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흐름에도 여전한 아버지와 곁에 선 아름다운 공작 부인.

그들의 뒤를 따라 들어오는 준수한 차남과 삼남.

마지막으로 공작을 쏙 빼닮은 장남과 사랑스러운 공녀까지.

참으로 완벽한 가족이었다.

—그녀만 없다면.

“멜리사…….”

그는 피로 물든 아이를 더없이 소중하게 끌어안았다.

늘 따뜻하게 내리쬐던 미소는 온데간데없었고,

의심 서린 시선이 그녀의 심장을 할퀴었다.

‘다행이다. 지금에라도 당신의 마음을 알 수 있게 되어서,

끝끝내 최후의 문만큼은 남겨 두어서 다행이다.’

가혹한 운명 속에서

그녀는 마음의 마지막 문을 열 수 있을까.

예정된 운명을 바꾸기 위해 마음을 닫은 여자와,

닫힌 문 뒤에 선 사람들의 판타지 성장 로맨스.

<목차>

1. 마지막…… 그리고 시작.

2. 약혼식

3. 리브레 데 프레딕

4. 피다 진 꽃

5. 세르닌 카인 케리노폰

6. 케리노폰 제국

7. 멘노스의 축복

8. 내 가족

에필로그. 이제야 시작된, 끝나지 않을 행복

외전. 우리가 모르는, 그리고 몰랐던 이야기

<본문 중에서>

마주한 얼굴에 발걸음을 멈췄다. 그쪽에서도 날 발견한 건지 마찬가지로 발걸음을 멈췄다. 반갑지 않은 미소에 얼굴이 일그러졌다.

“세피아.”

반갑지 않은 얼굴이 하나 더 보였다.

근무 중일 것이 분명한 아버지가 다급한 발걸음으로 그녀에게 향했다. 그녀를 품 안에 안는 모습은 영락없는 팔불출 아버지였다. 공녀의 옆에서 길을 안내하던 기사 또한 같은 생각이었는지, 보면 안 될 것을 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빠.”

“먼 길을 오느라 수고가 많았구나.”

징그러울 정도로 다정한 부녀의 모습이었다. 우습기는 하지만 별로 유쾌하지 않은 광경이었다. 나를 따라 멈춰 섰던 시종을 향해 손짓했다. 가만히 기다리고 있던 그가 발걸음을 움직였다.

조용히 두 사람을 지나칠 생각이었다. 저택에서조차 마주치고 싶지 않던 두 얼굴을 외부에서 마주하다니. 차라리 황태자와 황제의 잔소리를 동시에 듣는 게 훨씬 나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멜리사?”

의아함을 품은 목소리가 들렸다.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았다.

아버지의 당황한 얼굴이 먼저 시야에 들어왔다. 그 다음으로 들어온 것은 그에게 붙어 있는 공녀였다. 주눅이 든 얼굴로 그의 옆에 붙어 있는 공녀의 볼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어떻게 봐도 수줍어하는 모양새였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녀와 같은 족속들은 어째서 나를 이리 귀찮게 하는 것일까. 다정한 눈길 한 번 주지도 않았는데, 포기하지 않고 다가오는 그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하니 대치 상태가 이어졌다. 문득 그들에게서 한 발 떨어져 서 있던 기사의 눈빛이 느껴졌다. 묘한 눈빛이었으나 굳이 추리할 필요도 없었다. 타인의 눈에는 내가 선한 공녀를 괴롭히는 악녀로 보이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더군다나 이러한 대치 상태라면 더더욱 그렇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