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은 그렇게 굳어 있는 경훈을 잠시 지켜보다가 조용히 속삭였다.'“같이…… 잘래요?”'흠칫, 그가 긴장하는 것이 느껴졌다. 옆얼굴이 돌처럼 굳어졌다. 어금니라도 악문 사람처럼 힘이 들어가 있었다.'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아니.”'지원이 물끄러미 바라보자 그가 다시 말했다.'“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기방어야.”'자기…… 방어?'지원은 그 말이 뜻하는 바를 알 수 없었다. 무엇으로부터, 무엇을 방어한다는 말인지…….'“자유연애 하자고 했었지?”'그의 질문에 지원은 그랬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난 네가 그런 연애를 하자고 하는 이유가 너 자신을 뭔가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거라고 이해했다. 내가 제대로 짚었나?”'그녀의 입술이 조심스럽게 움직였다.'“아마, 비슷할 거예요.”'그러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럴 수 있지. 네가 가진 상처가 어떤지, 얼마나 큰지 난 모르니까. 그런데 나 또한 인간인지라 나 스스로를 보호하고 싶은 본능이 있거든.”'그가 씨익, 씁쓸하게 웃더니 말을 이었다.'“널 향해 질주하는 내 마음을 어느 정도는 제어해야 할 필요가 있어. 넌 이미 끝을 생각하고 이 연애를 시작했지만 난 끝이라는 것 자체를 생각해 보지도 못했어. 널 좀 더 알아야겠다. 미치게 폭주하는 미친 말처럼 달리다가 스스로도 제어할 수 없을 정도까진 가고 싶지 않거든. 어쩌면 그 때문에 널 다치게 할지도 모르고. 그래서 나 또한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나 자신을 방어해 볼 생각이다. 네가 방어하려고 하는 것이 뭔지 알게 될 때까지 나도 나 자신을 지켜보려는 시도는 해야지. 안 그러면, 널 안아 버리면…… 지금보다 더 욕심날 것 같으니까. 자유연애 하자던 약속 따위 다 잊고 네 모든 걸 원하게 될 것 같으니까.”'그러다 갑자기 피식,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그런데 이것도 개소리야. 언제 이런 말 했는지도 모를 만큼 본능을 앞세울지도 모르지. 아마, 이 방문을 열고 들어가는 즉시 후회할지도 모르고. 그래도 네 방어벽이 무너질 때까지 최대한 참아 볼 생각이다.”'지원은 그의 미소를 보며 조용히 말했다.'“힘들 거예요. 아니, 선배는 못할 거예요. 내 방어벽은 무지 높고 견고하거든요.”'그가 눈살을 찌푸린다. 지원은 쓸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너무 크고 높아서 나 자신도 어쩔 수 없는 거거든요. 짧은 순간에 만들어진 게 아니라서, 오랜 시간 다듬어지고 내공까지 쌓인 방어벽이라 웬만한 바람에는 끄덕도 안 해요. 그러니까…….”'지원은 그의 눈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애쓰지 말아요. 그냥 안고 싶으면 안고, 보고 싶으면 보고, 입 맞추고 싶으면 입 맞추고…… 그렇게 서로에게 익숙해지면…….”'갑자기 그가 인상을 썼다. 눈썹이 모나게 올라가고 입매가 단단해졌다.'“익숙해지면? 서로에게 익숙해지면 지겨워지고 지루해질 거니까 그때까지 안고 입 맞추고 놀다가 끝내자고?”'그를 화나게 한 모양이다. 지원은 굳은 얼굴로 차갑게 쏘아보는 그에게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잠시 서로를 응시했다. 그러다가 그가 말했다.'“미안하지만 나란 놈은 태생적으로 그런 놈이 못 돼. 아니, 대한민국의 평범한 30대 남자라면 누구나 똑같을 거야. 가정을 이룰 나이가 된 내 또래 남자들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연애를 하지, 놀자고 하는 연애는 안 해.”'“그럼, 왜 자유연애에 동의하셨어요?”'그가 그녀를 보며 진지하게 눈을 빛냈다.'“널 변화시켜 보려고. 한지원, 네 그 견고한 방어벽을 무너트려 볼 생각이거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그러니까 같이 자자고 꼬시지 마. 이런 유혹을 거부하는 건, 네가 상상하는 것보다 내겐 훨씬 힘든 일이니까. 잘 자라.”'탁, 그 말을 끝으로 그가 문을 닫고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지원은 닫힌 문을 바라보며 무심히 중얼거렸다.'“선배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