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플 안은 마음이 편해지는 나무빛이었다. 하지만 세나는 불안감을 억누를 수 없었다. 예식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는데 아직 아무도 도착하지 않았다. 그녀 혼자 텅 빈 예식장 안에 멍하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주례가 제단 옆에서 서성거리며 자꾸 시계를 확인하고 있었다.'그래도 오긴 올 것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이니까. 세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문을 바라보았다.'예식 예약 시간 2분 전, 드디어 신랑이 도착했다. 세나는 새까만 모닝 수트를 입은 그를 흘낏 올려다보았다가 다시 시선을 떨구었다. 몸에 딱 맞으면서도 좀 더 엄격히 보이게 만드는 정장을 입은 남자는 압도될 정도로 당당했다. 그녀보다 머리 하나는 더 될 듯 커다란 키에 서양 사람처럼 보일 정도로 어깨가 넓고 체격이 좋았다. 하지만 그에 비해 외모는 서양인처럼 굴곡이 심하거나 음영이 진하지는 않았다. 품위가 있으면서도 엄격해 보이는 그는 태어나서 언제나 명령하기만 했던 사람 같았고 한 번도 지배력을 잃어본 적이 없을 것 같았다.'세나는 그녀의 아버지, 민학이 제단 앞에서 주례와 짧게 이야기를 나누고 그녀에게 손짓하는 것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너무 빠르지도 않고, 너무 느리지도 않게 그에게로 걸어갔다. 민학 옆에 서 있던 사내는 그녀를 흘낏 내려다보다가 다시 시선을 돌렸다.'세나는 그 무관심하면서도 불쾌함이 묻어 있는 시선에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이미 너무나 익숙한 시선이었지만 웬일인지 가슴이 아팠다. 그녀는 멍해 보이는 무표정으로 주례사를 들었다. 간결하지만 감상적인 주례사를 통해서 그녀는 남자의 이름이 한제윤이라는 것을 알았다.'빠르게 진행된 예식의 마지막으로 제윤이 그녀에게 반지를 끼워주었다. 세나는 가느다란 손가락에 무겁게 끼워진 반지를 보다가 이제 남편이 된 낯선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조각상처럼 굳은 그의 얼굴에는 표정 하나 없었지만 이글거리는 눈빛에는 증오와 분노가 냉혹함과 뒤섞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