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욕심이 아이를 죽였어! 한순간도 아이와 나를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야 당신은!"남편은 말했다. 나 때문에 아이가 죽었다고. 난 그저 내일을 열심히 하면서 아이 또한 사랑할 뿐인데.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그의 눈을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당신 때문에 우리 현수가 죽었어!"이미 돌이킬 수 없는 시간 앞에서 소희는 우는 법을 잊었다. 아니 울 수가 없었다.정말 자신 때문에 아이가 죽었으니까. 우는 대신에 가슴이 아프다.가슴이 너무 아파서, 이대로 정말 죽었으면 좋겠다. 정말……"당신은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자식이 죽었는데…… 어떻게 울지 않을 수가 있지? 어떻게!"결국 서로의 아픔은 챙겨주지 못한 채 이혼했다. 하지만 집을 구할 때까지 여전히 같은 집에서 같은 아픔을 가지고 생활해야 하는 두 사람.부부가 아닌 그저 함께 살고 있는 동거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두 사람."여보, 난 울 수가 없어. 내가 어떻게 울어? 내가 무슨 자격으로. 자식을 그렇게 보낸 모진 어미가 어떻게 울 수가 있어! 어떻게!"시커멓게 타 버린 가슴을 보여주며 소희는 울고 있었다. 두 손에 시뻘건 피로 물들인 채 가슴을 치면서 목 놓아 울고 말았다.

자식을 가슴에 묻고 , 매일 밤 아이가 죽는 그 날을 꿈으로 보는데도 소희는 그걸 악몽이라 말할 수가 없다. 그 꿈이 어떻게 악몽이 될 수가 있을까? 자신을 보며 환하게 웃는 아들의 모습이 보이는데.


-본문 중에서

“집에 가야하는 거 아냐? 남편 기다릴텐데.”
“남편? 선배, 나 이혼했어요.”
과일을 집어 들던 정한은 깜짝 놀라며 집었던 과일을 놓쳤다. 그리고는 이내 소희의 얼굴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무슨 말이야? 이혼이라니!”
“그냥. 힘들더라고. 서로 눈 마주치는 것도 힘들고, 서로 모른 척 외면하는 것도 힘들어서.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거. 당연히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이 없다는 게 견디기 힘드네.”
“소희야. 그래도 너희…… 그러면 안 되잖아.”
“선배.”
“응.”
“나는요. 울 수가 없어요.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아…… 도울 수가 없어요. 나에게 울 자격이나 있나. 울지 못하니까, 웃어야지. 웃어야지. 그렇게 웃다보면 이 답답한 가슴이 그래도 시원해지지 않을까?”
주먹으로 가슴을 치면서 소희는 웃고 있었다. 그런데 그 웃는 모습이 울고 있는 것보다 더 가슴 아파 보였다. 그게 이제야 보였다. 현수의 사고 소식에 병원사람들 몇 명이 빈소를 찾아 갔을 때 멍하니 앉아 아들의 영정사진을 바라보고 있는 소희를 보았었다. 그때는 정말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얼굴이 조금 창백해 보일 뿐 찾아 온 사람들에게 희미한 웃음을 짓고 있는 소희를 보며 병원 사람들이 뭐라 말했던 게 생각이 났었다. 어떻게 자식을 잃은 엄마가 저렇게 웃을 수 있느냐고. 욕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심한 말을 주고받았던 동료들의 말이 생각났다. 그런데, 저런 눈을 하고 웃고 있었구나. 금방이라도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눈으로, 울어버릴 것만 같은 눈을 하고 웃고 있었구나.
“소희야. 너 그러면 안돼. 너도 알고 있잖아. 그러다 더 심해지면 우울증도 오고…….”
“선배. 선배만은 날 이해해 줄래요? 자식 잃은 어미가 웃을 수밖에 없는 이유. 선배는 이해해 줄 수 있어요?”
“그럼 너도 알고 있었니?”
“후후후.”
물론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자신의 뒤에서 주고 받는 말들에 대해서. 어떻게 저렇게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느냐고! 자식이 죽었는데, 너무 편안한 얼굴로 웃을 수 있느냐고. 자식 가슴에 묻고 겨우 열흘 만에 나와서 다시 환자를 돌보는 소희의 뒤에서 수근거리던 사람들의 목소리, 물론 소희도 다 듣고 있었다. 하지만 웃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울어야 하나? 울지 못하는데, 억지로 울어야 하나? 눈물이 나오지 않는데. 어떻게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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