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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방 지음로망띠끄2015.05.28979-11-258-09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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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안 길레즈 체레자



그는 오로지 어둠 속에서만 존재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깜깜하고 긴 터널같던 그의 인생에 그녀가 갑자기 나타났다. 그리고 그녀로 인해 그는 결국 구원받았다. 


“난 돌아올거야. 난 네가 떠나라고 해서, 떠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야. 예전이라면 몰라도 이제 그럴 수 없어. 난 너 없이는 안돼. 너 없이는 내 심장이 뛰질 않아. 난 이제 그런 사람이 됐어. 윤...”

무기회사 EDOS사의 오너인 아드리안은 어느 봄 한국의 공항에서 까만 눈을 가진 그녀를 만났다. 그 운명적인 만남 이후 그의 인생의 궤도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지 윤 

불행했던 유년시절, 그리고 입양. 그녀는 자신의 삶을 오로지 혼자서 개척했다. 그리고 그녀가 오롯이 홀로서기 위해 할 수 있었던 일은 전쟁지역의 아이들을 돕는 일. 그렇게 전 세계의 아이들을 도와주기 위해 떠난 여행에서 그를 만났다. 까만 선글라스에 가려진 눈이 무슨 색깔일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그를 사랑하게 됐다. 

“우리에게, 나와 에드에게 과연 미래라는게 존재할까?”

전혀 다른 영역에 존재했던 그들이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했다. 하지만 결국 불행은 애초에 준비된 것이었다. 
윤의 죽음으로 절망에 빠진 아드리안. 그리고 다시 시작된 운명. 

체레자라는 이름으로 사랑하고 그 체레자라는 이름앞에 절망하는 아드리안과 윤의 이야기. 





<본문 중에서>

2008년 3월 21일 인천 국제공항 15시 17분 대한 항공편 VIP 라운지



넓은 개방형 유리 너머로 이착륙을 반복하는 비행기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봄을 알리는 비가 아침부터 추적추적 내려 넓은 면적의 밝은 회색빛 콘크리트 면이 짙은 검은색에 가깝게 바뀌었다. 하늘 역시 먹구름이 잔뜩 끼어 태양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잿빛으로 물든 세상은 거대한 공룡같은 비행기의 움직임마저 음울하게 만들어 놓았다. VIP 라운지에서 포브스지를 들고 있던 남자는 낯선 이국의 활주로를 눈에 담았다. 세계 어딜 가나 천편일률적으로 같은 풍경을 보여주는 활주로의 모습이 남다를 것 없었지만, 그는 경제지의 활자를 외면하고 이착륙하는 비행기들의 굼뜬 움직임을 눈에 담았다. 

“비행기 표 구했습니다. 지금 출발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방금 잔에 따른 위스키처럼 짙은 갈색 머리에 심해를 닮은 비취색 눈을 가진 남자를 향해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륙 시간은?”

남자의 낮은 음성에 티는 나지 않았지만 영어 외에 이국적인 억양이 담겨 있었다. 

“앞으로 이십 분 정도 남았습니다. 가장 마지막에 탑승하실 수 있도록 조치했습니다.”

한국에 입국했을 때 타고 왔던 전용기의 엔진 결함으로 출국 시간이 미뤄진 것이 바로 두 시간 전이었다. 존이 항공편을 알아보느라 분주한 사이 아드리안은 라운지에서 한국 체류기간 동안에는 무심하기만 했던 바깥 풍경을 눈에 담고 있었다. 존의 표정 속에 지체할 수 없음을 파악한 아드리안이 가볍게 일어났다. 그러곤 슈트 주머니의 선글라스를 꺼내 쓰고는 라운지를 나섰다. 



“미스터 리가 보낸 메일 보셨습니까?”

입국 게이트로 걸어가면서 존이 물었다. 

“협상 내용과 다르더군. 하지만 20% 가 아니면 절대 원하는 걸 가질 수 없다고 해.”

“급하긴 급했던 모양입니다. 확실히 지난번의 서해 바다 사건이 차분하기만 했던 한국 정부 쪽에 직격탄을 터트린 격이니 말입니다.”

존의 말에 아드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수록 잔머리를 굴리지 말아야지.”

아드리안의 말에 존이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륙 전에 메일 보내겠습니다.”

아드리안과 존은 공항을 가로질러 출국 심사대로 향했다. 문득 존은 자신의 보스가 이처럼 대중의 시선에 노출된 것이 처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공식석상에서조차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그가 전용기를 포기하고, 국제선을 타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서구적인 건축 기법에 아시아의 분위기를 한 공간에 버무려 놓은 듯한 공항 내부는 아드리안 길레즈 체레자의 존재를 그 누구도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혼잡했다. 하지만 이곳 어딘가에 사람들과 뒤섞여 있는 아드리안의 경호원들을 생각해 본다면, 그에게 이곳은 그리 노출된 장소도 아니었다. 눈에 띄는 아드리안의 외모가 갑작스레 조명을 받은 그리스의 조각상처럼 이따금 사람들의 시선을 붙들 뿐 그를 막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188이 넘는 장신의 키에 주름 하나 없이 딱 맞게 재단된 블랙 슈트 아래 꽉 조인 몸. 반은 이탈리아와 러시아를 그리고 나머지는 영국과 독일 혈통을 이어받은 그는 선글라스를 끼지 않았다면 그 생명력 없는 완벽한 조각 같은 얼굴로 인해 공항 한가운데서 모든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을 것이다. 

“10분 남았습니다. 출국 심사는 미리 패스하도록 조치했습니다. 바로 탑승 게이트로 향하시면 됩니다.” 

존의 안내에 따라 아드리안은 출입국 심사대를 지나, 탑승구로 향하는 넓은 게이트로 향했다. 면세점부터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의 북적거리는 인파 속에서 맨인블랙을 연상시키는 두 남자의 모습은 굉장히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정작 둘은 그걸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존은 이동 중에도 들고 있는 태블릿 PC로 메일을 확인하느라 바빴고, 아드리안은 이번 출장으로 얻은 것이 무엇인지 머릿속으로 헤아리는 중이었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아드리안의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 그가 비틀거릴 만큼 강한 타격이었지만, 상대는 그보다 더한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앗!”

자기 몸의 절반에 가까운 배낭가방이 머리 앞으로 쏠리자 여자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아드리안이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자신의 앞에서 넘어지려는 여자의 가방 손잡이를 뒤로 잡아당겼다. 허수아비처럼 비틀거리며, 여자가 그의 손에 딸려 왔다. 

“「미안해요.」어, 아니 미안해요!”

동양인 여자가 한국어로 사과를 하다가 그의 얼굴을 보고는 다시 영어로 바꿔 말했다. 

멀리서 경호원 셋이 다급하게 그에게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위험인물일지도 모르는 사람이 보스의 사정권 안으로 느닷없이 침입했으니, 멀리서도 경호원들의 얼굴이 사색이 된 게 보였다. 그에 반해 아드리안은 여유가 있었다. 

“미안해요. 저 지금 비행기 놓치기 일보 직전이에요. 팔 분 남았어요. 팔 분!”

여전히 가방을 붙들고 있는 아드리안의 손에서 버둥거리는 여자를 놓자마자, 다시 앞으로 튕겨져 나갈 듯 여자가 뛸 준비를 했다. 그는 이미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는 경호원들을 향해 손을 들어 더 이상의 접근을 막았다. 

칠흑같이 어두운 머리카락과 서양인처럼 창백한 낯빛 하지만 의례 있을 주근깨 대신 투명한 피부에 블랙 펄처럼 사물을 깊이로 반사시키는 까만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손에 한 주먹도 안 되는 여린 목을 연신 끄덕이며, 다급함과 미안함 속에서 여자는 그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시선을 내리니 멕시코 여인들이 신는 강렬한 원색의 알록달록 철 지난 플랫슈즈 위로 앙증맞은 발가락들이 꼬물거리며, 어서 뛰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그의 경호원들이 이미 그들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것도 모르는 채 여자는 숨을 헐떡거리며, 전방과 그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늦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바로 그 비행기를 탈 예정이니까.”

문득 여자의 체크무늬 블라우스 주머니에 빼꼼 삐져나와 있는 빳빳한 비행기 표를 가리키며 아드리안이 고조 없이 말했다. 

“진짜요? 어머, 다행이다. 감사합니다.”

어차피 그가 탑승하지 않는다면, 비행기 역시 뜨지 않을 것이다. 국제 사회에서 그의 지위는 어디에서나 유효했다. 

“뉴욕행 맞죠?”

창백하기만 했던 여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인형처럼 매끄러울 거 같은 피부의 감촉이 아드리안의 주먹 사이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숨소리가 잦아지자, 여자의 영어가 얼마나 유창한지 그리고 그 목소리가 얼마나 활기에 넘쳐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그의 심장을 얼마나 가파르게 오르내리게 하는지 여자는 알지 못했다. 

쌍꺼풀 없이 동그란 눈이 오롯이 그만을 응시하자, 개방된 전면 유리창 밖으로 이제 막 이륙을 시작하는 거대한 비행기의 동체가 먹먹한 고함을 내지르며 하늘을 향해 서서히 솟구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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