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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뱀파이어와 키스를

채현 지음도서출판 가하201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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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 979-11-295-023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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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 소개
“전통적으로 목을 주로 무나요?”
그러자 그가 살짝 인상을 썼다.
“아니, 저기. 뱀파이어도 사람인데
처음 본 사람 목부터 물 정도로 무례하진 않거든요.”
그가 살짝 기분이 상한 모양이었다.
“손 주세요. 손목에서 혈관 찾는 게 빠르니까.”
도시의 구석에 둥지를 튼 '나'에게 다가온 불면증,
그리고 옆집의 그 남자.
희고 차가운 그가 말한다. 나는 사실 뱀파이어예요.
뱀파이어면 또 어떤가.
그저 나에게 깊은 숙면을 제공해주는 자라면 악마라도 만나겠어.
아, 이미 만난 건가?
너무나도 섹시한 그 남자와 먹고 먹히는
그렇고 그런 관계를 시작해버렸다. 어쩌면 좋아!
2. 작가 소개
채현
친구들이 ‘스타워즈’에서 루크 스카이워커를 좋아할 때, 핸 솔로를 좋아했다. 친구들이 ‘캔디캔디’에서 앤소니와 테리우스를 좋아할 때, 알버트 아저씨를 밀었다.
취향은 언제나 일정한데, 정신 차려보니 동갑내기 남편이랑 같이 살고 있다.
뭔가를 수집해야 하는 나쁜 버릇 덕분에 온갖 잡동사니에 둘러싸여 사는 중.
「사랑보다 더」, 「라 발스」, 「러브 콘체르토」, 「푸른 수염의 성을 나오다」, 「4색 로맨스 : 일상 혹은 환상」(공저) 등을 출간하였다.
3. 차례
01. 옆집 사는 뱀파이어
02. 늑대인간과 춤을
03.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
04. 커피 칸타타
05. 옆집 여자 관찰기
작가 후기
4. 미리 보기
“정말 물어도 돼요?”
미심쩍은 듯이 확인을 하는 이 남자의 소심함이 짜증이 났다.
“물라니까요, 제발. 나 잠 좀 자게 해줘요.”
버럭 소리쳤다. 난 원래 자존심 없는 여자이다.
“자게 해주면 뭐 줄 건데요?”
순간 다시 머리뚜껑이 열리려 했다. 이보셔, 사람이 그러는 거 아니지. 서로 상부상조하면서 살아야지, 각박하게 꼭 그렇게 굴어야겠어? 물론 아무 말도 못 했다.
“피 마실 거잖아요. 그리고 우리 이웃사촌 아니에요. 이웃사촌이면 서로 좀 친하게 지내야죠.”
어차피 나 매혈해서 자려는 여자야, 두려울 게 뭐가 있단 말인가. 아니 그전에 내 모럴은 어디 있냐는 둥 헛소리를 하려거든 당신도 세 달 동안 잠 못 자봐. 나처럼 되지. 내 자신 있게 말하는데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건 성욕도 식욕도 아닌 수면욕이야!
“그건 자본주의 논리에 맞지 않는데요.”
남자가 시큰둥하게 손톱으로 귀를 후비면서 말했다.
“네, 뭐라고요?”
이 뱀파이어가 나에게 자본주의 같은 단어를 꺼냈다. 뱀파이어면 뱀파이어답게 먹이 앞에서 체면을 지키란 말이다, 이 썩을 뱀파이어 놈아. 물론 마음속으로만 욕했다.
“왜 자본주의 논리에 맞지 않는다는 건데요?”
마음이 급해진 내가 들이댔다.
“아니, 저는 404호 씨가 원하는 걸 갖고 있어요. 그렇죠? 근데 404호 씨와 서로 물건을 교환할 때 내 물건이 404호 씨가 갖고 있는 것보다 더 좋으면 이거 등가교환이 안 되잖아요. 안 그래요?”
그가 바보 같은 학생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선생님이라도 된 양 아주 상냥한 척 설명해주면서 내 속을 벅벅 긁어 왔다. 뭐라고, 이 써글놈아! 등가교환?
“그래서요? 뭐가 더 필요한데요? 돈이면 돼? 얼마면 되는데?”
이미 눈이 홱까닥 뒤집힌 나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내뱉었다.
“뭐 그래도 이웃사촌끼리 잘 지내야죠. 일단은 물어드리는 걸로 하지요. 근데 조건이 있어요.”
이 남자 말을 하면 할수록 성격 나쁜 게 점점 드러나고 있었다. 그래서 또 뭔데? 소리라도 버럭 지르고 싶은 걸 억지로 꾹꾹 눌렀다.
“내가 원하면 그 집에 들어갈 수 있게 해줘요.”
“도어 록 비번은 3912…….”
“그건 이미 아는 거고. 나한테 집에 들어오라고 정식으로 초대해줘요.”
이 새끼, 언제 우리 집 비번까지 알아낸 거야? 그나저나 진짜 뱀파이어는 뱀파이어인 모양이었다. 초대하지 않으면 절대 들어올 수 없는. 내가 그동안 뱀파이어물 좀 보았지.
“그래요. 그래. 까짓것 그래 우리 집도 당신 집 해요. 계속 잘 들어오십쇼.”
남자가 웃자 짧다고 생각했던 송곳니가 꽤 길게 뻗어 나오는 게 보였다. 지난밤엔 별로 길어 보이지 않았는데, 그때는 적당히 감추었던가 보다. 이 사기꾼 뱀파이어 놈 님 같으니라고!
그렇다 그는 뱀파이어.
나를 잠재워줄 드림 나이트(Dream Knight).
내가 다시 손목을 들이대자 그가 좀 주춤했다.
“아니, 저기 식사하기 전에 예절이란 게 있는데 무턱대고 들이대면 바로 깨무는 건 좀 그렇지 않아요?”
당신이 낭랑 18세야, 내외하게 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일단은 참았다. 수틀려서 안 문다고 하면 나는 또 오늘밤도 새하얗게 지새우겠지. 불치병이라는데 평생 잠 못 자겠지.
“씻고 올까요?”
내가 다시 황급히 물었다.
“아니, 그건 괜찮은데 좀 분위기는 내보죠.”
“네?”
남자 입에서 나온 예상 밖의 단어에 나는 그만 놀란 기색을 내비춰 보이고 말았다. 이거에 또 이 섬세한 뱀파이어 양반께선 심기가 좀 상하신 모양이셨다.
“영화에서 뱀파이어가 그냥 처음부터 무는 거 봤어요? 물 만한 분위기를 조성해야 물 마음이라도 생기지. 사람도 밥 먹기 전에 기도라도 하든가 하잖아요.”
지금 그러니까 나이 서른은 넘어 보이는 남자가 ―실제 추정나이는 전혀 모르지만 더 많을 걸로 짐작된다― 분위기를 찾고 앉아 있는 웃기는 상황인 거네.
헛하고 비웃지 않으려 갖은 애를 다 썼다. 그런데 내 표정을 읽었는지 그의 표정은 더욱 험악해졌다. 그래도 다행히 마음은 바꾸지 않은 모양이었다. 대신 미묘하게 다른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똑같은 데 물면 재미없잖아요. 똑같은 피 빠는 것도 지겨운데 무는 자리라도 좀 바꿔보든가 해야지.”
혼자 불평을 늘어놓더니만 크고 하얀 손마디가 긴 아름다운 손이 뼈만 남은 내 어깨를 살짝 잡았다. 내가 놀라 주춤했지만, 그의 긴 손이 흘러내려온 산발이 된 긴 머리카락을 옆으로 슬쩍 넘기까지 했다.
사실 목을 물 거라곤 생각 못 했기 때문에 조금 당황했다. 체온이 낮은 누군가의 손가락의 냉기가 옷을 뚫고 내 살갗까지 닿았다.
그리고 지난밤의 그것은 단순한 전조였을 뿐이었다.
내 어깨를 틀어쥔 남자의 악력은 의외로 셌다. 마른 체구여서 아랫집 늑대인간처럼 힘이 좋아 보이진 않았는데. 그리고 그는 내 목을 뚫어져라 보면서 물 곳을 찾는 듯했다.
그가 엄지손가락으로 내 아랫입술을 건드렸다. 내가 움찔하며 살짝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적재적소의 곳을 찾았는지, 남자가 고개를 천천히 숙여 왔기 때문이다.
그는 방금 전에 그의 손가락으로 만졌던 내 입술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살짝 열에 들뜬 입술에 서늘하게 닿은 403호의 입술이 달콤한 연인인 듯 아랫입술을 부드럽게 빨아왔다. 그러나 조심스레 접근했던 입술은 순식간에 다시 내 입술을 가르며 침입했다.
차가운 물의 송어처럼 체온이 다른 사람의 살이 나의 입 안을 자유로이 유영하고 있었다.
곧 깊숙이 파고든 그의 혀가 나의 혀를 휘감고 희롱하기 시작했다. 나는 왠지 그가 얄미워져서 살짝 그의 혀를 물었다. 그러자 파닥거리는 생선이라도 되는 듯이 순식간에 온 입 안을 헤집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숨쉬기 곤란할 정도의 강렬한 움직임에 흠칫 놀랐지만 이미 어깨가 잡혀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니, ‘지금 일단은 어떻게든 이 남자가 나를 물게 만들어야 하니 물고 싶은 마음을 만들어주는 게 좋겠지.’라고, 나는 심지어 자신을 설득하려 하는 중이었다. 헐떡거리는 와중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점점 그의 혀는 내 체온에 맞추어서 점점 따뜻해지고 있었다. 그렇게 행위가 농밀해지면 질수록 그 따뜻한 숨결이 입술뿐만 아니라 온몸으로 번져나갔다.
그가 잠시 내가 숨을 쉴 수 있게 입을 떼었을 때 나는 투덜거렸다.
“그래서 언제 물어줄 건데요?”
헐떡거리며 불평하는 내게 그가 답했다.
“난 맛있는 건 가장 마지막에 먹거든요.”
이런, 아뿔싸. 왜 마녀 언니가 그렇게 말렸는지, 그 남자 나쁘다고 말했는지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걸려들었구나. 나는 내 어리석음을 탓했다. 그가 내 입에 대고 후후 웃는 게 느껴졌지만 나는 눈을 감고 있었기 때문에 알 수 없었다.
곧 차가운 숨결이 내 목을 간질이고 목에 차가운 뭔가가 닿는다. 목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낯선 사람의 숨. 뱀파이어도 살아 있나 보다, 숨을 쉬는 것을 보니. 그러고 난 뒤 내 목에 살짝 박히는 따끔한 느낌. 송곳니를 박아 넣었나 보다.
송곳니가 들어오는 아릿한 통증이 느껴지면서 낯선 이방인의 입술이 내 목을 빨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잠과는 다른 뭔가가 같이 오고 있었다. 몽롱함과 더불어.
뭔가 속은 것 같은 기분도 들었고, 마녀 언니와 늑대 아저씨가 조심하라고 말했던 이유를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뭐야, 이 사기꾼, 이러면서도 나는 잠이 비실비실 찾아온다는 게 너무 좋아서 슬며시 웃었다.
그 와중에도 그는 내 목을 핥고 있었다.
그래 너는 핥아라, 나는 자마.
“전통적으로 목을 주로 무나요?”
그러자 그가 살짝 인상을 썼다.
“아니, 저기. 뱀파이어도 사람인데
처음 본 사람 목부터 물 정도로 무례하진 않거든요.”
그가 살짝 기분이 상한 모양이었다.
“손 주세요. 손목에서 혈관 찾는 게 빠르니까.”
도시의 구석에 둥지를 튼 '나'에게 다가온 불면증,
그리고 옆집의 그 남자.
희고 차가운 그가 말한다. 나는 사실 뱀파이어예요.
뱀파이어면 또 어떤가.
그저 나에게 깊은 숙면을 제공해주는 자라면 악마라도 만나겠어.
아, 이미 만난 건가?
너무나도 섹시한 그 남자와 먹고 먹히는
그렇고 그런 관계를 시작해버렸다. 어쩌면 좋아!
2. 작가 소개
채현
친구들이 ‘스타워즈’에서 루크 스카이워커를 좋아할 때, 핸 솔로를 좋아했다. 친구들이 ‘캔디캔디’에서 앤소니와 테리우스를 좋아할 때, 알버트 아저씨를 밀었다.
취향은 언제나 일정한데, 정신 차려보니 동갑내기 남편이랑 같이 살고 있다.
뭔가를 수집해야 하는 나쁜 버릇 덕분에 온갖 잡동사니에 둘러싸여 사는 중.
「사랑보다 더」, 「라 발스」, 「러브 콘체르토」, 「푸른 수염의 성을 나오다」, 「4색 로맨스 : 일상 혹은 환상」(공저) 등을 출간하였다.
3. 차례
01. 옆집 사는 뱀파이어
02. 늑대인간과 춤을
03.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
04. 커피 칸타타
05. 옆집 여자 관찰기
작가 후기
4. 미리 보기
“정말 물어도 돼요?”
미심쩍은 듯이 확인을 하는 이 남자의 소심함이 짜증이 났다.
“물라니까요, 제발. 나 잠 좀 자게 해줘요.”
버럭 소리쳤다. 난 원래 자존심 없는 여자이다.
“자게 해주면 뭐 줄 건데요?”
순간 다시 머리뚜껑이 열리려 했다. 이보셔, 사람이 그러는 거 아니지. 서로 상부상조하면서 살아야지, 각박하게 꼭 그렇게 굴어야겠어? 물론 아무 말도 못 했다.
“피 마실 거잖아요. 그리고 우리 이웃사촌 아니에요. 이웃사촌이면 서로 좀 친하게 지내야죠.”
어차피 나 매혈해서 자려는 여자야, 두려울 게 뭐가 있단 말인가. 아니 그전에 내 모럴은 어디 있냐는 둥 헛소리를 하려거든 당신도 세 달 동안 잠 못 자봐. 나처럼 되지. 내 자신 있게 말하는데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건 성욕도 식욕도 아닌 수면욕이야!
“그건 자본주의 논리에 맞지 않는데요.”
남자가 시큰둥하게 손톱으로 귀를 후비면서 말했다.
“네, 뭐라고요?”
이 뱀파이어가 나에게 자본주의 같은 단어를 꺼냈다. 뱀파이어면 뱀파이어답게 먹이 앞에서 체면을 지키란 말이다, 이 썩을 뱀파이어 놈아. 물론 마음속으로만 욕했다.
“왜 자본주의 논리에 맞지 않는다는 건데요?”
마음이 급해진 내가 들이댔다.
“아니, 저는 404호 씨가 원하는 걸 갖고 있어요. 그렇죠? 근데 404호 씨와 서로 물건을 교환할 때 내 물건이 404호 씨가 갖고 있는 것보다 더 좋으면 이거 등가교환이 안 되잖아요. 안 그래요?”
그가 바보 같은 학생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선생님이라도 된 양 아주 상냥한 척 설명해주면서 내 속을 벅벅 긁어 왔다. 뭐라고, 이 써글놈아! 등가교환?
“그래서요? 뭐가 더 필요한데요? 돈이면 돼? 얼마면 되는데?”
이미 눈이 홱까닥 뒤집힌 나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내뱉었다.
“뭐 그래도 이웃사촌끼리 잘 지내야죠. 일단은 물어드리는 걸로 하지요. 근데 조건이 있어요.”
이 남자 말을 하면 할수록 성격 나쁜 게 점점 드러나고 있었다. 그래서 또 뭔데? 소리라도 버럭 지르고 싶은 걸 억지로 꾹꾹 눌렀다.
“내가 원하면 그 집에 들어갈 수 있게 해줘요.”
“도어 록 비번은 3912…….”
“그건 이미 아는 거고. 나한테 집에 들어오라고 정식으로 초대해줘요.”
이 새끼, 언제 우리 집 비번까지 알아낸 거야? 그나저나 진짜 뱀파이어는 뱀파이어인 모양이었다. 초대하지 않으면 절대 들어올 수 없는. 내가 그동안 뱀파이어물 좀 보았지.
“그래요. 그래. 까짓것 그래 우리 집도 당신 집 해요. 계속 잘 들어오십쇼.”
남자가 웃자 짧다고 생각했던 송곳니가 꽤 길게 뻗어 나오는 게 보였다. 지난밤엔 별로 길어 보이지 않았는데, 그때는 적당히 감추었던가 보다. 이 사기꾼 뱀파이어 놈 님 같으니라고!
그렇다 그는 뱀파이어.
나를 잠재워줄 드림 나이트(Dream Knight).
내가 다시 손목을 들이대자 그가 좀 주춤했다.
“아니, 저기 식사하기 전에 예절이란 게 있는데 무턱대고 들이대면 바로 깨무는 건 좀 그렇지 않아요?”
당신이 낭랑 18세야, 내외하게 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일단은 참았다. 수틀려서 안 문다고 하면 나는 또 오늘밤도 새하얗게 지새우겠지. 불치병이라는데 평생 잠 못 자겠지.
“씻고 올까요?”
내가 다시 황급히 물었다.
“아니, 그건 괜찮은데 좀 분위기는 내보죠.”
“네?”
남자 입에서 나온 예상 밖의 단어에 나는 그만 놀란 기색을 내비춰 보이고 말았다. 이거에 또 이 섬세한 뱀파이어 양반께선 심기가 좀 상하신 모양이셨다.
“영화에서 뱀파이어가 그냥 처음부터 무는 거 봤어요? 물 만한 분위기를 조성해야 물 마음이라도 생기지. 사람도 밥 먹기 전에 기도라도 하든가 하잖아요.”
지금 그러니까 나이 서른은 넘어 보이는 남자가 ―실제 추정나이는 전혀 모르지만 더 많을 걸로 짐작된다― 분위기를 찾고 앉아 있는 웃기는 상황인 거네.
헛하고 비웃지 않으려 갖은 애를 다 썼다. 그런데 내 표정을 읽었는지 그의 표정은 더욱 험악해졌다. 그래도 다행히 마음은 바꾸지 않은 모양이었다. 대신 미묘하게 다른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똑같은 데 물면 재미없잖아요. 똑같은 피 빠는 것도 지겨운데 무는 자리라도 좀 바꿔보든가 해야지.”
혼자 불평을 늘어놓더니만 크고 하얀 손마디가 긴 아름다운 손이 뼈만 남은 내 어깨를 살짝 잡았다. 내가 놀라 주춤했지만, 그의 긴 손이 흘러내려온 산발이 된 긴 머리카락을 옆으로 슬쩍 넘기까지 했다.
사실 목을 물 거라곤 생각 못 했기 때문에 조금 당황했다. 체온이 낮은 누군가의 손가락의 냉기가 옷을 뚫고 내 살갗까지 닿았다.
그리고 지난밤의 그것은 단순한 전조였을 뿐이었다.
내 어깨를 틀어쥔 남자의 악력은 의외로 셌다. 마른 체구여서 아랫집 늑대인간처럼 힘이 좋아 보이진 않았는데. 그리고 그는 내 목을 뚫어져라 보면서 물 곳을 찾는 듯했다.
그가 엄지손가락으로 내 아랫입술을 건드렸다. 내가 움찔하며 살짝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적재적소의 곳을 찾았는지, 남자가 고개를 천천히 숙여 왔기 때문이다.
그는 방금 전에 그의 손가락으로 만졌던 내 입술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살짝 열에 들뜬 입술에 서늘하게 닿은 403호의 입술이 달콤한 연인인 듯 아랫입술을 부드럽게 빨아왔다. 그러나 조심스레 접근했던 입술은 순식간에 다시 내 입술을 가르며 침입했다.
차가운 물의 송어처럼 체온이 다른 사람의 살이 나의 입 안을 자유로이 유영하고 있었다.
곧 깊숙이 파고든 그의 혀가 나의 혀를 휘감고 희롱하기 시작했다. 나는 왠지 그가 얄미워져서 살짝 그의 혀를 물었다. 그러자 파닥거리는 생선이라도 되는 듯이 순식간에 온 입 안을 헤집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숨쉬기 곤란할 정도의 강렬한 움직임에 흠칫 놀랐지만 이미 어깨가 잡혀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니, ‘지금 일단은 어떻게든 이 남자가 나를 물게 만들어야 하니 물고 싶은 마음을 만들어주는 게 좋겠지.’라고, 나는 심지어 자신을 설득하려 하는 중이었다. 헐떡거리는 와중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점점 그의 혀는 내 체온에 맞추어서 점점 따뜻해지고 있었다. 그렇게 행위가 농밀해지면 질수록 그 따뜻한 숨결이 입술뿐만 아니라 온몸으로 번져나갔다.
그가 잠시 내가 숨을 쉴 수 있게 입을 떼었을 때 나는 투덜거렸다.
“그래서 언제 물어줄 건데요?”
헐떡거리며 불평하는 내게 그가 답했다.
“난 맛있는 건 가장 마지막에 먹거든요.”
이런, 아뿔싸. 왜 마녀 언니가 그렇게 말렸는지, 그 남자 나쁘다고 말했는지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걸려들었구나. 나는 내 어리석음을 탓했다. 그가 내 입에 대고 후후 웃는 게 느껴졌지만 나는 눈을 감고 있었기 때문에 알 수 없었다.
곧 차가운 숨결이 내 목을 간질이고 목에 차가운 뭔가가 닿는다. 목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낯선 사람의 숨. 뱀파이어도 살아 있나 보다, 숨을 쉬는 것을 보니. 그러고 난 뒤 내 목에 살짝 박히는 따끔한 느낌. 송곳니를 박아 넣었나 보다.
송곳니가 들어오는 아릿한 통증이 느껴지면서 낯선 이방인의 입술이 내 목을 빨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잠과는 다른 뭔가가 같이 오고 있었다. 몽롱함과 더불어.
뭔가 속은 것 같은 기분도 들었고, 마녀 언니와 늑대 아저씨가 조심하라고 말했던 이유를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뭐야, 이 사기꾼, 이러면서도 나는 잠이 비실비실 찾아온다는 게 너무 좋아서 슬며시 웃었다.
그 와중에도 그는 내 목을 핥고 있었다.
그래 너는 핥아라, 나는 자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