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序) - 몽희

시커먼 밤거리를 세 사람이 투덜거리면서 걷고 있었다. 짙은 쪽빛 바지에 저고리를 입고 검푸른 빛깔의 군화를 신고, 자줏빛 행전에 흑빛 쇠털벙거지, 모시 겹두루마기에 검은 쾌자를 입고, 옆구리엔 붉은 오랏줄을 늘어뜨린 세 사람이 마른 이파리를 밟으며 뿌연 안개 속을 걷고 있었다.

“강림도령님, 곧 도착합니다.”

“아이고, 다리야!”

몽희가 쓰고 있던 쇠털벙거지를 슬쩍 이마 위로 들어 올리면서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새하얀 이마가 살짝 튀어나왔고, 눈썹은 초승달을 눕혀 놓은 듯 단아하다. 속눈썹은 숯으로 그린 듯 풍성하고 검은 눈동자는 마노석을 닮아 반질반질 윤이 흘렀다. 콧날이 오뚝하고, 입술은 앵두같이 통통하고 발갛다. 얼굴선이 동글동글하면서 턱으로 내려갈수록 갸름한 것이 수염도 하나도 없고, 어째 아무리 봐도 계집 같다.

몽희가 눈살을 찌푸리면서 무릎을 만졌다.

“아파 죽겠네. 일직차사! 월직차사! 우리 잠깐 쉬었다가 갈까?”

“도령님, 곧 있음 도착하는데요?”

일직차사이면서 저승차사들 중 두 번째 서열인 유태가 시큰둥하고 고저 없는 특유의 말투로 말했다. 몽희가 가만히 유태를 쳐다보다가 시선을 돌려 월직차사이고 차사들 중 막내 서열인 군호를 쳐다봤다. 재밌는 점은 그나마 가장 나이가 어린 몽희가 이들의 책임자이며 대장이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저승차사 중 첫째 서열인 강림도령 직급이니까. 몽희는 나이가 어려도 대장이기 때문에 유태나 군호가 존대를 하지만, 유태와 군호는 서열 관계가 분명해도 오랫동안 일을 해 왔던 정 때문인지 동갑이기에 서로 예사말을 했다.

“월직차사, 그대도 그리 생각하느냐?”

능글맞은 데다 눈치가 빠르고 행동이 날랜 군호가 생긋 웃었다. 여인네보다 더 예쁘장한 생김새가 압권인 군호를 보고 있자면 몽희는 자신이 얼마나 선머슴 같은지 깨닫게 된다.

“소인이야, 도령께서 하라는 대로 모시겠습니다.”

“난 잠시 쉬고 싶다. 아직 약조한 시간도 되지 않았잖느냐?”

몽희가 오랏줄에 매달린 시계를 들어 올려 살폈다. 반원의 형태로 생긴 시계는 달빛을 이용해 시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 쉬든지요.”

유태가 퉁명스럽게 툭 뱉더니 바닥에 넙죽 앉아 버렸다. 몽희도 덩달아 유태의 곁에 앉았고, 군호도 몽희의 곁으로 쪼르르 다가와 곁에 앉았다. 몽희가 유태를 흘끗 쳐다봤다. 유태는 몸집이 좋고 사내다운 데다 동굴 속에 들어와 얘기를 나누기라도 하는 것처럼 낮은 저음을 가진 자다. 눈매는 쭉 째졌고, 눈썹은 호랑이처럼 새카맣고 두껍다. 일자로 쭉 뻗은 눈썹이 상징적이다. 눈동자는 크고 부리부리한 데다, 코나 입술이 죄다 큼직큼직 시원하게 생겼다. 칠척장신인 데다, 힘이 엄청 좋고 무예 실력이 뛰어난 자라 들었다.

이번엔 몽희가 고개를 돌려 군호를 쳐다봤다. 군호는 앞에서 말했듯 예쁘장한 계집 같은 외모에 부드럽고 온유한 미소를 지닌 상냥한 자다. 전체적으로 굉장히 곱상하게 생겼지만, 사내다운 음성에 몸도 탄탄하고 다부지다. 융통성이 좋은 편인데다, 잔머리가 매우 좋고 순간 판단력이 빨라 뭐든 상의하기 편리하다. 여인보다 여인네 속을 더 잘 안다는 장점도 있어서 도움받을 일이 매우 많다.

“아, 배고프구나.”

한마디 하자, 눈치 빠른 군호가 재깍 마른 과일 하나를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단맛이 일품이며 먹고 나면 포만감이 오래가는 과실로 명계에서만 자라는 ‘오치’다. 사람들이 사는 세상인 ‘하계’에서는 사과와 고구마를 섞은 듯한 맛일 게다. 몽희는 마른 오치를 야금야금 먹어치우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만 떠나자.”

이제 조금만 가면 그들의 임무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아직 신출내기인지라 그들에게 부여된 임무라고 해봐야 밤새 딸랑 다섯 건의 일밖엔 없다. 물론 해가 져서 해가 뜨기 전까지 이 모든 일들을 끝내 놓아야 한다. 세 사람은 그렇게 야트막한 산자락을 내려가 초가지붕 앞에 섰다. 사립문 앞에 서자마자 난관에 봉착했다.

누구보다 앞장선 사람은 유태였다.

대문을 지키는 대문신과 뒷문신, 조왕신, 마부왕 외에도 집 안으로 들어가면 성주신, 지신, 삼신이, 철융신, 업왕신, 문왕신, 안당신, 측신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들이 누구냐면, 집 안에 산 자를 지키는 집지킴이 신들이었다. 몽희가 난처한 얼굴로 대장 노릇을 하는 대문신에게 다가갔다. 나이 90세는 되어 보이는 대문신이 허옇게 수염을 늘어트리고 서서 몽희를 노려봤다.

“돌아가라!”

“대문신님, 소인들이 여기 왜 와 있겠습니까?”

“그야 이 집 주인 데리러 왔겠지! 하지만 안 돼! 이 집 주인이 우릴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보양했는지 알기나 하느냐? 절대 못 데려가지!”

꼭 이렇게 집주인의 정성에 은혜를 갚겠다고 달려드는 집신들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실랑이가 길어지니 사람 하나 데리러 왔다가 여기서 보내는 시간만 해도 한 시진이 후딱 갔다.

“이렇게 나서시면 소인들이 너무 곤란합니다. 아시다시피 일정이 빠듯해요. 어서 서둘러 데리고 돌아가야 염라대왕께 야단을 맞지 않습니다.”

“나는 모르는 일이고! 나는 무조건 우리 주인을 지켜야겠다. 절대로 안 되지!”

어째 시위가 길어질 듯 보였다. 몽희가 할 수 없이, 비장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이럴 줄 알고 저들이 좋아라 하는 제사떡을 미리 들고 다녔다. 등에 메고 있던 봇짐을 풀어 떡 한 덩이를 마른 수건 위에 올려놓고 간청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소인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마치고 돌아갈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이 집 주인도 살 만큼 살아서 떠나야, 자손이 그 명맥을 이어 나가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이번에 돌아가면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대문신을 비롯해 문가에 서 있던 신들이 후다닥 떡 주변으로 모여들더니 한 입, 두 입 맛을 봤다. 그러더니 제법 입맛에 맞았던지, 들어가라는 손짓을 했다. 몽희는 얼른 문가에 서서 다급하게 외쳤다.

“윤봉식, 윤봉식, 윤봉식, 저승에서 자네를 데리러 왔으니, 서둘러 나오시게.”

망자의 이름을 세 번 부르고 기다리자, 저절로 문이 열리더니 망자의 푸르른 넋이 허공을 유유히 날 듯이 밖으로 나왔다. 졸린 듯 눈을 비비고선, 머리가 새하얀 망자가 뒤를 한 번 돌아봤다. 아쉬움이 그득한 눈빛으로 뒤를 돌아보더니 이내 체념하듯 몸을 돌려 몽희 앞에 섰다. 그러자 망자 곁으로 집지킴이 신들이 하나둘씩 몰려왔다.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님 성주신과 곱게 늙어 우아한 할머니 지신이 노인을 굽어봤다. 노인은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성주신이 노인의 손을 가볍게 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