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아침 안개가 자욱하게 낀 바다는 무척이나 몽환적이다. 습기를 잔뜩 빨아들인 망망한 곳을 지나자면 나무로 된 선체가 끼익거리며 비명을 질러댔다. 처음에는 사방이 희뿌옇기만 했으나 점점 주변 사물이 또렷해졌다. 순식간에 주위는 선명한 푸른빛이 가득 찼다. 위에 존재하는 하늘을 보아도 또 바다를 내려다보아도 명도와 채도의 차이만 있을 뿐 푸르다는 동질성을 지녔다. 이질적인 존재는 오직 홀로 나아가는 한 척의 배와, 그 배의 상갑판 위에 오롯이 서서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맞이하는 한 명의 소녀뿐이었다.'“아이고 이다 님, 여기 계셨군요.”'어느새 소녀 곁에 한 명의 중년 여인이 다가섰다. 어딘지 모르게 힐난이 섞인 어조란 것을 금방 눈치 챘는지 소녀는 배시시 웃었다. '“그렇게 웃지 마셔요. 제가 얼마나 당부 드리고 또 당부 드렸습니까? 여긴 남자만 득시글댄다고요. 일부러 시커먼 사내놈들의 눈요깃감이 되실 작정이십니까?”'이다는 격하지만 염려가 절절히 녹아 있는 유모의 어투에 무안해하며 푸른 바다로 고개를 돌렸다. '“선실에만 갇혀 있는 것이 답답해서 그래요. 유모에게는 미안하지만 솔직히 나온 것을 후회하지는 않아. 봐요, 얼마나 아름다워? 저기 날아다니는 갈매기도, 끝없이 출렁거리는 저 파도도, 가끔씩 수면으로 뛰어 오르는 물고기도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도리어 나 자신이 침입자가 된 것만 같아.”'유모는 뭇 사람의 시선을 차단하기 위해 쓴 얇은 베일 속에서 영롱하게 반짝이는 눈동자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점점 강해지는 바람을 타고 저 멀리 날아가버릴 것처럼 위태로워 보이는 이다를 응시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유모는 이다가 조금 전까지 바라보던 곳으로 시선을 돌리고 표정을 할 수 있는 한 부드럽게 폈다.'“하긴 바람을 쐬고 싶으시기도 할 거예요. 무슨 놈의 배에 소금에 절인 말린 고깃덩어리와 싸구려 와인, 딱딱해져버린 비스킷밖에 없담?”'입이 잔뜩 나와서 투덜거리는 유모를 바라보는 이다의 눈가에 언뜻 미소가 비쳤다.'“배에선 당연한 일일 텐데, 뭘.”'“제가 무식해서 잘 모르긴 하지만 보통 이렇게 배를 오래 타면 중간에 정박하는 곳이 있어서 잠시 쉬어가기도 한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우릴 고생시키려고 작정한 것인지 무작정 끌고 가기만 하잖아요. 덕분에 이런 고생을 하는 것이고. 하여간 니카인들이란…….”'“어쩌겠어요. 난 그들에게 있어 불청객에 불과한 것을.”'불만 가득한 말이 거듭 터져 나오던 유모의 입이 그 순간 딱 달라붙어버렸다. 유모는 민망한 마음에 투실투실하지만 따뜻한 두 손으로 이다의 한 손을 꼭 거머쥐었다.'“그냥 마음속의 응어리를 풀어버리세요. 지금은 비록 고되고 힘들지라도 분명 좋은 날이 올 거예요. 마님께서도 그러셨잖아요?”'말을 하자마자 유모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돌아가신 마님에 대한 언급은 암묵적인 금기였다. 그러나 유모의 걱정과는 달리 이다의 표정은 평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