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수틀 대신 검을 쥐고, 고운 비단치마 대신 거친 무복을 입고 살아가는 그녀, 은휘. 신분을 숨기고 때로는 조선 제일 거문 상단의 여행수로, 때로는 몰락한 성주 정씨 일문의 가주로 살아가는 그녀는 아름다운 꽃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이름 없는 들풀에 가까웠다. 자신을 버린 세상을, 지켜야 할 민초들을 끝내 외면하지 못하는 강하고도 슬픈 여인. 그런 그녀가 자신만큼이나 외로운 사내, 가윤을 만나 향기로운 꽃이 되고자 한다. 그리고 그녀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사내의 품에서 가장 억세고,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우려 한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병판의 아들, 조선 제일의 무관. 그러나 실상은 권력을 쫓아 어머니를 버린 부친의 슬하에서 누구보다도 외롭게 자란 사내. 가윤은 세상 안에서 방황하는 사람이었다. 10년 전 어머니를 잃던 날 자신의 눈물을 닦아 준 소녀와 운명처럼 재회해서 사랑에 빠지지만, 그가 사랑한 여인은 품안에 안기에는 너무도 슬프고, 너무도 커다란 여인이었다. 그래서, 지금 그 역시 세상을 안으려 한다. 그녀를 덮을 수 있는 그릇이 되고자 한다. 세상 안에는 그가 품고자 하는 그녀, 은휘가 있기에.


<본문 중에서>

첫 번째 입맞춤은 떨림이었고, 두 번째 입맞춤은 격정(激情)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세 번째 입맞춤은 슬픔이었다. 슬픈 여인의 입술이, 그녀만큼이나 슬픈 사내의 입술을 찾아들었다. 서러움을 머금은 그 부드러운 입술은 마치 그의 마음을 덮어주듯이 그의 입술에 닿았다.
가윤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눈가에 아직 남아 있는 눈물의 흔적이 시린 바람을 맞아 밤하늘로 차갑게 흩어졌다. 한동안 가만히 그의 입술을 머금고 있던 그녀가 천천히 멀어져 갔다. 그녀의 눈이 한가득, 그리고 다음으로는 그녀의 눈과 코가, 그리고 다시 그녀의 얼굴 전체가 그의 눈에 모두 들어왔을 때, 가윤은 그녀가 울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우습게도, 눈물 젖은 그녀의 입은 웃고 있었다.
“……왜 울지.”
“……마음이 저려 그러합니다.”
“……왜 웃지.”
“……마음이 벅차 그러합니다.”
무엇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까닭 없이 눈물이 날 만큼 어느 순간 가슴이 저렸다고. 까닭 없이 웃음을 흘릴 만큼 가슴 전체가 터질 듯이 벅찼다고. 슬픈 것이 아닌데도 눈물이 나고, 기쁜 것이 아닌데도 웃음이 나는 것은 대체 무슨 이유에서일까. 그들 모두 그 답을 알면서도 알지 못했다.
가윤이 그녀의 얼굴을 다시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입술로 그녀의 입술을 덮었다. 천천히 어루만져 주는 그의 입맞춤은 그가 그녀에게 전하는 위로였다. 그리고 그 자신에 대한 구원이었다. 서두르지 않고, 욕심내지 않고 서로를 어루만지는 그들의 입맞춤은 그들의 아픔이었다. 그 아픔은 둘이 만나 마음이 되었다. 그리고 그 마음은 다시 하나로 합쳐져 그들의 생(生)이 되었다. 별처럼 박힌 작은 불빛들 사이에서 서로의 생(生)을 만난 그들의 영혼은 밤하늘로 흩어져 달빛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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