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을 집어삼킨 먹구름이 얄궂게도 후텁지근한 열기는 건드리지 않았는지, 차에서 내려 호텔 로비까지 걸어가는 그 짧은 시간에도 절로 미간이 구겨지게 더운 날이다.'인사를 하며 문을 열어 주는 도어맨에게 간단히 눈인사를 건네고 서진은 회전문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손에 들고 있던 클러치 백을 겨드랑이 사이로 옮기면서 그녀는 우아한 걸음걸이로 커피숍으로 향했다. 숍에 들르지 않는다고 아침부터 날카롭게 굴던 남 여사의 신경질적 잔소리가 무색하게도 고급스러운 슈트를 입은 남자들은 늘씬한 각선미를 자랑하며 로비를 가로지르는 서진을 고개가 돌아가게 힐끔거렸다.'귀밑까지 오는 단정하면서도 세련된 헤어스타일에 166센티미터의 작지 않은 키와 적당한 볼륨감 그리고 잘 빚어 놓은 도자기 인형처럼 티 없이 맑고 깨끗한 빛나는 피부까지, 굳이 가까이 다가와 이목구비를 확인하지 않아도 멀리서도 단연 눈에 띄었다. '겉모습만 두고 보자면 강서진이란 여자는 도도하고 화려하며 누구보다 자기주장이 강해, 함부로 접근할 수 없을 것만 같은 포스가 강하게 풍기는 이미지였다. 한마디로 부잣집 잘난 외동딸.'발등이 예쁘게 드러나는 블랙 하이힐이 커피숍 입구에서 잠시 멈춰 섰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누군가를 찾는 서진에게 웨이트리스가 다가왔다. 하지만 웨이트리스가 입을 떼기 전에 서진은 오른쪽을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눈썰미가 좋은 탓도 있지만 사진을 통해 처음 봤을 때 파란 유리벽을 덧씌운 것 같은 남자의 차가운 눈동자가 오래도록 뇌리에 남았다.'그래서였다, 한눈에 남자를 알아본 것은. '흐트러짐 없는 시선으로 다가오는 서진을 보고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강서진 씨?”'“네.”'“반갑습니다, 서윤혁입니다.”'“네, 반갑습니다.”'간결한 인사를 마치고 남자가 조급하지 않은 몸짓으로 그녀에게 다가와 의자를 빼 줬다. '“감사합니다.”'윤혁이 자리로 돌아가 마주 앉고, 아까 서진에게 본의 아니게 투명인간 취급을 받은 웨이트리스가 특유의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커피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