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 디자이너인 아버지의 조수로 열심히 일하던 단이에게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진 생뚱맞은 날벼락.
생긴 게 영화배우 뺨치고 넘칠 만큼 몹시 잘생기면 뭐하나. 성격이 거지 같은데.
옷발이 좋으면 뭐하나. 그 옷 안에 자리한 인간이 별로인데.
그러나 그 남자는 불곰 같은 아버지의 능력을 인정해주고 심지어 뒤를 받쳐 줄지도 모를 문화재단의 이사장이기에 울며 겨자먹기로 단이는 이사장인 도율에게 사과를 한다. 그것으로 끝이면 좋으련만, 한 번 뒤틀린 인연의 끝을 알려주듯 친한 동네 오빠인 수빈까지 엮여 자꾸 부딪치게 되고, 그 부딪침이 작아질수록 단이는 사람을 믿지 않고 딱딱하기만 한 도율이 안쓰러우면서 그리 싫지 않게 되는데…….
-본문 중에서- “다른 여자 만나요.” 도율의 눈이 커졌다. 단이가 멈춰 서서 그를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딱 하루 여유 줄 테니까 나보다 더 사랑스럽고, 예쁘고, 당신을 많이 사랑해 줄 여자를 찾아봐요. 아무리 찾아봐도 없으면 장미 한 트럭이랑 키스 백만 번 준비해서 달려와요.” 단이는 머리카락을 건드리고 지나가는 바람의 숨결을 느끼며 그곳을 떠났다. 하지만 감미로운 건, 이런 바람이 아니라 그의 숨결이었다. 아직 그를 돌아볼 때가 아니다. 내 고개를 돌리게 하는 건 그의 의지여야 했다. 그리고 그것이 새로운 시작일 터였다. 이번에야말로 늦지 말고, 울게 만들지도 말고, 제발 빨리 와 주기를……. 홀로 남은 도율은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하지만 금세 애잔한 눈이 되어 단이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았다. 그래. 그녀는 그런 사람이었다. 솔직하고, 순수하고, 직선적이고, 무엇이든 제자리를 찾게 하려고 애쓰는 사람. 그녀는 그에게 기회를 주려 함인가.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사과하고,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누구인지 제대로 깨닫고서 다가오라는 것인가. 그러기 전엔 절대 받아 주지 않겠다고 나름대로 협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덜렁거리고 신뢰가 가지 않는다.’ 그녀에게 가졌던 첫 번째 편견. 그 편견을 깨기 위해서 그녀가 얼마나 조바심을 냈던가. 그 역시 그녀가 했던 것만큼 노력해야 했다. 부딪쳐야 했다. 그녀는 절대 자신을 버릴 사람이 아니다. 버리고, 버려지고, 이젠 그런 상념에서 벗어나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에만 집중해야 했다. 도율은 주머니에 한 손을 넣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향기처럼 청명하고 상큼한 숲의 바람이 도율을 휘감자 그의 입가에 그리움을 담은 듯한 은은한 미소가 걸렸다. “더 찾아볼 것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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