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법인 하림에서 운영하는 명문 사립 중학교 하림의 입학식이 있는 날, 하늘은 겨울을 잊지 못해 시린 파란색이었다. 오는 봄을 시기하는 꽃샘추위가 유난스러웠으나, 입학식이 진행되는 강당 안은 난방과 사람의 온기로 훈훈했다. '배정받은 반의 후미에 앉아 있던 연리는 자신과 같은 옷을 입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 펼쳐질 학교생활의 기대감에 다소 떨리기까지 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자연스럽게 진학하는 중학교였지만, 교통사고로 오랜 병원 생활을 해야 했던 연리는 정상적으로 초등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몇 번에 걸친 수술과 재활 치료, 병행되는 심리 치료를 통해 중학교 입학식 직전에 목발에 의지하지 않고 걸을 수 있을 정도가 됐다.'하지만 연리의 담당의사는 학교생활을 하려면 한두 달은 더 목발을 짚고 다녀야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 말에 외할머니는 연리의 입학을 늦추길 원했었다. '그러나 연리는 하루라도 빨리 학교에 다니고 싶었기 때문에 무리해서 입학을 강행했다. 외할머니의 말을 거역한 것이 마음에 걸렸으나, 친구가 생길 것이라는 기쁨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식순이 끝났다는 사회자의 말에 연리는 몸을 일으켰다.'“도와줄까?”'가방을 먼저 집을까, 목발을 먼저 집을까 잠시 갈등하던 연리는 등 뒤에서 들리는 탁한 남자의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이 부끄럽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목발을 짚고 다니는 동안에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학교생활을 하겠다고 결심을 했었다. '연리는 거절의 말을 하기위해 몸을 뒤로 돌리려고 움직였다. 그러나 연리의 앞에는 이미 청무가 삐딱한 시선으로 자신을 위아래로 훑고 있었다.'청무가 같은 학교에 다닐 것이라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해 본 적이 없었던 연리는 청무의 시선을 피하며 눈을 내리고 의자에 비스듬하게 걸쳐져 있는 목발을 집으며 말했다. '“……아니. 괜찮아.”'연리는 침착하게 말했다고 생각했지만 목을 타고 나온 목소리는 약간 떨렸고 바로 앞에 있는 청무에게 들렸을까 싶게 작았다.'“그래? 병신이라서 도와주려고 했더니.”'청무가 대수롭지 않은 투로 잔뜩 빈정대고는 주위에 있던 아이들과 어울려 빠르게 사라졌다. '친절한 말을 건넨 사람이 청무라는 것을 알고 두근거리던 연리의 심장이 괜한 부끄러움과 실망감으로 벌떡댔다. '연리가 청무를 처음 만난 아니, 훔쳐 본 것은 이 년 전쯤이었다. 통원 치료를 받아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져서 지겨운 병원 생활을 접고 외할아버지 댁으로 들어갔던 날이었다. '그날 저녁, 집에서 열린 가든파티에서 청무를 보았다. 연리는 청무를 보는 순간, 태양을 똑바로 보았을 때나 느끼던 눈부심에 눈을 가늘게 떠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