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채연은 오늘도 편의점 알바를 마쳤다. 교대 근무를 마치고 나오는 시간은 밤 9시.

그녀는 방금 전 사장님이 건넨 삼각 김밥과 콜라를 바라보았다.

오늘의 저녁은 물론 삼각 김밥과 콜라가 될 것이다. 무조건 안 쓰고 아낀다가 그녀의 신조였다. 그래야 동생과 빠듯한 가정을 꾸려나갈 수 있었다.

채연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둥근 달이 밤하늘에 태양처럼 떠 있었다.

“와, 엄청 휘황찬란하네!”

편의점 앞에는 늦은 저녁까지 동네 주민들이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하는 작은 공원이 하나 있었다.

“그럼 삼각 김밥 먹으면서 잠깐만 배회하다 갈까?”

배도 고팠고 이왕이면 신선한 공기를 느끼며 편하게 먹고 싶었기에 채연은 횡단보도를 건너서 공원으로 향했다.

“날씨도 서늘하고 좋은데 벌써 다들 들어갔네.”

채연은 인적이 없는 공원이 어색했지만 눈에 익었던 곳이라 편안한 마음으로 가로등 아래 나무 벤치로 걸어갔다.

가운데 자리에 앉아서 삼각 김밥을 꺼냈다. 그녀가 비닐을 순서대로 벗기고 입에 넣으려는 순간이었다.

“맛있어 보이네.”

“엄마야!”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

백발이 성글성글한 할머니의 얼굴이 벤치 뒤에서 갑자기 나타났다.

채연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깜짝 놀랐잖아요.”

“그랬어? 난 아까부터 여기 있었는데.”

이상했다. 아까는 분명 없었던 것 같았는데…….

할머니는 허리를 굽힌 채 벤치 앞쪽으로 걸어왔다.

“아이고, 허리야! 고것 참, 맛있겠다. 내가 삼 일을 굶었어.”

“어쩌다가……?”

“여행 중인데 돈이 없지 뭔가. 배가 너무 고파…….”

할머니는 배를 어루만지면서 앙상한 얼굴을 구겼다. 움푹 팬 주름이 고단한 그녀의 일상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아 가슴이 아렸다.

채연은 입술을 살짝 물었다 놓으면서 눈을 곱게 접었다.

“할머니 이거 드세요.”

“정말?”

삼각 김밥을 내밀자 할머니는 잽싸게 받아들고는 덥석 베어 물었다. 오물오물 주름진 입가가 빠르게 움직였다.

채연은 그저 멍하니 할머니의 입만 바라보았다. 그녀도 사실 허기진 상태였다.

삼 일을 굶었다고 하잖아. 연세도 많으신 할머니가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할머니는 고운 옥빛 한복을 입고 계셨는데 체구가 조금 큰 편이었다. 외양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다르게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전통한복을 입고 있음에도 어딘지 모르게 이질적이고 어색한 느낌이랄까.

그때 할머니가 온유한 낯빛으로 채연을 응시하였다. 잠깐이었지만 이국적인 눈빛이 채연의 얼굴 전체를 스치고 지나갔다.

눈동자는 한국 사람 특유의 암갈색이었는데 그 안에 붉은빛이 깃든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오묘했다.

가로등 때문에 그런 거겠지. 할머니가 컬러 렌즈를 끼고 있을 리도 없고.

“아가씨 덕분에 맛있게 먹었네. 그런데 물이나 음료수 같은 건 없어?”

“예?”

“내가 노인네라 소화력이 떨어지거든 이왕이면 탄산음료면 더 좋겠는데.”

“아, 잠깐만요.”

채연은 가방을 뒤져서 콜라 한 개를 찾아냈다.

“할머니 콜라 드세요.”

“학생인가 보네. 그래 나이는?”

“스물셋이요.”

“오늘 맛난 것도 주고 착한 학생인 것 같으니 내가 선물 하나 해줄게.”

“아니에요. 전 그저 할머니가 배고프다고 하시기에…….”

채연은 손사래를 치면서 돌아섰다. 배가 조금 고팠지만 집에 가서 라면 하나 끓여 먹으면 될 일이었다.

“자, 받아.”

할머니의 목소리에 채연은 무심코 돌아섰다. 갈색 가죽끈에 동그란 구슬이 박힌 팔찌가 할머니 손에 들려있었다.

평범해 보이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굉장히 독특한 빛을 띤 구슬이었다. 붉은색 구슬이 각도에 따라 흑색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언뜻 보면 진한 자주색으로도 보였다. 구슬은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눈부시게 반짝거렸다.

이글거리고 있는 것 같잖아. 정말 독특하네.

“아크브 부르아.”

“예?”

“보석 이름이야.”

“멋지네요. 아크브 부르아.”

“잊지 마, 보석은 이름 불러주는 걸 좋아하니까.”

채연은 자연스럽게 할머니 곁으로 가서 팔찌를 집어 들었다. 구슬이 그녀를 강렬하게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너무…… 예뻐요!”

“그래? 모든 물건에는 임자가 있는 법이지. 아크브 부르아도 아가씨가 주인인 것 같아.”

이렇게 좋은 것을 주시다니 냉큼 받아도 되는 것일까. 누군가에게 값비싼 선물을 받은 적도 없었고 이렇게 독특한 물건도 받아 본 적도 없었기에 망설여지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