에서 작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한쪽 머리 끈이 풀리며 아이의 머리는 짝짝이로 우스꽝스럽게 변해 버렸다. 재호가 심술 맞은 표정으로 손안에 있는 아이의 머리끈을 꼭 움켜쥐었다. 잠시 그런 재호를 말없이 바라보던 아이가 이내 나머지 묶여 있던 한쪽 머리를 제 손으로 풀어 버렸다. 그러자 굽슬굽슬 긴 머리가 아이의 얼굴을 감싸고, 아이는 금세 방금 전 갈래머리 귀여운 아이가 아닌, 예쁜 소녀가 되어 버렸다. '“머리 푼 게 더 낫지?”'입을 여니 쏟아지는 낭랑한 말과 또렷한 목소리. 자신의 심술궂은 행동에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유유히 대처하는 아이의 모습. 그것은 아이가 재호 자신과 잘 지내고 싶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행동이기도 했다. 재호의 입술이 꾹 다물렸다. 그런 재호를 바라보며 아이가 오른손을 쭉 뻗어 재호 앞으로 내밀었다. '“나는 최윤조. 너보다 두 살 많아. 반가워.”'윤조가 재호를 향해 배시시 웃어 보였다. 그러자 윤조를 바라보는 어린 재호의 얼굴이 일순 발그레해졌다. 최윤조 10살, 범재호 8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