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경찰청으로 들어서는 은성의 걸음은 그 어느때보다 분주했다. 상쾌한 아침공기를 마시며 스트레칭을 하고, 유유자적하게 경찰청 자판기에서 음료수 하나를 뽑아먹고. 이런 한가로운 짓들은 오늘만큼은 모두 다 뒤로 젖혀두고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송 형사님!”'강력반 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은성은 다급하게 송 형사를 불렀다. '“뭐야? 왜 그래 윤 형사.”'그녀의 호들갑에 송 형사는 고개를 까딱거렸다.'“있잖아요. 제가 전에 한강수 미행하러 갔다는 것 말씀 드렸었죠.”'“미행은 나랑 같이 하잖아 늘.”'“아니요, 그것말구요. 요양원 갔었다고 그랬잖아요.”'“요양원?” '빠르게 말을 토하는 은성의 얘기를 못 알아듣겠다는 표정이었다. '“아, 하여튼 근데 중요한 건 말이죠. 제가 그 병실을 들어갔다 액자 하나를 봤는데요, 그 액자 안에 어린 여자 아이 사진이 찍혀 있었다는 겁니다. 그 사진 속 아이가 한강수 누나의 아이로 추정되구요. 근데 거기서 더 중요한 건 얼마 전에 제가 파티장을 갔었는데, 거기서 민석호 국회의원 아이를 봤는데 그때 봤던 그 사진 속 아이하고 너무나도 닮았다는 거죠.”'은성이 다급하게 말을 끝마치고, 송 형사는 멍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다 이내 호탕하게 웃었다.'“파티? 민석호? 뭐라는 거야. 윤 형사 소설 써? 갑자기 뜬금없이 그게 다 무슨 소리야. 아니 파티는 또 뭐고.”'“예?”'파티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 요상한 드레스를 입고 태준과 단 둘이 파티장에 갔다는 얘길 굳이 경찰청 식구들에게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송 형사는 전혀 그녀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아니 설령 이해한다고 해도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여기는 눈치였다. '“아 돌아버리겠네, 정말. 그러니까요 딱 정리를 하자면 뭔가 냄새가 난다 이거죠.”'“요즘 애들 닮은 게 한 둘이야? 난 또 무슨 소리라고 그렇게 호들갑을 떠나 했네. 됐고, 와서 수박이나 먹어. 어제 저녁 때 김 형사 형수가 하나 사 들고 왔는데 맛이 아주 기가 막혀.”'고갤 돌리는 송 형사를 바라보다 은성은 뒤를 돌며 머리를 거칠게 헝클어뜨렸다. '자신이 생각해도 억지스런 말이긴 하지만 왜 이렇게 냄새가 찝찝할까. 다른 형사들에 비해 모든 면에서 조금씩 딸리기는 해도 직감이란 데 있어선 꽤나 감각이 좋은 여자였다. 그런 자신의 형사적 본능이 자꾸만 가슴 언저리에서 꿈틀꿈틀 거리는데, 자신이 잘 못 본 게 아니라면 분명 뭔가 닮은 구석이 있었다. 은성은 밖으로 나와 태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배, 전데요. 잠깐만 저 좀 볼 수 있어요? 그 살인사건에 대해서 드릴 말씀이 있거든요. 저녁때요? 네, 오면 전화 주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전화를 끊고 은성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고 보니 송 형사 말대로 좀 말이 안 되기는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국회의원씩이나 되는 사람과 한강수가 관련이 있을 리가 없지. 그래도 알아본다고 나쁠 건 없으니까.''''“검사님, 오셨습니까?”'“예.”'“제가 불렀어요, 아까 송 형사님한테 말씀 드린 것 때문에요.”'“그 얘길 하려고? 내가 말했잖아, 윤 형사.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라니까?”'황당하다는 듯 웃는 송 형사를 뒤로 하고 은성은 진지한 표정으로 태준의 앞에 섰다.'“그래서 알아봐 달라고 말씀 드렸던 건 어떻게 되었습니까?”'“한강수 누나 이름은 한지우. 자식이 있다고는 나와 있지 않아. 호적 등본까지 다 떼어봤는데 아무것도 없이 깨끗해.”'“그럼 그 날 병실에서 제가 본 액자 속 그 아이는 뭐죠?”'“글쎄, 그것까지는 모르지. 하여튼 니 말대로 알아본 결과 한지우한테 딸은 없었어. 물론 결혼도 한 적이 없고. 게다가 민석호 국회의원 아들 이름은 민송주. 올해로 나이가 다섯 살이야. 이건 나도 몰랐던 사실인데, 조사를 하다 보니까 나오더군. 민석호의 지금 현 부인 이름은 서희은. 그녀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몸이야, 그래서 지금의 아들인 민송주를 입양했다고 기록상에 나와 있더라고.”'“입양이요?”'“어. 고아원에 있던 아이를 입양했다는 데 내가 알아본 건 여기까지야.”“입양이라……. 그 사진은 가지고 오셨어요?”'태준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손에 들린 서류를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살해되었던 아이들의 발견 당시 사진이었다. 날이 조금 지난 뒤에 발견되어 형태를 제대로 알아 볼 수는 없던 상태였다. '“두 명이 사내 아이었고, 한 명이 여자아이라 그랬었죠.”'“그랬지. 근데, 도대체 뭐가 문제인데?”'“제가 그 날 사진을 봤잖아요. 사진 속 그 아이와 제가 파티장에서 봤던 그 남자 아이 말이에요. 뭔가 자꾸 닮았단 생각이 들거든요. 처음엔 그냥 착각이려니 생각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닮았어요. 아무래도 다시 한 번 확인해 봐야겠어요. 송 형사님!”'은성은 뒤를 돌아 송 형사를 바라보았다.'“저희 다시 한강수 잠복 수사 하죠. 뭔가 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습니다.”'“오늘?”'“예.”'“오늘은 안 돼 윤 형사. 나 곧 있음 어머니 칠순 잔치라 집에 가봐야 해.”'“예? 아, 그럼 저라도 혼자 수사…….”'“안 돼.”'“선배.”'“송 형사님도 없이 니가 무슨 혼자 수사를 나가. 게다가 차도 없으면서.”'“차 없다고 뭐 수사 못하나요? 괜찮아요.”'“그래도 안 돼. 내일 송 형사님 오시면 그 때 같이 수사 나가.”'태준은 단호했다. 인상까지 구기고 그녀를 바라보는 데 은성은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알겠어요.”'뭔가 감이 딱 오는 데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를 모르겠다. 무언가 알 수 없는 사실들이 실처럼 뒤엉켜 있는 복잡한 느낌이었다. 하나만 잡고 풀면 뭔가 알 듯도 싶은데. 정말 송 형사 말대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자꾸만 그녀의 안에 잠재되어있는 본능이 무어라무어라 외치고 있었으니까. 그냥 무시할 수가 없었다.'“집에 갈 거지? 그럼 같이 가. 나도 검찰청에서 퇴근하고 이리로 온 거니까.”'태준의 말에 은성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런 찝찝한 기분으로 집에 들어가긴 좀 그런데. 어차피 수사도 못 하게 되었다 집에나 가야겠다 생각하고 먼저 밖으로 나서는 태준의 뒤를 따랐다. 나가는 중 안으로 들어오던 이수와 마주쳤다. '“안녕하십니까.”'이수는 앞서 걸어 나가던 태준에게 고개를 까딱이고는 그대로 툭 그를 스쳐지나갔다. 그러다 은성을 앞에서 마주한 순간 잠시 걸음을 멈칫하는가 싶더니 역시나 인사도 안 하고, 은성의 곁을 스쳐지나갔다. '차에 타고 안전벨트를 막 맸을 때였다.'“집으로 갈 거지?”'“예.”'“저녁은 먹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