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백수연. 나의 이름이오. 그리고 나는 내가 왜 여기 있는 것인지 알지 못하겠소. 그대는 누구이며 여기는 어디오? 그리고 내 천의는 어디에 있소?”

반복되던 일상에 지친 의대생 수연. 그리고 그녀에게 다가온 꿈속의 제안.

『키득, 정말로 판타지 세계로 갈래?』

천녀의 신분으로 화나라에 떨어진 수연은 대무녀에게서 황제의 반려의 자리를 제안받지만, 이곳이 자신의 세계가 아니라는 생각에 언제나 관망하는 자세를 취한다. 황제는 그런 수연이 자꾸 거슬리기만 한데…….

천녀? 천의? 하계? 뭔 말이야, 이게. 설마 진짜로 내가 이 세계로 온 건 아니겠지.

나는 꿈속에서 내 귓가를 맴돌던 말을 떠올렸다. 그 괴상하기 이를 데 없는 목소리가 주. 인. 없. 는 천의를 줄 테니 내 능력껏 잘 살아보라고 했다.

그거 꿈이 아니었어?

※ ‘가하 에픽’은 다양한 시대, 색다른 소재, 독특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은 도서출판 가하의 새로운 브랜드입니다. 로맨틱한 판타지가 가득한 가하 에픽, 지금 만나보세요!

2. 작가 소개

호즈니

▣ 출간작

황후의 하루(전3권/완결)

3. 차례

#1. 하계로의 추락

#2. 황궁 적응기

#3. 황후마마 되기

4. 미리 보기

“호접, 월병은 다 만드셨소?”

멍하니 머리를 빗겨주는 호접을 보며 수연이 입을 열었다. 배 속에서 밥 달라고 아주 아우성을 친다.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혹여 궁녀들에게 들릴까 너무 민망하다. 망할 황제 자식 때문에 밥도 못 먹고 연회장에서 또 굶게 생겼잖아. 나는 배고프다는 의미를 담아 호접이 눈치 채기를 바라며 은근슬쩍 월병 이야기를 꺼냈다. 근데 호접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화들짝 놀란다. 그래도 곧 표정을 수습하고는 본래 인자한 얼굴로 웃으며 답해주었다.

“월병 말씀이십니까? 물론 맛나게 만들어두었지요. 허나…….”

허나, 뭘? 설마 월병을 나 자는 사이 궁녀들끼리 먹어버렸단 말을 꺼내려는 것은 아니겠지?

“점심도 거르셔서 빈속이실 텐데, 월병을 드시면 몸에 안 좋습니다. 간단히 죽이라도 저수시고, 한두 개 맛보시는 게 어떨는지요?”

오예! 역시 호접은 눈치가 빨라. 언제 준비해둔 것인지 호접의 손짓에 궁녀들이 음식이 담긴 그릇들은 가지고 들어온다. 나는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서 궁녀들이 떠서 먹여주는 음식들을 날름날름 받아먹었다. 남들이 먹여주는 것도 꽤 괜찮은걸? 그러나 양은 그리 많지 않았다. 어흑, 여기 여자들은 조금밖에 안 먹어? 무슨 죽 양이 이리 적어? 입 적시는 정도밖에 못 먹었다. 그래도 더 달라고 하면 황후 체면에 좀 그렇겠지? 월병이나 먹자. 연회복에 부스러기 떨어질까 잘게 쪼갠 월병이 내 입 속에 쏙 들어온다. 음, 달콤해.

“호호, 황후마마의 기분이 좋으신 것 같아 다행이옵니다.”

헉, 너무 표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나? 호접의 웃음에 나는 다시 조신하게 표정을 가다듬었다. 안 돼, 앞으로 내 이미지는 우아하고 위엄 넘치고, 현명한 황후란 말이다. 절대 도망칠 것 같은 가벼운 이미지로 보여선 안 된다고. 어쨌든 배는 적당히 채워지고 그 졸린 치장도 간신히 눈을 부릅떠가며 버티어냈다.

그리고 드디어 완성된 나의 공식적인 황후의 자태가 드러났다. 정말 반나절 만에 만든 옷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연회복은 너무나도 화려하고 딱 봐도 나는 황후이니라 하는 티가 팍팍 났다. 준비도 다 되었고, 황후의 의무를 다하러 가야지? 나는 월궁 밖에 대기 중인 봉연에 올랐다. 호접이 내 옆에서 따라 걸어오고 내 연 뒤로는 궁녀들이 뒤따른다.

“황제 폐하께서는 중화전에서 계시니, 거기서 황제 폐하와 같이 태화전으로 듭시면 되옵니다.”

화려하게 등이 켜진 길을 가면서 호접이 내게 말을 건네었다. 황제가 어디 있던 알게 뭐람. 그러나 나는 황제를 도우러 하늘에서 내려온 천녀이며 지금은 황제의 반려인 황후니까 역할에 충실해야지. 호접의 말에 나는 싱긋 웃어주면서 알았다고 대답해주었다. 연기는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으면 안 되는 거야. 안 그럼 거짓인 게 금방 들통 날 테니까.

그렇지만 중화전에 들어서서 날 기다리고 있는 황제를 보는 순간, 울컥 화가 치미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나는 이미 모든 감정정리를 끝냈는데 말이다. 한 발 한 발 황제에게 다가갈수록, 미소 가득했던 내 얼굴이 차갑게 굳어갔다.

“황후, 몸은 괜찮으시오?”

아픈 적도 없었어! 황제의 목소리가 내 심기를 건드린다. 관심도 없으면서 괜히 건들지 말란 말야! 잘해줘서 착각했었어. 잠깐 다정하게 굴어준 걸로 마치 내 사람인 양, 정말 진짜로 내 남편이 된 것처럼 말이야.

“아주 푹 자고 일어났더니, 모든 것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제게 신경 쓰지 마십시오.”

나는 만면에 거짓 미소를 가득 띠우고는 화답해주었다. 그러고는 황제의 옆자리에 당당히 선 나는 나보다 훨씬 키가 큰 황제를 한번 올려다보고는 똑바로 앞을 직시했다. 나는 하늘의 고귀한 존재인 천녀다. 황제 뒤꽁무니나 졸졸 따라다니는 수동적인 황후 따위가 아니란 말이다. 오히려 황제가 천녀인 내게 선택당하는 쪽인 거야.

궁관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리고, 나와 황제는 화려하고 현란한 빛이 발하는 연회장으로 한 발 한 발 들어섰다. 태화전 안에서 왁자지껄 시끄럽던 소리가 일순간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모든 이들이 우리를 향해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여전히 익숙하지는 않은 상황이지만, 앞으로 황후로 삶을 살려면 이런 것쯤은 금방 익숙해져야겠지. 지금 내 얼굴에 마음에도 없는 미소가 저절로 퍼져 있는 것처럼 금방 적응할 거야.

그런데 이 따끔한 시선은 뭐지? 내 자리에 앉은 나는 끈덕지게 바라보는 시선의 주인을 찾아 눈을 돌렸다. 근데 태화전 내에 사람이 좀 많아야지. 게다 날 보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네.

“요나라의 사신, 파혁제궁 화나라 황제 폐하의 국혼을 경하드립니다.”

아, 지겹다. 어제에 이어 또 사신단 얼굴 마주하고 있어야 하다니. 그러나 사신단 앞에서는 더더욱 근엄한 황후의 모습을 보여줘야지.

“황후마마께오서는 과연 미색이 천하제일이시옵니다.”

하지만 내가 어제에 이어 오늘 아침 후궁 하례까지 그 소리는 귀에 딱지가 내리도록 들었다. 입바른 소리에 살짝 심술이 난 나는 이름도 넉 자인데다 발음하기도 어려운 요나라 사신에게 예의 미소를 띠우며 입을 열었다.

“요나라 사신은 나의 겉모습밖에 안 보이는가?”

“네?”

오늘 쌓인 것도 많은데, 어디 한번 화풀이 좀 하자. 내가 만만해 보이는 사람 갈구는 게 스트레스 해소법이거든.

“감히 하계의 기준으로 나를 평가하다니, 요나라의 사신은 어리석구려.”

“그, 그것이…….”

“잘 들으시오, 요나라의 사신이여. 지금 그대가 보는 화나라의 황후는 과거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화나라를 위해 내려온 천. 녀. 라는 존재이오. 하계의 여인들은 미색이 뛰어나다 하면 기뻐할지도 모르나 나는 아니오. 입에 발린 말로 나를 속이려 하지 마시오. 심. 히. 불쾌하오. 알아들으시겠소?”

“…….”

“알. 아. 들. 으. 시. 겠. 소?”

“……예, 예에. 황후마마.”

만족스러운 미소가 입가에 걸린다. 좀 나이도 연로하신 요나라의 사신을 괴롭힌 것만 같아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마는, 입바른 소리로 내 비위를 맞추려 한 것은 사실 아닌가. 내가 나를 봐도 천하제일의 미색은 아니란 말이다. 단지 하계인이라 불리는 자들이 갖지 못하는 검은 머리칼과 검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는 희소성 때문에 조금 특별하게 보이는 거겠지. 어쨌든 남한테 화풀이를 했더니 스트레스가 좀 풀린다.

오만하게 자신을 내려다보는 천녀, 아니, 이제 화나라의 황후의 서슬 퍼런 말에 몸을 움츠린 것은 비단 요나라의 사신뿐이 아니었다. 어제만 해도 황제 곁에서 방긋방긋 웃고 있었지만, 오늘은 확실히 천녀로서의 위압감이 온몸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태화전 내의 사람들 전부 느낄 만큼의 기운이 말이다. 이거 참, 어제 황제의 살기에 이어 아주 식은땀으로 목욕을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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