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조, 좋아해요. 교수님.”
“……내 생각엔 그쯤 하는 게 좋을 텐데.”
“아아, 어차피 내일 가시잖아요. 저 다 알아요! 알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한국대학교 흉부외과 2년째 막내 유다온.
내 노예 인생 이대로 끝날 수는 없다!
일생일대의 용기로 마지막 고백(?) 한번 대차게 지른 바로 그날 밤.
“막내야! 강 교수님 안 가신대! 그냥 우리 병원 있기로 했대!”
잇따른 비보와 함께 시작된 노예 인생 제2막.
돌이킬래야 돌이킬 수 없는 고백의 참사를 수습하고자
최연소, 최단, 최고, 모든 기록을 보유한 천재 교수님의 강제 어시스턴트로 낙점되다.
“제가 교수님께 고백한 건 전환점 같은 거랄까. 힘도 내고 용기도 얻고…… 버, 번지점프 하는 것처럼요!”
“그래서 나를 번지점프대로 써먹었다?”
“네?”
“네 말대로 이제 겨우 2년 채운 전공의가, 하늘 같은 교수한테 멋대로 뛰어들었다는 거네?”
그런데 이 교수님, 원래 이렇게 잘 웃는 분이셨나?
백설공주라 쓰고 노예라 읽는 CS 막내의 두근두근 생존기!
2. 작가 소개
최수현
필명은 연하늘빛.
다시 생각나고, 또 읽고 싶어지는
그런 글을 써보고 싶습니다.
m.blog.naver.com/sparklingcho
▣출간작
기다려줄래
그 여름 , 나는(2016 리디북스 로맨스 대상 수상)
당신의 자리
취향의 문제
겨울, 또다시
기억하나요
그곳에, 네가
비 내리는 밤
베이비 키스
애인의 조건
현실의 그대
가을, 만나다
결혼할까요?
하트 크러시
라이언 하트
처음 같은 너
3. 차례
#9
#마지막 이야기
#외전 1. Royal family
#외전 2. Hand in hand
#특별 외전. 하트 리부트
4. 미리 보기
눈앞에 보이는 하얀 병원 건물의 위용을 올려다보던 다온은 가슴을 가득 부풀렸다. 아직도 플래카드에 들어가 있는 주헌의 훤칠한 얼굴을 보자 코끝이 찡해졌다. 고작 몇 개월 전, 저 앞에서 얼마나 떨고 겁을 냈는지 떠올려보니 더욱 그랬다.
“…….”
내딛는 한 발 한 발이 떨렸다. 병원으로 점차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조마조마해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초조한 마음이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지금까지도 펄럭거리는 주헌의 얼굴을 그냥 넘길 수가 없다.
몇 달이 지나서도 여전한 남자. 남의 심장을 멋대로 주무르고도 씩 웃고 마는 사람이다. 한 번씩은 하늘 끝까지 가슴을 들어서 올려놓았다가도 어떤 때에는 저 바닥 아래까지 곤두박질치게끔 했다. 그래서 더욱…….
“늦었네.”
보고 싶었다.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고도 보고 싶게 만들었다. 더 가까이, 더 깊이, 그러고도 채워지지 않던 마음은 이렇게 가슴을 마주하고서야 따스해졌다.
“교수님!”
병원 앞 사거리 횡단보도, 그녀가 주헌의 앞에 다가섰다. 언제 어떻게 왔냐는 논리적인 질문도 이 남자에게만큼은 필요가 없다. 서 있는 모든 자리가 당연한 남자, 그래서 더는 불안하지 않았다.
“조금 더 빨리 올 줄 알았더니.”
주헌이 커다란 손으로 다온의 뒷머리를 쓸었다. 그 역시 그녀가 여기로 향할 것을 익히 알았던 듯 가만히 웃기만 했다. 얼어붙은 귓불만이 얼마나 오래 그녀를 기다렸는지 알려주었지만 다온은 새초롬하게 눈을 내리까느라 그걸 몰랐다.
“저 갈 데 은근히 많거든요. 왜 여기 올 거라고만 생각하셨어요?”
“내가 여기 있으니까.”
“……뭐예요, 그게.”
조금 더 도도하게 굴고 싶었던 계획도 곧바로 무산되어버렸다. 그녀가 투정도 못 하고 주헌을 마주하며 생긋 웃자 그 역시 다온의 두 뺨을 감싸왔다.
“안 추워?”
“네에. 참, 교수님! 저 초코우유 부자 됐어요! 오늘 만나는 사람마다 다 하나씩 주는 통에.”
다온이 이것 좀 보라며 한가득 찬 종이가방을 들어 보였지만 주헌은 피식 웃기만 했다. 사실 코끝이 빨개진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만도 즐거웠다. 그녀의 종알거리는 입술이 평소보다도 바빴다.
“근데 저 이거 다 교수님 드리려구요.”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난 괜찮으니까,”
“제가 그러고 싶어서요.”
“…….”
“너무너무 하고 싶은 게 많았거든요. 주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말도 얼마나 많았는지 몰라요.”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그 사람에게.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던 다온은 주헌의 빈손을 바라보았다. 한 번씩 그가 버릇처럼 들여다보던 두 손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이제는 안다.
주헌 역시 제 삶의 의미가 고스란히 남은 두 손을 다시금 들어 보였다. 그 어느 때보다 깊어진 눈매에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벅찬 웃음이 가득했다.
“……넌 그렇게 중요한 말을 나한테 해버려도 돼? 꼭 그 사람한테만 하겠다면서.”
“저도 그러려고 했는데요.”
“…….”
“더 늦고 싶지가 않아서요.”
그의 코트 깃을 꼭 잡은 다온이 떨었다. 역시 자신은 이 남자처럼 마냥 태연하기엔 아직은 많은 것이 부족했다.
“그리고 교수님이라면 아실 것 같아서요.”
“……뭘?”
“누군가를 꼭 살리고 싶은 마음이요.”
그래서 더 가까이에서 배우고 싶어졌다. 언제가 끝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마음에 그 누구보다도 가까이에서 닿고, 느끼고 싶다.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제가 얼마나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
“음, 잘 보이긴 하네.”
그답지 않은 눈웃음이 환하게 휘었다.
어쩌면 그도 다른 할 말을 찾지 못할 만큼 당황했는지 모른다. 같은 순간을 공유하고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지금이야말로 그 누구도 태연하게 넘어갈 수는 없을 테니.
“아마도 그렇게 살아왔던 걸 전부 보상받는 느낌이겠지.”
“…….”
“물론 나야 모르겠지만.”
시치미에만은 능하지 못한 남자라 더 웃음이 났다. 다온은 고개를 젓다 어느새 그에게 장단을 맞췄다.
“정말 그럴까요?”
“하루하루가 더 그렇지 않을까 싶네.”
“…….”
“물론 나야 모르겠지만.”
다온이 맑게 웃자 주헌이 머리를 쓸어넘겨주었다. 서로의 하얀 숨결이 따스하게 얽히는데 맞은편 병원을 앞두고 삶에 대한 크나큰 애정이 밀려들었다.
“더 전할 말 없으면 너도 이제,”
“하나만 더요.”
“……다온아.”
이렇게 전해주시겠어요.
두 팔을 벌린 그녀가 주헌의 허리를 깊이 감싸 안았다. 두 개의 심장이 맞닿자 더는 다른 말이 필요치 않다.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겹쳐지는 박동에 주헌이 슬며시 고개를 기울였다.
“……나야 좋긴 한데, 여기 사람 많은데 괜찮겠어?”
“으음.”
이미 횡단보도를 오가던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같이 그들에게로 쏠려 있다. 그중 몇몇은 자신들을 알 테고, 또 몇몇은 자신들이 살린 이들일 테고, 또 그렇게 자신들에게 새로운 삶의 의미를 부여할 이들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더는 두렵지가 않았다.
“아마 그러겠죠. CS 막내가 또 일 하나 쳤다고.”
“글쎄. 이번엔 그 정도로 끝나진 않을 것 같은데.”
“하늘 같은 교수님께 푹 빠져서 주체가 안 되겠거니 할지도요. 머리가 핑핑 돌아 헤어나오지도 못하고, 그러고 싶지도 않을 만큼…… 사랑한다고.”
“……다온아.”
그의 눈가에 맺힌 장난스러운 웃음이 사라져갔다. 그 흔적을 보란 듯 눈으로 좇던 다온이 주헌의 두 뺨을 감싸며 하얗게 웃었다.
“물론 저야 잘 알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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