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 장''''연산군 11년 11월 15일(병신) 전교하기를, 대내에서 일하는 공인(工人)이 일찍이 알고 있던 재상이 집에 왕래한다든지, 혹 근래에 자기 집에 안 오는 까닭을 물을 때 ‘대내에서 어떤 물건을 만들고 있다.’고 대답하는 자가 있으면 묻는 자와 대답한 자를 아울러 무거운 벌에 처하라. 그리고 근시(近侍)․별감(別監)등이 혹 조관(朝官)과 교제한다든지, 길에서 만나 알현하는 자가 있으면 아울러 잡아 치죄하라. 하였다.''봄날의 기운이 가득한 달이건만, 근자에 들어 달은 섬뜩하게만 보였다. 마당 가득 차갑게 깔린, 섬뜩하도록 푸른 달을 밟고 선 채로 해 저문 후부터 망연히 하늘을 올려다보던 상경은 불길한 기운만이 가득한 하늘을 원망했다. '“스승님도 아화 낭자도, 멀리서 활동하는 동무들도 모두 무사들 하겠지…….”'불타는 진성당을 마지막까지 지켜보면서 서서히 스며들던 어두운 기운이 날이 갈수록 그의 마음을 어둡게 만드는 것을 아는지, 달빛이 검푸르게 미끄러지며 그의 등 뒤에 차가운 그림자로 누웠다.'상경은 홍화루에서 올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개정 낭자에게 별다른 낭보가 없으니…….” '신윤무가 그녀의 미모와 나긋나긋한 애교에 정신을 못 차리게 휘어잡아야 하는데, 그 일이 그녀에게 어떤 의미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그로서는 감히 다시 입 밖에 꺼내는 것이 조심스럽기에 막연히 소식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달빛이 들어선 뜰을 서성거리는 그는 상사병에 걸린 사람처럼 또 커다란 한숨을 토해냈다. '“아화 낭자는 무사하겠지?” '스승과 벗들보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아화였다. 스승과 함께라면 염려할 것이 없으나 월성네로부터 그녀 혼자 움직이고 있다는 이야기를 건네 들은 후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녀가 무사히 있다는 소식만 들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내일 쯤, 진성당 터를 둘러봐야겠군.”'한규가 간자라는 사실을 아직 확인하지 못한 꼴이니 그는 어느 때보다 초조했다. 일단, 한규가 간자라 전제하고 그가 누구를 위해 일하는지 근 한 달 가까이 알아보고 있었지만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하고 있다.'“내일은 양덕방 쪽을 돌아야겠어.”'한양에서 김 서방과 박 서방을 찾는 식이니 답답한 마음에 상경 입에서 절로 한심이 나왔다. 한규가 눈에 띄기를 대책 없이 기다리며 임금의 최측근이 사는 북촌지역을 기점으로 5부 52방의 행정구역을 샅샅이 뒤지고 다니는 중이다. '상경이 막 방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턱수염을 휘날리며 사랑채를 나오던 행랑아범이 그에게 달려왔다. '“선비님에게 손님이 왔습니다.”'“손님?”'상경은 고개를 갸우뚱거렸으나 이윽고 찾아온 사람이 홍화루에서 왔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챘다.'“누구라고 하던가? 월……성네라 하던가?”'“귀신같으십니다요. 늙은 여인과 딸인 듯싶은 여인이 찾아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