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렁 놔.”'“젠장.”'“어서 놔.”'“제에엔장.”'현재 지상에서 가장 강한 남자, 최고의 기사, 드래곤 슬레이어, 용사 중의 용사, 프레이온 제국의 최고위 기사이자 최고의 미남자라 불리는, 최고가 너무 겹쳐서 복에 겨워 죽어가는 렌가드 필모어 거웨인은 지금 머리를 쥐어뜯으며 체스를 두고 있었다.'“머리 쥐어뜯어 봐야 안 나오는 건 안 나와.”'그리고 상대는 지금 당대 최고 최악의 흑마법사, 마녀 중의 마녀, 대륙 최고위의 흑마법사장이라 불리며 이 땅 위에 내린 최고의 미녀가 아닌 최악의 미녀라 불리는, 최악과 최고가 적당히 섞여 있는 킬레아였다.'“오호호호호호홋……. 이겼다. 이제 네가 가진 그 팔찌 내놔.”'“쳇.”'렌가드는 팔목에 찬 팔찌를 빼서 아무렇게나 킬레아에게 집어 던지고는 한숨을 내쉬었다.'“후우…….”'둥근 천장을 가진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이 방은, 정확히 말하면 마녀의 탑에서 가장 높은 곳이었다. 이 방은 원래 킬레아가 마음에 드는 남자를 납치해 가두어놓기 위해 만들어진 방으로, 높이 138층, 올라오는 계단은 미로와 마물로 채우고, 입구는 채광창 두 개밖에는 없는 밀실이었다. 그래도 호화스럽게 꾸며놓은 터라 침대는 향목으로 만들어진 킹사이즈의 호화찬란한 레이스로 뒤덮여 있었으며 붉은 벽돌로 지어진 방은 최고급의 태피스트리로 장식되었다. 뿐만 아니라 바닥은 춥지 않도록 저 멀고도 먼 동방에서 지어온 호사스런 실크 카펫이다. 탁자는 윤기가 흐르는 대리석이었으며 의자는 호피를 씌운 최고급의 가죽으로 장식되었으며 옷장에는 사치스런 실크로 만든 옷들이 줄줄이 걸려 있었다. 또한, 취미 생활을 위한 수백 권의 책들과 악기 서너 종, 그리고 체스판과 심지어는 검술연습을 위한 연무실과 무기고까지 존재했다. 즉, 넓고도 호화스러운 감옥이라 할 수 있었다.'“웬 한숨?”'킬레아는 손가락을 들어 체스판을 치우면서 렌가드를 흘긋 보았다.'새까만 흑단 같은 장발을 어깨 위에 늘어뜨린 렌가드는 다른 남자들보다 목 하나는 더 큰 장신이었다. 뿐만 아니라 전신이 근육질로 뒤덮인 늠름한 체구에 누가 봐도 반할 만큼 매혹적인 보랏빛 눈동자와 과묵한 입술을 한 미남자였다. 보통은 워낙에 과묵한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레이디들은 그가 한 번 웃기만 해도 뒤로 자지러지곤 했다. 나이 올해로 29살이 되는 이 젊은 기사는 대륙 전체 레이디의 우상이었다.'“……따분해.”'“체스 뒀잖아?”'“……심심하다.”'“그럼 어디 마물의 숲에라도 가서 트롤이나 때려잡든지.”'“이 근처에 어디 마물이 있기나 하냐?”'“그럼 잠이나 자!”'“벌써 열 시간이나 잤다.”'“내가 네 장난감이냐? 심심하면 날 찾아와 난리를 치게!”'킬레아는 신경질을 내면서 렌가드를 쏘아보았다.'그렇다. 렌가드는 현재 당연하지만 납치된 것도 아니요, 이 킬레아의 탑에 갇힌 것도 아니었다. 그는 그저 자발적으로 올라온 것이었다. 이유는 단 하나, 이 킬레아의 탑에 있는 마물들과 싸우기 위해서다. 그 때문에 킬레아는 마물을 몇 번이나 다시 만들어내야만 했고, 요즘에는 렌가드를 보는 마물들마다 공포에 질려 스스로 물러나고 있었다.'“하아……. 너라면 뭔가 재미난 것을 알려줄 줄 알았어.”'“흥.”'“뭐, 재미난 일 없나?”'“얼굴을 숨기고 여행을 하면 어때?”'“벌써 일곱 번이나 그 짓을 했잖아? 다 나중에는 오오, 당신이 바로 그……! 하면서 다들 다리 잡고 늘어진다.”'과묵한 기사로 알려진 렌가드였지만 실은 상당한 수다쟁이였다.'킬레아는 짜증을 참고 조용히 물었다.'“너, 나에게 학사원 학사들 소개해 준다는 거 어떻게 되었어?”'“그거? 내가 일곱 번이나 소개했지만 네가 다 거절했잖아?”'“이봐, 나의 이상은 높고도 높아! 네가 소개한 놈들은 하나같이 흑마법사는 무서워요, 하는 간덩이가 작은 놈들이잖아!”'“너의 이상이야말로 정상이 아냐! 세상에 어떤 학자가 너 같은 여자를 안 무서워하냐?”'렌가드는 킬레아를 아래위로 쏘아보면서 되물었다.'킬레아 더 블랙 마스터.'새까만 흑발이 아닌 눈부신 백금발을 허리까지 늘어뜨린 이 미녀는 새파란 눈동자와 새빨간 입술이라는 입체적인 미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한 가지 흠이라면 나이를 잘 알 수 없다는 것이지만, 모든 것은 미모로 용서되는 법. 주욱 늘씬하게 뻗어 내린 이 팔등신 미녀의 이상형은 우아하고 자상하며 상냥한 학자 타입의 남자였다. 다시 말해서 렌가드와는 전혀 반대의 남자였던 것이다.'“내가 전에 말했던 그 학자 양반은 어떻게 되었어?”'“아아, 이혼남이야.”'“이혼남이면 좋지!”'안달하는 킬레아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면서 렌가드는 한숨을 내쉬었다.'“이혼 사유가 ‘부실’인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