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만 잡고 잤어요’ 세 번이면 몸에서 사리 열두 대접도 넘게 나온다는데



한경이와 한솔이, 십 오년을 넘는 시간동안 가족 아닌 가족으로 살며



손만 잡고 자기를 수 몇 번.



그동안 한솔이의 허벅지가 살아남은 것이 기적이다.



윗집 아랫집이란 인연으로 15년을 꼭 붙어살며 한 지붕 밑 살림도 2년이나 했지만



한 이불은 절대로 못 덮는 사연.



그건 바로 고등학교 선배인 신민호와 서한경의 비밀스런 관계.



한경이의 비밀을 알면서도 한경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포기하지 못하는 한솔이.



과연 한경이의 본심을 알아내고 그 사랑을 쟁취할 수 있을까?






-본문 중에서-






“한솔아.”



“어, 어?”



“나, 그냥…… 우리…… 그냥 식 올릴까?”



“머머, 뭐?”



한솔이는 하마터면 자리에 털썩 주저앉을 뻔했다.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오르며 심장까지 쿵쾅거리고 머릿속에서 천만가지의 생각들이 한꺼번에 서로 먼저 들고 일어나겠다고 아우성을 쳐대는 바람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한경이가 보게 되면 한경이에 대해 아직도 마음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음을 들키게 되고 그러면 앞으로 단 몇 달간만의 시간이라도 한경이와 한집에서 지내기에 서로 어색함이 생길 걸 알기에 얼른 몸을 돌려 소파에 앉는 시늉을 하며 일단 소리부터 질렀다.



“야!”



한솔이는 목소리가 떨리지 않아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당황스러워 하는 한솔이의 모습을 눈치를 챘는지 어떤지 한경이가 재킷을 벗어 식탁의자에 걸치며 조금쯤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말…… 안 되나?”



그런 한경이를 보며 한솔이가 언뜻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그러고 보니 한경이가 그냥 아주 아무 생각 없이 던진 얘기는 아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무 말이나 책임감 없이 하지 않는 한경이인데 금세 소문날 줄 알면서도 반장 아주머니에게 그런 말을 한 것도 그렇고, 아무래도 한경이 다운 행동은 아니었다.



“너 혹시 오늘 집에 가서 무슨 얘기 들었니?”



한솔이가 다시 소파에서 일어나 한경이 쪽으로 걸어가서 물었고 한경이는 대답 대신 한솔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혹시 아줌마가…… 너 여기 있는 거, 오해하셔? 아님…….”



갑자기 한솔이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번득 스치고 지나갔다.



“헉! 혹시…… 너 선보라 그러시니?”



한경이는 역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랬구나! 너 선보라 그러셨구나. 그랬구나…….”



그러고 보니 왜 한경이가 반장 아주머니에게 곧 식을 올릴 거라는 둥 또 한솔이에게도 그렇게 물었는지 갑자기 이해가 될 것 같았다. 만약에 한경이 부모님이 한경이에게 선을 보라 하시고 결혼에 대해 얘기를 꺼내셨다면 한경이 사정을 모르시는 부모님에게 무조건 싫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고 또 그렇다고 한경이 성격에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여자를 앞에 앉혀놓고서 시간낭비 시키고 싶지도 않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한경이 비밀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인 한솔이와 결혼을 하게 되면 비록 그게 형식적이고 표면적으로만 정상적인 결혼식일지라도 한경이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훌륭한 해결방법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물론 그건 한솔이가 본인이 진정한 사랑을 만나 평범한 결혼생활을 할 기회를 스스로 완벽하게 포기하는 것이 되는 것이었고 그건 또한 완벽하게 미친 짓이었다. 그렇지만 한솔이는 한경이가 그렇게 해달라고 하면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해주게 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느네 부모님 아직도 아무 눈치 못 채신 거지? 선보는 날짜 벌써 잡아 놓으셨니?”



한솔이 머릿속에서 어떤 생각들이 오고갔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한경이의 얼굴에서는 아무 감정도 읽을 수 없었지만 순간적으로 한경이의 눈빛에 아주 어두운 그림자가 보일 듯 말 듯 스쳐지나갔다.



“……아니…… 됐어, 그만두자. 신경 쓰지 마.”



한경이가 살짝 웃음을 지어 보였는데 그 웃음이 눈가에까지는 미치지 않아서 어딘지 오히려 슬퍼 보이기까지 했다. 방으로 들어가려는 한경이 등 뒤에서 한솔이는 왠지 이렇게 이 대화를 그냥 중간에 마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한경이를 불러 세웠다.



“한경아.”



“임한솔.”



그 순간 한경이가 휙 돌아서며 동시에 한솔이를 부르는 바람에 이유 없이 당황한 한솔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어?”



“넌…… 넌……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해?”



“어?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야?”



너무나도 진지하게 물어오는 한경이의 질문에 한솔이는 갑자기 얘가 오늘 무슨 날 잡았나 왜 이러지? 하는 생각을 했다.



“십 오년을 친구로 지냈는데, 그리고 이년을 같이 살았는데, 그런데도 넌 나를 아직 너무 잘 모르는 것 같아서 하는 소리야. 아니, 어쩌면 나를 잘 알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지도 모르지…….”



“얘가…… 밥 잘 먹고 와서 갑자기 엉뚱하게 그게 무슨 얘기냐고. 널 잘 모르다니, 그리고 널 알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건 또 뭐야. 내가 너에 대해 모르는 게 뭐 있니? 하다못해 니 옷장에 무슨 색깔 팬티가 몇 장 있는 것도 다 아는데. 야, 남녀 사이에 팬티 색깔 텄으면 더 이상 더 틀 것도 없어.”



자신의 팔을 장난스럽게 툭 치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느냐는 한솔이를 한경이는 여전히 진지한 표정으로 웃음기 하나 없이 물끄러미 바라보았고 그런 한경이를 보며 한솔이도 얼굴에 가득했던 웃음기를 거두었다. 뭔가 아주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것 같았는데 그게 뭔지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고…… 아니 어쩌면 정말 한경이 말대로 알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한솔이를 바라보는 한경이의 얼굴이 점점 더 딱딱하게 굳어가기 시작했고 이마에 핏줄까지 일어나고 있었다. 여느 때 같았으면 한번 피식 웃으며 농담인 듯 그렇게 장단 맞춰주고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오늘은 더 이상 그런 식으로 눙치며 넘어가지지 않았다.



“한번도, 정말 단 한 번도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었어? 내가 민호 선배랑 사귀었다는 그, 말도 안 되는 얘기? 나, 서한경, 니가 십 오년이나 알아온 내가, 이성이 아닌 동성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거, 정말로 그게 이상하다는 생각, 안 들었어? 그게 그렇게 쉽게, 받아들여지고, 인정이 돼?”



“뭐…… 뭐라고……?”



갑작스런 한경이의 질문이 한솔이는 한 번에 이해가 가지 않았다.









미리보기





1. 프롤로그






“서한경, 나 바람났다.”



“캑캑, 뭐, 뭐가 나?”



느닷없는 한솔이의 선언에 한경이가 씹고 있던 사과가 잘못 넘어가 캑캑거리고 말까지 더듬었다.



“바람났다고…….”



한솔이가 포크로 사과를 하나 찍어서 입에 넣지는 않고 손가락으로 포크를 이리저리 돌리기만 하며 말했다. 그런 한솔이를 잠시 아주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한경이가 입 안에 있는 사과를 마저 씹어 삼키고서는 읽고 있던 책과 함께 포크를 식탁에 탁 소리가 나게 내려놨다.



“야, 임한솔. 소위 바람이 난다는 건 말이지, 일단은, 데리고 살고 있는 남편이 있든지 아니면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남친이 있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전제조건하에 정신적 육체적으로 딴 놈에게 훅 갔을 때, 그럴 때 ‘바람이 났다’라는 표현을 쓰는 거거든? 근데, 너, 남편 있냐?”



“아니.”



“그럼,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놈 있어?”



“아니.”



“근데, 니가 무슨 바람이 나 바람이! 꿈도 야무지시지, 무슨 숫처녀가 산통 앓는 소리하고 자빠졌어.”



한경이가 다다다 퍼부어 대는 소리를 들으며 한솔이의 눈꼬리가 처지면서 아랫입술이 삐죽이 나왔다.



“누가 법조계 사람 아니랄까 봐 꼭 그렇게 딱딱 찝어가며 따지니? 마음에 바람이 들었으니 바람이 났다 그러는 거지! 그리고 나, 같이 사는 놈은 있잖아. 너…….”



“니가 날 남자 취급을 하기나 하면서 그런 소릴 해.”



“그게 내 탓이야?”



한솔이의 말에 한경이의 눈빛이 잠깐이지만 몹시도 차가워지는 걸 한솔이는 보지 못했다.



“됐고, 뭐야, 이번엔 또 어떤 놈팡이랑 짝사랑을 하는 건데.”



“치이…… 짝사랑은…….”



짝사랑이라는 말에 살짝 눈을 흘기는 한솔이었지만 금세 들릴 듯 말 듯한 한숨을 내쉬며 먹지는 않고 가지고 놀던 사과를 내려놓고서 엄지손톱을 앞니로 살짝 깨물었다.



“설마 지 피디?”



“어유야 미쳤니! 그 성질머리 개차반 같은 인간을!”



“그럼, 홍 엔지? 그 사람은 니 타입 아니잖아.”



“아우! 완전 바람둥이에 나이도 많은 노땅을 갖다 붙이긴 어디다 갖다 붙여! 아니 근데 넌 어떻게 나랑 일하는 사람들을 그렇게 다 알아?”



“네가 매번 입에 달고 다니잖아. 지 피디 그 개 엑스엑스, 원고를 또 깠네 어쩌네, 홍 엔지 여자가 또 바뀌었네 저쩌네.”



“치이.”



한솔이의 눈모양이 샐쭉해졌다.



“암튼 그럼 누구. 네 주변에 지 피디랑 홍 엔지 아니면 싱글남 없잖아. 작가실에 누구 새로 왔어?”



“아니.”



“그럼 뭐야! 어떤 키 크고 다리 긴 자식한테 또 눈이 휙 뒤집혀서 이래.”



한솔이가 삐죽이 내밀었던 입술을 거두고서 머뭇머뭇 하며 입 안에서 누군가의 이름을 말했는데 너무 얼버무려서 확실히 이름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누구?”



“에이 씨! 민우라구! 샤이나 민우!”



“뭐? 누구?”



한경이는 너무 기가 막혀서 답도 안 나온다는 표정으로 잠깐 동안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었다.



“너 무슨 사생팬 그런 거 하냐?”



“어따 대고 사생팬이래! 그런 거 아니란 말이야!”



“너 그래서 오늘 방송국 들어갔던 거야? 민우 본다고?”



“아, 증말, 아니라니까? 막내작가 감기 걸려서 며칠 째 겔겔 거린다고. 그래서 사연 정리하는 거 좀 도와주고 음악파일 받으러 자료실도 좀 들르고, 그래서 겸사겸사 들른 거라니까.”



“아, 네, 그러세요.”



한경이가 고개를 끄덕끄덕 하며 비꼬는 말투로 말을 했지만 한솔이는 그냥 못들은 척하고는 마치 오늘 있었던 어떤 장면을 다시 회상하기라도 하는 듯 눈을 살포시 감고서 얼굴에 만족스런 미소를 뗬다.



“니가 봤어야 해. 세상에 어쩜 그렇게 다리가 길 수가 있지? 걔는 실생활이 화보고 포샵이더라 야. 그 눈은 또 어떻고, 쌍까풀이 완전 예술이야 예술. 그건 의느님의 은총으로도 불가능한 눈매인 것이지.”



“잘 한다.”



“너 자꾸 그럼 질투 나서 그런 줄 안다?”



“너, 민우가 몇 살인지는 알고 이러지 지금?”



“한경아, 니가 너무 책만 들고 파서 잘 몰라서 그러는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라는 명언이 있단다. 위아래로 열 살은 아무 문제가 안 되는 세상이야 요즘 세상이. 그거 비하면 민우 군이랑 나는 다섯 살 밖에 차이 안 나고 그리고 내가 어디가면 스무 살 정도로 보인다 소리 많이 듣거든?”



“그게 아니라 너 하는 짓이 스무 살도 안 된 철부지 같다 소리겠지.”



“얘가 진짜!”



“됐다 됐어. 민운지 하는 아이돌 가수님하고는 본인이 알아서 바람을 피든 사생팬질을 하든 알아서 하고. 그나저나, 너 이번 금요일 방송반 모임 안 나갈 거야?”



한경의 질문에 한솔이 금세 웃음을 거두고서 뭐 씹은 표정이 되었다.



“안 가. 너 혼자 가.”



“너 그 모임 안 나간 지 벌써 수년이야. 서일 고등학교 방송반 선후배들끼리 모여서 친목 다지자고 네가 나서서 만든 모임이잖아. 그래놓고 정작 네가 안 나가면 어떡해.”



“그래도 싫어. 지난번에 나갔을 때 보니까 나 없어도 하나도 아쉬울 것 없이 잘 돌아가는 모임이던걸 뭐. 술도 못 마시는데 그런 자리 별로 재미없어 이제.”



“졸업반 후배 한 명 새로 온다고 그랬어. 너희 방송국 아나운서 시험 봤는가 보더라. 방송반 선후배 중에 유일하게 방송국 다니는 선배 만나고 싶다고 그랬대.”



“나 토요일 원고 나가야 하는 거 많단 말이야.”



“너 집중만 하면 두 꼭지 정도는 금세 후다닥 쓰잖아.”



“아우! 너 정말 왜 이렇게 보채니?”



“나 그날 북부지검 파견 나갔다가 퇴근하고서 인터뷰 있어. 차 가지고 나갈 건데 술 마셔야 하니까 너 운전 시키려고 그러지.”



“뭐얏! 야, 대리는 그럴 때 쓰라고 있는 거거든?”



“공익 법무원 박봉인 거 몰라서 그래? 대리한테 몇 만원씩, 나 그거 낼 돈 없어. 네가 운전 해.”



“아우 구두쇠, 쫌팽이……. 근데 인터뷰는 뭐 하러 가는데?”



“임관 얼마 안 남았잖아.”



“아……. 그렇지…….”



“암튼 그럼, 가는 걸로 안다 알았지? 재우한테 너 간다고 얘기 해놓는다.”



“알았어. 에잇, 너 때매 못 살아 증말.”



“오늘 설거지 네가 해라, 요즘 계속 야근했더니 피곤해 죽겠다.”



“얼랄라? 이건 또 무슨 소리?”



한솔이 두 눈에서 레이저 빔이라도 나올 듯 쏘아보았지만 한경은 아랑곳 하지 않고 의자를 끼이익 소리가 나도록 뒤로 밀고 일어나더니 식탁 위에 얹어둔 책을 집어 들고서 한 손을 들어 까닥 하고 인사를 하고는 방 쪽으로 걸어갔다.



“야! 그냥 들어가면 어떻게 해! 오늘 설거지 당번 너란 말이야! 야! 서한경! 너는 법관이란 놈이 이따위로 계약 안 지키고 그럴 거야! 넌 그러고도 나라에서 주는 돈을 받아 처먹냐! 아우 저 자식을 증말! 너 자꾸 이따위로 하면 당장 방 빼라 그럴 거야 알아! 이거 엄연한 세입자의 만행이고 인권 유린이야! 내가 시청에 고발할 거야 너!”



한솔이가 말이 되는지 어쩌는지 그냥 생각나는 대로 주워섬기는데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한경이는 들은 체 만 체 하며 방문을 탁 닫고 들어갔고 그런 한경이를 향해 한솔이가 손짓발짓을 해가며 또다시 온갖 욕을 다 퍼부어댔다.



“아우 저 호랑말코 같은 자식, 내가 처음부터 저 자식을 우리 집에 들여놓는 게 아니었어. 지가 설거지 빨래 다리미질 다 한다고 설레발 쳐대면서 제발 방 하나 빼달라고 해댈 때는 언제고 이젠 아주 대놓고 배 째라야. 아우 저 개…….”



그러나 아무리 욕을 해댄들 이미 때는 늦으리. 2년 전 한경이가 들어올 때 전세금이라며 건네주었던 돈은 이미 학자금 대출상환으로 없어진 지 오래고 지금은 오히려 한경이가 이사 가겠다며 전세금 빼댈라고 하면 바짓가랑이 붙들고 늘어지며 내보낼 수 없다고 붙잡아야 할 판이었다. 그리고 한경이가 반씩 부담해 주는 관리비와 생활비가 아니었으면 쥐꼬리만 한 방송작가 월급에 이 집을 유지하고 살기는 힘들었을 거라는 걸 너무나 잘 알기에, 성격대로라면 3절까지 퍼부었을 욕을 2절까지만 하고 접었다.



그래도 입을 한 자나 내빼고서 가끔씩 한경이 방문 쪽으로 살벌하게 한 번씩 눈을 흘기는 한솔이는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딸그락 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저녁 먹은 식탁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러다 싱크대에 거품에 쌓이기 시작하면서 한솔이의 머릿속에 오늘 낮에 보았던 민우의 그 우월한 몸매가 떠오르자 입가가 쓰윽 올라갔다.



“하……. 도대체 뭘 먹고 자라면 그런 알흠다운 몸매가 나오는 것이쥐? 내일도 게스트로 나온다고 했는데 사인 해달라고 그러면 좀 쪽팔리려나?”



어느새 얼굴에 해맑은 웃음이 한가득 번진 한솔이는 핸드폰에서 뭔가를 찾아 싱크대에 올려놨다. 그리고 민우가 멤버로 있는 아이돌 그룹 샤이나의 노래가 핸드폰에서 나오기 시작하자 고개를 끄덕끄덕, 손가락도 한번 이리저리 찌름찌름, 엉덩이도 살짝 실룩실룩, 어쭙잖은 스텝도 한 번씩 왔다갔다, 이래 가며 노래를 흥얼흥얼 따라 부르며 설거지를 시작했다.






* * *






방으로 들어와 통나무가 넘어가듯 침대에 철퍼덕 누운 한경이는 눈을 감고서 문 밖에서 들리는 소리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 화려한 욕 잔치 후에 딸그락거리는 그릇소리를 들으며 저러다 그릇 깨지 싶었는데 쨍그랑 소리나 으악 뭐 이런 소리 안 들리는 걸로 봐서는 다행히도 그릇들은 무사한 듯싶었다.



잠시 후 음악에 맞춰 한솔이가 음정은 무시한 채 흥얼거리며 부르는 노래 소리에 보나마나 제 흥에 겨운 막춤을 추고 있을 한솔이의 모습이 눈에 선해 저절로 한경이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지만 곧 미소를 거두고 한숨을 푹 내쉬면서 한 팔을 올려 눈을 가렸다.



너무 엉켜버렸다. 풀고 싶은데 어디서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처음 엉키기 시작했을 때 그때 바로 풀었어야 했는데, 왜 그냥 그렇게 놔둔 건지…….



눈에 올려놨던 팔을 들어 침대 헤드보드 위에 놓여있는 사진액자를 집었다. 사진 속에는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한경이와 한솔이가 한 손에는 각자 졸업장을 들고 다른 한 손은 한솔이가 한경이 팔에 팔짱을 끼고서 브이 자를 그리며 웃고 있었다.



풀어야 한다. 더 이상 엉키게 놔두면 가위로 다 난도질 하듯 잘라내야 해서 어떻게 다시 이어 붙일 수도 없게 될 수도 있다. 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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