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내내 진원의 얼굴에 뜬금없이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 덕에 수지맞은 건 현겸이었다. 현겸이 떼를 쓴 것도 아닌데 진원 스스로 작은 문구점에 들어가 모형 장난감 차를 사서 안겼으니까. 그것도 병원을 가며 탔던 녹색 버스.'집 안에 들어서니 윤선이 점심을 준비하고 있는지 집 안에 기름 냄새가 가득했다.'“저희 왔어요!”'기분 좋게 소리치며 현겸의 신발을 벗겨 주자 현겸이 거실에 앉아 차를 가지고 노느라 정신없었다. 앞치마를 둘러맨 윤선이 부엌에서 나오다 그 모습을 보고 물었다.'“또 차 사줬어? 사달라고 떼쓰든?”'“아니에요. 얌전히 잘 놀길래 기특해서 제가 하나 사줬어요. 그런데 뭐 하고 계셨어요?”'“반찬 좀 하고 있었어. 현겸이 없으니까 마음껏 음식 할 수 있어서 얼마나 편하던지.”'“그럼 종종 현겸이 데리고 나가 드릴까요?”'“그럴래? 후후.”'윤선은 오랜만에 현겸에게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말은 저렇게 해도 아마 지금 바로 현겸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언제 들어오느냐 전화하면서 안달이 났을 게 분명하면서.'“배고프지? 거의 다 됐어. 조금만 기다려.”'“네.”'윤선이 다시 부엌으로 들어갔다.'아우터를 벗어 소파에 걸쳐 두고 진원은 현겸 앞에 앉았다. 그리고 차를 가지고 노는 조카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기름 냄새를 맡아서 그런지 배가 고팠다. 배가 고프지만 기다리는 시간마저도 진원은 너무나 즐거웠다.'시현과의 만남으로 기분이 좋아진 진원이 한껏 들뜨게 된 건 은주가 퇴근하고 돌아온 늦은 저녁이었다. 야근으로 많이 늦는다고 한 정훈을 제외한 온 가족이 저녁을 먹은 후 과일을 먹으며 거실에서 함께 TV를 보고 있었다. 은주와 진원, 그리고 현겸은 소파 위에 있었고 윤선은 TV가 잘 안 보인다며 테이블에 기대어 바닥에 앉아 있었다.'윤선이 반듯하게 깎아 놓은 사과를 세 사람이 번갈아가며 하나씩 없앴고 특별히 현겸은 그들이 먹는 한 조각을 아주 잘게 자른 접시를 앞에 두고 손으로 하나씩 먹었다. 그런데 진원만큼이나 기분이 좋았는지 현겸이 먹기 쉽도록 은주가 잘게 잘라 둔 사과 한 조각을 집더니 자신을 무릎에 앉히고 있는 진원에게 내미는 게 아닌가. 그 모습을 보며 윤선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후후. 천둥이, 오늘 기분이 좋은가 보네. 제 먹을 것도 나눠 주고.”'윤선의 말에 연속극에 집중하고 있던 은주도 그들을 바라보았다.'“오늘 현겸이 데리고 외출했었다며? 오빠, 점수 두둑이 땄나 보다. 큭큭.”'“그러게 말이다. 밖에서 놀아 주고 장난감 차까지 사줬으니 뭐, 오늘은 삼촌이 최고겠지.”'진원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리고 현겸의 손앞에서 입을 함지박하게 벌리며 현겸에게 말했다.'“우리 천둥이가 삼촌 입에 넣어 주세용!”'현겸의 손가락들이 진원의 입에 들어갔다 사과만 쏙 빠지고 도로 나왔다. 진원이 제 이빨만 한 작은 조각을 열심히 씹는 척 입을 오물거리면서 맛있다고 하니 현겸이 뿌듯한 듯 미소를 짓고는 다른 조각 하나를 집었다. 그러더니 이번엔 진원 옆에 있는 은주에게 내밀었다.'“엄마도? 어휴! 역시 우리 아들이네.”'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은주가 말했다. 좋아하면서도 은주는 바로 받아먹지 않았다. 대신 윤선에게 테이블의 휴지를 가리키며 말했다.'“엄마, 거기 티슈 좀.”'윤선이 테이블 위에 있는 현겸이 전용 물티슈를 내밀자 은주가 한 장을 톡 뽑아 현겸의 손을 닦았다. 그리고 그제야 현겸이 주는 사과를 입에 넣어 먹는 게 아닌가.'그 모습을 보며 윤선이 물었다.'“뭘 또 그렇게 닦니?”'“천둥이 손가락이 오빠 입속에 반 이상은 들어갔다 나왔잖아.”'“새삼 깨끗한 척은.”'윤선이 그렇게 핀잔을 주며 피식 웃었다. 그 말에 은주가 발끈하여 손사래를 치며 아니꼬운 표정으로 말했다.'“깨끗한 척이 아니라 오빠랑 간접 키스하는 게 되잖수. 엄마랑 신랑 건 상관없다 치는데 오빠 것까지는 좀…… 무리지.”'“무슨 또 키스씩이나…….”라고 말하지만 은주의 설명이 이해된다는 듯 윤선은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않고 드라마에 집중했다.'“설마 뭐 이런 걸로 서운하다 그러는 건 아니지?”'슬쩍 진원을 바라보며 은주가 물었다.'“서운은……. 네가 아무렇지 않게 먹었으면 나야말로 더…….”'진원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말을 멈추었다.'“왜 말을 하다 말아?”'은주의 물음에도 진원은 멍하기만 했다. 그러더니 잠시 후, 바보 같은 웃음을 지었다. 마치 뭔가 에로틱한 상상을 하는 사춘기 소년 같았다.'“뭐, 뭐야, 그 웃음은. 엄마, 오빠 봐. 오빠 이상해.”'은주의 말에도 윤선은 연속극에 흠뻑 심취해 눈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한참 미소를 짓고 있던 진원이 현겸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은주가 뭐라고 했냐고 묻지만 진원은 현겸을 끌어안고 웃으면서 말을 해주지 않았다. 현겸 역시도 진원의 말을 알아들었을 리 없었지만 진원이 웃으니 현겸도 웃었다.'현겸에게 진원이 한 말은 이러했다.'“나중에 잘되면 말이야, 한 번 더 부탁한다. 그땐 순서 바꿔서,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