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사랑의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지우.
그녀는 사랑이라는 것을 아니 첫사랑을 불행하게 만들어 놓고
자신만이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용납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지우 앞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믿지 않는 동하가 나타났다.
잊고 싶은 과거의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며 들추어내는 그에게
조금씩 빠져들게 되는데....

“제 무엇이 변했다고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변한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무님께서 왜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는지 그 의도를 잘 모르겠습니다.”

5년 전 그가 기억하는 그녀는 이제 어느 곳에도 없는 것이다. 지우는 그의 말 한마디에도 과거가 떠올라 흔들리고 있는 자신이 싫었다. 이미 지나가 자신에게는 없었던 때다 치부하고만 싶었다. 이미 과거는 지나가 기억에도 없다고 담담하게 말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자꾸 자신을 얽매려고 하는 과거 따위는 없었으면 좋겠다. 과거에 무심하고 싶었다.

여자를 어떻게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차가운 남자 동하.
원하는 것은 어느 것이나 손에 넣을 수 있었던 동하.
단 하나 그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애를 태우는 지우의 마음.
거부만 하는 그녀를 절대 용납할 수 없다.

“그런데 내가 더 궁금한 건 왜 당신이 날 싫어하는 걸까야. 혹시 따로 사귀는 사람이 있는 건가?”
동하의 물음에 지우가 그렇다고 말을 할까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 모든 문제를 일시에 종식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지우가 그렇다고 말을 하려 입을 벌리려고 할 때 동하가 빙긋이 웃으면서 말을 했다.
“나라면 대답하기 전에 조금 더 깊게 생각해 보고 말 할 것 같은데. 내가 그저 사귀는 사람 있다고 말하면 아! 그렇군. 그러면서 뒤로 물러 날 것 같은가? 난 아마 그 남자가 누구인지 확인까지 할 거야. 그러려면 당신은 정말 누군가를 만들어야 할 거고. 정말 복잡하고 귀찮은 일이 생기겠지.”
동하의 말에 지우가 새침하게 이야기했다.
“사귀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귀는 남자가 없다는 것 정도는 당신 눈빛만 봐도 알아. 당신의 눈은 절대 사랑에 빠진 여자의 눈빛일 수가 없거든.”
“사귀는 사람이 있던 없던 제 대답은 같습니다. 전무님과 이런 사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쩐다? 나는 당신의 그 생각에 절대 동의를 해 줄 수가 없는데. 당신말대로 당신을 지키는 골키퍼가 있는 것도 아닌데 내가 손을 놓을 이유가 없지 않아?”

그리고 유쾌 상쾌 바람둥이 서준과 불꽃같은 세연의 이야기.
네 남녀의 얽히고설킨 사랑이야기.


[미리보기]

“아니 이 시간까지 어디서 뭘 하다 오는 거야?”
생각지도 않은 동하의 등장에 지우의 눈이 크게 떠졌다. 지금 이 시간에 자신의 오피스텔 앞에서 그가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고 있었다. 새벽같이 현장에 가야 하는 세연을 생각해서 일찍 끝내려고 했지만 오히려 세연이 열불난다고 맥주를 홀짝이던 것이 과했는지 취해버려 세연을 집에까지 바래다주고 돌아오느라 시간이 많이 늦어 있었다. 동하는 늦게야 나타난 지우의 모습에 화를 내고 있었다. 기다림이 길었는지 갑자기 나타나 당황한 지우의 모습이 보였음에도 동하의 화가 풀리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전화는 왜 안 받아?”
일본에서부터 몇 차례나 그녀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으나 항상 받지 않고 있었다.
“퇴근했으니까요.”
“내가 회사일로 전화 했을지 어떻게 알아?”
그의 말에 조금은 놀라 지우가 되물었다.
“그랬어요?”
동하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행동에 지우가 아주 작은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거봐요. 아니잖아요. 그리고 지금 일본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보고 싶어서 왔어.”
동하의 한마디에 지우는 말문이 막혔다. 동하의 한마디에 지우는 굳은 듯 서 있었다. 지우의 머릿속에서는 동하의 소리만 맴돌았다.
'보고 싶어서…… 보고 싶어서…… '
동하의 목소리와 오버랩 되어 오랜 동안 묻어 두었던 기억이 자꾸 떠오르려고 하고 있었다. 지우는 손마디가 하얗게 되도록 손을 꼭 쥐었다. 딱딱하게만 보이는 지우의 반응에 동하는 고개를 저었다.
“난 당신 많이 보고 싶었는데 당신은 아니었나봐.”
살가운 동하의 말에 흔들리려는 자신의 마음이 싫었다. 간사해지는 마음이 싫었다. 마치 자신이 몹쓸 짓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지우. 보고 싶었다는 그 말 한마디가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
자신을 다잡으려 비웃듯이 말하고 있지만 지우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동하가 던진 그 말 한마디가 지우의 고요했던 가슴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지우가 자신의 아랫입술을 꼭 깨물고 가슴 밑바닥에서 솟아오르는 감정을 참다가 마지못해 말을 했다.
“제가 전무님을 보고 싶어 할…… 흡…….”
동하가 순식간에 두 손으로 지우의 얼굴을 잡은 채 자신의 입술로 그녀의 말문을 막아 버렸다. 지우는 너무나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동하의 뜨거운 키스를 받아 내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에 멍해있던 지우가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알자 동하에게서 벗어나려고 버둥거렸다. 그러나 동하는 강한 힘으로 지우를 안고 그녀의 입술을 거칠게 빼앗아 갔다. 지우의 두 손이 그의 가슴을 밀어 보지만 전혀 동요 없이 지우의 입술을 벌리고 그녀를 앗아가고 있었다. 그 힘에, 뜨거운 열정에 지우는 그저 숨만 쉴 뿐 더 이상의 반항도 하지 못하고 그를 받아내고 있었다. 동하는 1초의 시간도 아까운 듯 지우의 입술을 놓아 주지 않았다. 지우의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져 나갈 때 쯤 동하가 지우의 입술을 놓아 주었다. 그의 입술이 아쉬운 듯 떨어져 나가자 지우가 동하의 뺨을 세차게 때렸다.
“이런, 나쁜…… 흐…… 으흐흐.”
지우는 당황과 흥분. 알 수 없는 열남으로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지우에게 맞은 뺨을 쓰다듬으며 동하가 말했다.
“손도 야무지게 맵네. 당신답다.”
“지금 뭐하자는 거예요?”
“약속을 어긴 당신에게 내가 받은 범칙금이랄까…… 조금 과하게 징수했나?”
“뭐라고요?”
“둘이 있을 때는 이름을 부르라고 했을 텐데.”
동하의 말에 지우가 힘겨운 듯 한숨을 내쉬었다.
“전무…… 김동하 씨!”
다시금 눈빛이 변하는 동하를 보고 지우는 얼른 말을 바꾸었다. 동하의 눈빛이 반짝이며 입가에는 살며시 미소가 흘렀다.
“도대체, 왜 이러시는 거예요? 저 힘들어요. 이러지 마세요.”
“당신이야 말로 왜 날 받아 들이려고 하지 않는 거지? 내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안드는 건지 말해봐.”
지우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다. 당신의 전부가 마음에 안든다고 해야 하는 건지……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그에게 빠져들고 있는 자신이 두려운 것이었다.
“내가 강제로 했다고는 하지만 당신과의 키스, 나만 즐긴 것은 아니야. 분명 당신도 나를 느끼고 있었다고. 싫은 사람에게 그런 반응을 보이진 않아. 인정 할 건 인정해!”
“인정은 무슨? 말도 안돼요!”
“내가 키스할 때 당신 내 품에서 부셔져 내릴 것처럼 떨었어. 당신도 나를 느끼고 있었다고. 다시 보여 줘?”
동하가 지우의 손을 잡고 다시 안으려 하자 지우가 펄쩍 뛰며 말했다.
“무슨…… 됐어요. 만약, 만약…….”
지우는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해 허둥거렸다.
“만약 내가 그랬다면 그건…… 그건…… 당신 기술이 좋아서 그런 거예요.”
동하가 지우의 말을 듣고는 껄껄 웃었다. 그의 웃음에 지우가 멍하니 그를 올려다보았다.
“칭찬을 이런 식으로도 받아 보네. 그런데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데? 하하하“
지우는 자신이 한 말을 곱씹어 보고는 얼굴이 빨갛게 변했다.
“저 놀리시는 거 재미있어서 이러시는 거죠?”
“전에도 말했지만 재미는 있지만 놀리는 거 아니라니까. 당신이랑 있는 게 좋아. 당신이랑 있으면 웃음이나. 즐거워. 그래서 당신이 보고 싶었어. 딱딱한 노인네들 사이에 앉아서 그들의 투정어린 이야기를 듣다보니 나도 그런 노인네가 된 기분이었어. 유치하지만 당신과의 이런 대화가 미치도록 그리웠어. 아직 일정이 남았지만 정신 차리고 보니 내가 벌써 전용기 안에 앉아서 한국으로 날아오고 있더라고. 그러니까 밀어내지만 말고 나 좀 봐줘.”
아까의 장난기는 전혀 없는 동하의 진지한 말과 눈빛에 지우는 말없이 그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내가, 이 김동하가 들고 있는 내 패까지 보여주며 게임을 하자는 데 왜 참여하지 않는 거지?”
“이길…… 자신이 없으니까.”
지우가 작게 대답했다. 지우의 대답에 동하의 얼굴이 굳어 졌다.
“당신은 이기게 되어 있어. 이미 내가 들고 있는 패를 알잖아.”
“난…… 이런 게임…… 패를 안다고 해도 난 할 줄 모르니까.”
“내가 알려줄게.”
“공정하지 못해요!”
“난 그런 거 몰라.”
지우가 입을 다물고 동하를 바라보았다. 동하가 손을 들어 지우의 뺨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내가 게임의 룰을 알려줄게. 그러니까…… 나만 따라와.”
지우는 동하의 까만 눈동자에 홀린 듯이 서 있었다. 동하의 입술이 다시 한 번 지우의 입술에 다가 왔다. 그의 눈빛에 감전된 듯 움직일 수 없었다. 감기듯이 부드러운 숨결이 닿았다. 스르르 감기는 지우의 눈을 보며 동하도 눈을 감은 채 자신의 입술에 와 닿는 지우의 부드러운 입술에 열중하였다. 아까의 키스가 거칠었다면 지금의 키스는 너무나 부드러웠다. 부드럽다 못해 감미롭기까지 한 키스였다. 동하가 눈을 감은 채 약간은 떨리는 몸으로 자신의 양복 깃을 잡고 있는 지우를 꼭 안아 주었다. 그녀를 품에 안고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이렇게…… 지금처럼 이렇게…… 날 밀어 내지만 말고…….”
동하가 지우의 턱을 잡아 자신의 눈과 마주하게 했다.
“오늘밤. 이 밤을 잊을 수 없을 것 같아. 당신과 처음으로 숨결을 나누었던 이 밤을…….”
지우는 동하의 뜨거운 입술만을 느끼고 있었다. 그가 만들어내는 열기 안에 자신이 부서져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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