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처럼 그렇게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었다.

스무살, 아무 것도 모르는 이른 나이에 한 결혼은 결국 파국의 시작이었다.

이혼 후 루나는 동갑내기 타투이스트 찬혁과 만나게 되고 3년이 지나도 딱히 정의할 수 없는 모호한 관계가 지속된다.

하우스메이트로 들어오게 된 열아홉 해루와 스무살 고니의 등장으로 그 관계는 확실해질까, 깨어져버릴까.

집착하지 않고, 구속하지 않고, 간섭하지 않는다. 우리…… 사랑일까?



-본문 중에서-



“날 사랑해?”

“우리 사이에 사랑이 꼭 필요한가? 아니, 없다고 하는 게 더 웃긴가?”

“그게 사랑이 아닐 수도 있겠지.”

“아, 방금 뭔가 식었어.”

뻔뻔하게 찬혁은 물속에서 자신의 성기를 왼손으로 움켜쥐었다. 나는 그를 보며 뭐하는 짓이냐며 웃었고 그는 “힘 빠지는 소리 하지 마.”라며 오른손에 들고 있던 맥주를 들이켰다. 자기는 “우리 사이에 사랑이 꼭 필요한가?”라고 말한 주제에. 그래, 사랑이라고 하기에도 웃긴다. 우린 서로에게 집착하지 않고, 구속하지 않고, 매달리지 않고, 간섭하지 않는다.

“정일까…….”

심각하게 중얼거리자 첨벙거리며 그가 나를 끌어당겨 자신의 앞에다 앉히고 등 뒤에서 껴안았다.

“정이든 사랑이든 이렇게 있다는 게 중요한 거지.”

“좋겠다. 단순해서.”

고개를 젖히자 내 머리를 그의 어깨가 단단히 받쳐 주었다.

“걱정 마. 나중에 네가 정말 좋다는 사람이 나타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 줄 테니까.”

“…….”

그의 입술에 내 젖혀진 목에 닿고 입속에 있던 피어스가 내 목을 간질였다. 뜨끈해진 피어스가 혀와 함께 내 목을 훑을 때마다 어깨가 희미하게 떨렸다.

찬혁은 충분히 나에게 새로운 자극제와도 같다. 하지만 이 남자와 진정한 사랑을 하는 건 무리일 거란 생각을 하면, 입안에 남아 맴돌고 있던 맥주의 맛이 씁쓸하게 느껴진다.



[ 미리보기 ]



남자들은 “그것도 하나 이해 못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산다. 이해하지 못하는 행동들만 해놓고서. 여자가 이해를 해주기 시작하면 그땐 “그래, 그 정도는 이해해야지.”라고 한다. 그리고 후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다. 너무했나, 라며 사과하지만 여자는 고개를 젓는다.

“괜찮아. 이해해.”

여자가 이해를 하기 시작한 순간, 그것은 이해가 아니라 이미 포기일 텐데. 바보 같은 남자들은 그런 여자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려 하지도 않고, 알려고 파고들지도 않는다. 나중에야 단순하게 후회만 하는, 정말 속 편한 동물. 결혼, 그것은 내 인생 최고의 공부였고, 나의 병신 인증의 최초였다. 다행히 애는 낳지 않아 지금은 이혼해서 돌싱이 되었지만, 또 한 번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문제는 이게 사랑이냐, 아니냐는 모호한 경계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이마저도 이제 닳고 닳아 해질 대로 해져 버려 언젠가 말없이 사라진데도 모를 것 같다.

스물여덟, 충분히 새로운 자극에 민감해질 수 있다고, 나는 아직 병신처럼 사랑에 목말라 있다.



“잘못 찾아온 거 같은데.”

사건의 발단은 1시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와 동거 중인 남자(모호한 경계의 장본인)와 하우스 메이트를 구하기 위해 얼마 전 인터넷에 구인광고를 낸 적이 있다. 우린 3년이나 동거를 했고, 키스도 하고 섹스도 한다. 하지만 말했듯, 딱히 연인이라 단정 짓기엔 불편한 구석이 제법 많다. 그래서 버젓이 이 집에 하우스 메이트를 들이기로 한 것이다. 이건 그도 나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닌 것처럼 여겼다. 일단 이건 접어 두고, 지금 내 동거남 찬혁과 식탁에 앉아 이 집에 들어오고 싶다는 남녀 한 쌍을 보고 있었다. 찬혁이 그들을 보고 피식거리며 말을 한 건 그들이 나란히, 그것도 대놓고 ‘우리 사귀어요.’라는 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어서가 아니다.

“왜요, 안 돼요?”

젖비린내 풀풀 풍기는 어린 커플의 사내 녀석이 내뱉는 말을 듣고 아, 세상 참 좋아졌다, 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찬혁을 보고도, 그리고 나를 보고도 저렇게 당돌하게 말을 할 수 있는 사내 녀석은 아마 담력이 좋을 것이다. 굳이 우리가 해를 끼치지 않는다 해도 타투이스트가 직업인만큼 온몸에 문신을 휘감고 있는 우리를 보고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걸 본다면.

“너희 몇 살이야?”

“스, 스무 살인데요.”

요새 애들은 거짓말도 밥 먹듯이 잘한다는데 저 녀석은 그러질 못하는 것 같았다. 답을 받고 내가 입을 다물어 버리자 찬혁이 시원한 외모와는 조금 동 떨어지는 장난기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스, 스무 살은 몇 살이냐? 스, 스무 살이니까 마흔쯤 되냐?”

식탁에 올려둔 담배를 입으로 가져가며 신랄하게 비웃는 바람에 괜히 앞에 앉은 여자아이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들어오면서 ‘잘못 왔다.’라는 분위기를 내뿜더니 지금은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어깨를 웅크리고 있었다. 나는 찬혁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 쳤지만 “왜?”라며 여전히 키득키득 거리기 바빴다. 한숨을 푹 내쉬며 담배로 향하던 내 손은 앞의 어린 커플을 보고서 거두어졌다.

“우리는 하우스 메이트를 구한다고는 했지만, 애 돌봐드린다는 글은 쓴 적 없는데?”

“우리 애 아니거든요!”

“민증 까, 그럼.”

내가 좋게 말해서 돌려보내려고 했더니 사내 녀석이 괜한 오기를 부렸다. 그러자 찬혁도 어이가 없었던 모양인지 담배를 끼워 넣은 손가락으로 식탁 위를 톡톡 쳤다.

“까라고. 스, 스무 살이 맞는지.”

“그만 좀 해, 유치하게.”

눈을 흘기자 찬혁은 입을 삐죽이며 담배를 물었다. 하우스 메이트로 노인네가 들어오든 게이가 들어오든 유부남, 유부녀가 들어오든 전혀 상관없었다. 하지만 아직 애 티도 벗지 못한 꼬꼬마들이라면 곤란하다.

“솔직히 말해 봐. 정말 스무 살이라면 상관없지만, 미성년은 좀 곤란하거든.”

“……정말 안 돼요?”

얌전하던 여자아이가 내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사내 녀석은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리고는 표정을 굳히고 인상을 있는 대로 구기고 있었다.

“안 되지 않겠니? 너희 데리고 있다가 뭔 사고라도 나면 우리가 뭐가 돼? 그리고 부모님들도…….”

“없어요, 그런 거.”

딱히 설교를 하려는 마음은 없었다. 사내 녀석은 내게 부리부리한 눈을 똑바로 치켜뜨고 말했다.

“집이 있고, 부모가 있으면 이런 데 오겠어요?”

마치 내가 저 아이의 아픔을 후벼 판 것 같은 죄책감이 들었다. 그리고 불쾌감도 함께. 건방진 놈. 피우지 않으려던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담배 좀 꺼주시죠.”

이제 막 한 모금 빨아 당긴 참이었다. 찬혁과 나는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실소를 뱉었다.

“얘 임신 중이거든요.”

“콜록!”

의외로 침착했던 건 찬혁이었다. 연기가 잘못 넘어가 켁켁거리는데 그는 이제 반쯤 넘게 태운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가벼운 투로 말했다.

“능력 좋은데?”

“넌 지금 그게 할 말이니?”

“뭐 어때서. 좋네, 어린 건. 콘돔도 없이 막 해댈 수도 있고 말이야.”

마치 들으라는 듯 나를 힐끗 쳐다보며 찬혁은 사내 녀석을 향해 코웃음 쳤다. 기분이 상했는지 사내 녀석은 타깃을 바꿔 찬혁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애기야, 네가 아무리 노려봐라. 저놈이 눈 하나 깜빡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 어린 커플을 거두면 골치 아파질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이번엔 강경하게 돌려보내려 할 때였다.

작가연합홈페이지

<그린나래 http://www.greenara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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