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리리안, 악의 세력이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어요. 다가오는 악의 기운을 무찌를 용사가 필요합니다. 정의롭고, 강한 용사가! 그 용사가 바로 당신이에요, 리리안.”

오, 개소린데.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잘생긴 남자와의 결혼을 꿈꾸며, 평범한 백작 영애로서의 삶을 누리고 싶었다. 정의 구현, 세계 평화 따위 꿈에서조차 생각해본 적도 없다. 그런 나를 신이 선택했다.

강한 힘? 멋진 검? 그걸 나한테 왜 주는 건데? 왜 하필 나야!

“리리, 나와 수도까지 동행하겠는가? 여인 혼자 가는 것보단 ‘졸라 잘생긴 사내’와 함께하는 게 더 즐겁지 않겠나?”

“어…… 아까는 농담이었고요. 신분도 모르는 사람들과 동행하긴 조금…….”

“흠, 일리가 있군. 나는 아헤로스 아르만, 이곳 아르만 왕국의 3왕자라네.”

“와, 왕, 왕자짓!”

2. 작가 소개

안녕하세요, 최아리입니다.

유쾌하고 달달한 스토리로 독자님들의 하루에 짧은 기쁨을 선물해드리고 싶습니다.

좋은 작가가 될 수 있도록 늘 정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3. 차례

#Chapter 13. 끝까지 함께

#Chapter 14. 세 번의 데이트

#Chapter 15. 용사, 리리안

#외전

4. 미리 보기

아론의 얼굴빛이 점차 좋아지기 시작했다. 붉게 물든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며 천천히 위로 솟았다. 속눈썹 아래의 가라앉은 보랏빛 눈동자와 리리안의 푸른 눈동자가 마주했다.

“아론, 괜찮아요? 아론!”

리리안은 눈가를 붉히며 간절히 그의 이름을 불렀다. 멎은 줄 알았던 눈물이 또다시 뚝뚝 흘러내렸다.

“요세핀은?”

아론은 이미 그의 죽음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물었다. 입술 사이로 새어나오는 그의 목소리는 텅 빈 것처럼 공허했다. 그는 흐리멍덩한 눈으로 동굴의 천장을 응시하더니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 무의미한 질문을 반복했다.

“요셉은?”

리리안은 대답 없이 그의 손을 쥐어 잡았다.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줄줄 흘러내리는 눈물이 대답을 대신했다. 아론은 나지막이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끝까지 함께하기로 약속했는데.”

“아론…….”

“나의, 길이, 되어주겠다고…….”

아론의 목소리 끝이 울음으로 떨렸다. 붉게 물든 입술이 파들거리고 힘없는 팔이 휘청였다.

“리리.”

아론은 리리안의 어깨에 제 얼굴을 묻었다. 이내 어깨 위가 뜨거운 액체로 젖기 시작했다.

“리리.”

그는 구원을 바라듯 그녀의 이름을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처음 듣는 그의 울음소리가 동굴을 메웠다. 넓은 어깨가 처연히 떨렸다. 그리고 그 순간 기억 속 요셉의 목소리가 기다렸다는 듯이 리리안의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만약, 제가 아론 님께 힘이 되어줄 수 없는 상황이 오면 말입니다. 그때는 리리안이 저를 대신해주겠습니까? ……부탁입니다.”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울컥 솟아올랐다. 누구도 당신을 대신할 수 없으니 얼른 돌아오라고 말하고 싶었다. 얼른 돌아와 무너진 아론을 일으켜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그러나 요셉은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 아론의 곁에는 이제 자신밖에 없었다.

리리안은 목구멍 끝까지 차오르는 울음을 씹어 삼키며 손에 힘을 꽉 주었다. 그러곤 두 손을 뻗어 제 어깨에 파묻힌 아론의 얼굴을 단단히 잡았다. 아론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얼굴로 울고 있었다. 절망이 가득한, 길을 잃은 아이 같은 표정이었다.

“아론, 제가 함께 있을게요.”

리리안의 엄지손가락이 아론의 볼 위에 흐르는 눈물을 쓸어 닦았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는 단호한 의지로 빛났다. 동굴의 깊은 어둠 속에서 빛내는 단 하나의 등불처럼.

“끝까지 곁에서 당신을 지킬게요.”

요셉의 부탁이 아니었더라도 그럴 것이었다. 리리안은 여전히 아론이 제게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확신치 못했으나,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가 그녀의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소중하고 또 소중한 나의 사람. 리리안은 처연히 흔들리는 아론의 눈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당신의, 길이 될게요.”

그녀가 말을 마치자 아론의 붉은 눈가에서 굵은 눈물이 천천히 흘러내렸다. 아론은 잘게 떨리는 손을 들어올렸다. 그의 손가락이 리리안의 볼을 스칠 듯 가까워졌다. 그리고 온전히 그녀의 볼을 감싸려는 순간, 희미한 시야에 검은 인영이 담겼다.

동굴의 입구에는 글렌데르가 서 있었다. 검은 옷자락을 바람에 휘날리며, 얼굴은 버서커의 피로 가득 물들인 채로. 검붉은 핏자국 사이로 황금빛 눈동자가 흉흉히 번쩍였다. 시리도록 차가운 그 시선은 올곧게 아론을 향하고 있었다. 그것을 마주하자 얼마 전 글렌데르가 저주하듯 했던 말이 아론의 귓가를 윙윙거리며 맴돌았다.

“네 주위의 모두가, 필연적으로 끔찍한 결과만을 맞을 것이다.”

“리리안을 위험으로 몰아넣을 작정입니까?”

쿵쿵 뛰던 심장이 삽시에 멈췄다. 아론은 천천히 시선을 내려 저를 껴안은 여인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지켜주겠다고 말하는, 아름다운 여인을.

“누구와 함께일 때 그녀가 더 행복할 것 같습니까?”

처음으로 사랑하게 된 사람이었다. 제 모든 것을 다 주어서라도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사람이었다.

“리리.”

아론은 잠시 입술을 달싹거리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그대가…….”

너무나 소중해. 정말 너무나,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다. 아론은 절박하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제 아랫입술을 피가 날 듯 꽉 깨물며 천천히 손에 힘을 주었다.

“더는 필요하지 않다.”

아론의 커다란 손이 리리안의 몸을 밀어냈다. 멀리 선 검은 사내가 슬쩍 미소 짓는 것도 같았다.

“지금까지 고마웠다. 이제…… 그대의 삶으로 돌아가라.”

아론은 리리안을 너무나 사랑했다. 진심을 담아, 절실하게. 그런 이상 더는 그녀와 함께할 수 없었다. 자신의 곁에서 그녀는 행복할 수 없으므로.

“갑자기, 갑자기 무슨 말이에요?”

리리안은 당황스러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아론은 입가의 피를 훔치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말 그대로야.”

연기는 아론이 가장 잘하는 것 중 하나였다. 모든 것을 숨기며 살았으므로 이 감정 하나 숨기기는 쉬웠다. 쉬워야만 했다. 아론은 저벅저벅 걸음을 옮겨 동굴의 입구로 나아갔다. 벌떡 일어난 리리안은 글렌데르의 무사한 상태를 짧게 확인하고 아론의 뒤통수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디 가는 거예요!”

“수도로는 따로 가지. 거리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아론은 뒤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그리고 글렌데르와 시선을 짧게 마주했다. 글렌데르는 나른한 사자처럼 그를 바라보았다. 만족스러워 보이는 얼굴이었다.

“잘 지내라.”

“아론, 무슨……!”

그 몸 상태로 무슨 말을 하는 거냐며 따지려던 리리안은 이내 입을 크게 벌리고 아론이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순식간에 그의 모습이 사라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텔레포트를 한 것이었다. 미친 짓이었다. 마나를 과도하게 사용해 피를 저렇게 흘리면서, 고위 마법인 텔레포트를 사용하다니. 그러나 말릴 새도 없이 아론은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아론!”

리리안은 다급히 그에게 손을 뻗었으나 허공만 저을 뿐이었다. 그렇게 동굴에는 글렌데르와 리리안만이 남았다.

수도에 도착한 것은 이틀이 지난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