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잠깐만요!” '시루 안에 들어찬 콩나물 같은 사람들을 헤치고 문 쪽으로 나간 유선은 겨우 지하철에서 내릴 수가 있었다. 헝클어진 옷차림을 매만질 사이도 없이, 사람들에 밀려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탄 그녀는, 개찰구를 빠져나온 뒤에야 잔뜩 헝클어진 매무새를 대충 가다듬었다.'“이런!”'어찌나 지하철 안에서 몸싸움을 해댔던지, 육 개월 할부로 끊은 코트의 단추 하나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저런 빌어먹을 놈의 지옥철 같으니라고!”'개찰구 입구에 서 있는 공익근무요원이 듣거나 말거나 비딱한 시선으로 욕설을 뇌까린 유선은, 아예 코트의 단추를 죄다 풀어 버렸다. 그나마 두르고 나온 머플러가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화장실에 들러 제대로 매무새를 가다듬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이미 약속시간을 한참이나 지나 있었다.'“에이, 미모로 밀고 나가자.”'체념에 가까운 혼잣말을 웅얼거리며 유선은 약속 장소인 ‘볼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근 칠년 만에 만나는 친구들의 변함없는 모습은, 지옥철에서 분실한 단추의 아픔을 깨끗이 상쇄시켜 주었다.'“혜미, 넌 정말 변한 게 없구나?”'삼 년간의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혜미가 새침한 미소로 근주의 말을 받아냈다.'“그 말, 욕인 거 알지?”'“호호, 그래, 그래, 겁나게 예뻐졌다. 됐니?”'“얼굴은 정말 많이 예뻐졌는데 분위기는 그대로야, 그래서 더 반가운 거고.”'근주의 말을 거들 듯 지예가 말문을 열었다.'“혜미, 너 쌍꺼풀 했구나?”'“계집애, 눈썰미 좋은 것도 여전하네. 그래 했다, 왜?”'“진짜 자연스럽게 됐다. 꼭 네 것 같아.”'“그렇지?”'“어디서 했니?”'“청담, 신형국. 재작년 방학 때 잠깐 들어왔었거든, 그때 했어.”'“아, 거기!”'“승아도 내 눈 보고 거기서 재수술했잖아.”'“어머, 어디 한 번 봐. 어머, 어머, 감쪽같다, 얘.”'“옷만 명품이 있는 게 아니더라니까.”'여자들의 수다에 정해진 레퍼토리가 있는 건 아니지만, 적당한 공간을 사이에 두고 만난 사람들 사이엔 정해진 선 같은 게 존재했다. 비록 예전의 그들이 우정으로 똘똘 뭉친 친구였다고 할지라도.'사소한 안부를 묻는 데서 시작된 수다가 성형수술에서 자연 그녀들의 연애사로 접어들자, 유선은 앉아 있는 자리가 어쩐지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어머, 어머, 그래서?”'“그래서는 무슨 그래서야. 대략 간결하게 굿바이했지.”'“굿바이?”'“기왕 안 될 사이가 미련 둔다고 되는 거 봤니? 안 되겠다 싶을 땐 바로 굿바이하는 게 남는 거야.”'유독 연애 편력이 화려한 승아의 말에 혜미가 엄지를 치켜들었다.'“승아, 너, 정말 나이스하구나?”'“경험이 괜한 데서 나오는 게 아니라니까.”'“호호호. 승아한테 한 수 배워야겠다. 참, 지예, 넌 날짜 잡았다면서?”'“응.”'난데없는 이야기에 유선의 눈이 번쩍 뜨였다. 두어 달에 한 번꼴로 만나는 친구들인데, 지예가 날짜를 잡았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