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경로 안내를 종료합니다.”

내비게이션 안내 음성이 사라지자, 운전대를 잡고 있던 세형은 잠시 차를 세웠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차창 밖 어두운 주변을 살폈다.

“맞게 왔나?”

초행길이었다. 내비게이션 안내에 따라서 오긴 왔지만, 확신이 서지 않는 그의 목소리만큼이나 불안해 보이는 그의 눈동자가 어둠을 살폈다. 그러다 어둠 속에서 불이 들어온 간판을 발견하자 안도했다.

<○○ 장례식장>

“맞네. 후우….”

자신이 제대로 찾아왔다는 안도감에 작은 한숨을 내쉬던 그의 귓가에, 여자 친구 경아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저기가 주차장 입구인가 봐.”

그녀의 손가락 가리킴에 주차장 입구를 바로 찾은 세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맞네. 주차장 입구.”

경아 덕에 빨리 주차장을 찾은 세형은 곧 어두워진 눈빛으로 차량 내 디지털시계를 확인했다. 밤 11시. 모 공기업의 인사 팀 대리로, 연수원에서 신입 사원 오리엔테이션 중이었다. 그러다 2, 3일에 한 번씩 뻔질나게 전화하던 친구, 현우가 잠잠해 신경이 쓰였다. 그리고 자신과 현우, 정원. 중학교 동창이자 15년 지기 친구들과 만든 단체 메시지 방도 조용했고.

‘이리 조용할 리가 없는 현우인데…….’

자신이 운영하는 카페에 특이한 손님이 오거나,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으면 어머니 병간호로 지친 정원을 위해 잠시 웃으라고 수시로 격려의 글과 사진을 올리는 녀석이었다. 그리고 길고양이를 돌보는 자신을 위해서는 예쁜 고양이 사진을 올려 주고. 그런 녀석이 이리 조용한 것이 께름칙했다.

‘혹시, 어머니에게 무슨 일 생긴 거 아니야?’

연수원에 내려오기 전, 작년 가을. 갑작스레 말기 암 진단을 받은 정원 어머니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들었던 터라, 괜스레 마음이 쓰였다. 그래서 저녁 식사를 하자마자, 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제 막 의사의 사망 선고를 들은 정원이 행정 절차를 밟기 위해 원무과에 갔다는 말에, 부랴부랴 연수원에서 출발했다. 안부차 전화를 걸어온 경아가 정원 어머니의 부고 소식을 듣곤, 안 와도 된다는 자신의 말에도 불구하고 가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바람에 시간을 많이 지체했다.

“너무 늦어서, 놀라겠는데.”

시계에서 눈을 뗀 세형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읊조리자, 그를 힐끔 훔쳐본 경아가 샐쭉거렸다.

“뭐가 너무 늦어. 이 정도면, 빨리 온 거지.”

그녀의 마뜩잖아함이 느껴지는 목소리에, 그의 눈동자가 차갑게 그녀를 훑고 지나갔다. 하지만 어두운 차 안 때문인지 그 눈빛을 알아차리지 못한 그녀가 계속 입술을 달싹였다.

“그리고 그 언니가 오빠한테 바로 연락한 것도 아니잖아. 오빠도 현우 오빠 통해서 안 건데, 늦게 왔다고 뭐라 하면, 사람도 아니야, 사람도.”

“…….”

그녀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그를 두둔하고 싶어 한 말이겠지만, 듣고 있던 그의 심기는 몹시 불편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연수원을 나오면서, 그녀가 왜 자신에게는 연락하지 않았는지……. 의아했으니까. 물론, 그녀가 경황이 없어 연락을 못 하던 차에, 자신이 안 것일 수도 있지만. 전화 한 통 하는 게, 뭐가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서운했다. 그리고 곁에 있던 현우는 왜, 잠자코 있었는지. 혹여…… 이게 자신에게 보내는 다른 뜻이 담긴 메시지인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런데 그런 자신에게 정원을 비난하는 말을 하다니! 자신의 불안에 기름을 붓다니!

“…너, 그럴 거면 여기서 가.”

성격이 불같아서 가끔 큰 소리를 내긴 하지만, 단 한 번도 사람이 지켜야 할 예의를 벗어 난 적이 없는 친구였다. 그런 자신의 친구를 깎아 내리는 그녀 말에, 그가 차가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러자 그의 언짢아하는 기색에 놀란 경아가 황급히 고개를 돌리더니 손사래 쳤다. 전혀, 그럴 의도가 없었음을 알리느라 필사적이었다.

“아, 말이 그렇다는 거야. 말이.”

“…….”

그런데도 그의 무서운 표정과 침묵이 풀리지 않자, 경아는 울 것 같은 얼굴로 읊조렸다.

“정말이야, 오빠.”

자신의 침묵에 그녀의 눈망울에 촉촉이 물기가 어리자, 그는 자신의 예민해진 신경에 엉뚱한 곳에 화풀이하는 것 같아 그만뒀다.

“알았어.”

그러면서도 혹여나 있을지 모를 사고를 예방하고자, 이쯤에서 그만한다는 경고의 눈빛을 보내더니 곧 굳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버릇없이 굴지 마라.”

“오빠…….”

“너보다 네 살이나 많은 언니다.”

“…….”

그의 경고성 어린 말투에, 그녀는 억울했다. 어쩌다 한 번씩 ‘정원’이라는 이름 앞에서 자신이 불평불만을 토로하면, 듣는 경고였지만. 지금의 자신은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그 경고를 듣다니! 경아는 억울한 마음에 원망 어린 눈길로 그를 바라봤다. 하지만 말없이 답을 요구하는 그의 굳은 시선에, 상황이 상황인지라 문제를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자신이 좋아 따라다니는 사람이라,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 여기며 답했다.

“…….”

“알았다고.”

그러면서 이리 늦게 온 이유가 자신 때문이라 탓할까 그의 눈치만 살폈다. “후우….” 하며 그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깊은 한숨에 죄인이 된 듯싶은 기분이었다. 그러다 헤드라이트를 켠 자동차 한 대가 주차장에서 나오자,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