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 선배

「오늘 종방연이 마지막이니까 더 이상 볼 수 없을 것 같아서 이야기하는 거야. 나 너한테 호감 있어. 한번 만나 볼래?」

분량도 많이 없는데 촬영 대기하느라 늘 잠이 부족하던 6개월 촬영이 드디어 종료.

이제 마지막이다! 부어라 마셔라 하며 오늘은 기필코 취하지 않는 술독이 되리라는 심정으로 술을 퍼붓고 기분 좋게 알딸딸해지려는 찰나였다.

드르륵. 메시지 알림 음에 핸드폰을 봤더니 저런 내용이 있을 줄이야. 연주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 술이 확 깼다. 맞은편에 앉은 문자를 보낸 주인공, 선배를 쳐다보았다.

선배는 기다렸다는 듯 턱을 괴고는 연주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자연스레 내려오는 짙은 검은 머리, 쌍꺼풀 없는 눈에 큰 눈동자, 날렵한 콧날, 크고 시원한 입매. 딱 벌어진 어깨와 티셔츠 한 장을 걸쳐도 화보가 되는 미친 비율의 주인공.

그렇다. 저 선배는 이 드라마 주인공. 잘나가는 남자 배우 이재준이다.

‘저 선배, 취했나?’

연주는 의심쩍은 눈초리로 올려다보았다. 드라마 주인공인 그와 달리 자신은 비중도 적은 조연이라 촬영한 신도 많지 않았고, 같이 촬영한 신이 두세 번 있긴 했지만 다가가기 쉽지 않고 어색해서 인사나 날씨 이야기 같은 일상적인 이야기 외에 나눈 적이 없었다. 평소에 전혀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할 만한 행동도 한 적이 없었다. 회식 자리에서도 늘 말없이 술만 마셔서 도통 속을 알 수 없다 생각했던 선배였는데 도대체 왜?

‘회식 자리에서 나 술 먹고 실수한 적 있나?’

복잡한 생각들로 얼굴이 일그러지는데 선배가 눈짓을 한번 했다.

‘어쩔 거야?’

그건 분명 대답을 기다리는 눈짓이었다.

‘오 마이 갓. 바로 대답하라고? 어쩌지? 저렇게 대놓고 기다리는데?’

재준이 너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통에 연주는 얼굴이 빨개졌다. 점점 달아오르는 얼굴을 보이기 싫어서 시원한 맥주잔이라도 볼에 대고 싶은데 그것마저도 너무 쳐다보고 있어 못하겠다싶었다.

‘어쩌지?’

연주는 이 사태를 일단 진정시켜야 할 것 같아서 얼떨결에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오케이!

선배는 슬쩍 미소 짓더니 자신의 핸드폰을 들어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드르륵. 다시 핸드폰 진동이었다.

「내일 우리 집으로 와.」

‘뭐라고라고라? 집? 미쳤지 미쳤어. 왜 오케이 했지? 나 취했나? 집에까지 오라고? 당장 내일?’

「선배 잠시 좀 생각을 해봐야 할 것….」

메시지를 작성하고 있는데 누군가 연주의 팔을 잡아끌었다.

“언니이이, 왜 술 안 마시고 있어? 나랑 셀카 하나 찍자!”

분장 스태프 중 한 명이었다.

“어어 그, 그래.”

연주는 얼떨결에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

“으악!”

연주는 침대에서 갑자기 벌떡 일어나 앉았다.

“하. 머리야, 속이야. 내가 다시 또 술을 먹으면 접시에 코 박고 죽어야지 휴.”

연주가 일어나 쓰린 속을 달랠 물을 마시러 힘겹게 일어나다가 번뜩 생각이 떠올라 소리쳤다.

“앗! 메시지! 안 보냈네! 선배한테 조금 더 고민해 보겠다고 말하려 했는데… [우리 친하지도 않잖아요. 내일 집에 가지 못하겠어요.]라고 보내려고 했는데…. 망했다!”

그 이후에도 계속된 셀카 요청에 사진을 찍어 주고, 술을 마시느라 연주는 답장하는 걸 새카맣게 잊었다.

‘나, 무슨 생각으로 오케이를 그렸지?’

연주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자신의 방을 나와 냉장고가 있는 1층 계단으로 내려가며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흠, 뭐 사실 선배는 워낙 A급 남주이고, 나는 서브역만 하는 조연인데 그런 사람이 나한테 고백하는데 뜻밖이면서 기분은 좋았지.’

그런데 점점 불안감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상습범인 거 아냐? 이놈…. 아니 사실 그렇잖아, 나랑 딱히 친하게 이야기한 적도 몇 번 없는데 종방연에 웬 고백? 그것도 문자로 술자리에서? 바로 집까지 오라고 하고? 생초짜 신인이나 뭘 모르는 여자애들 사냥하고 다닌다는 전설의 그 배우처럼 이놈도 진짜, 상습범인가? 나 완전 잘못 걸려서 이용만 당하고 폐인 되는 거 아냐? 하, 아니 왜 고백에 쓸데없이 즉각 답변해 가지고 미쳤어!’

연주가 소리 없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물을 벌컥 마시고 자신의 방에 들어와 침대에 다시 철퍼덕 누웠는데, 그때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띠링.

「잘 잤어? 어제 보니까 너무 많이 마시더라. 속은 괜찮니? 우리 집 주소 보내줄게. 기자들 혹시 있을지 모르니까 마스크 쓰고 매니저한테 이야기하지 말고 와.」

“끼약.”

연주는 핸드폰을 던져 버렸다.

“미친놈! 매니저 없이 오라는 거 봐봐 분명 잘못 걸렸어. 어떡해. 이제 와서 뭐라고 말하지?”

띠링. 다시 문자가 왔다.

주소였다. 친절하게 약도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