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리리안, 악의 세력이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어요. 다가오는 악의 기운을 무찌를 용사가 필요합니다. 정의롭고, 강한 용사가! 그 용사가 바로 당신이에요, 리리안.”

오, 개소린데.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잘생긴 남자와의 결혼을 꿈꾸며, 평범한 백작 영애로서의 삶을 누리고 싶었다. 정의 구현, 세계 평화 따위 꿈에서조차 생각해본 적도 없다. 그런 나를 신이 선택했다.

강한 힘? 멋진 검? 그걸 나한테 왜 주는 건데? 왜 하필 나야!

“리리, 나와 수도까지 동행하겠는가? 여인 혼자 가는 것보단 ‘졸라 잘생긴 사내’와 함께하는 게 더 즐겁지 않겠나?”

“어…… 아까는 농담이었고요. 신분도 모르는 사람들과 동행하긴 조금…….”

“흠, 일리가 있군. 나는 아헤로스 아르만, 이곳 아르만 왕국의 3왕자라네.”

“와, 왕, 왕자짓!”

2. 작가 소개

안녕하세요, 최아리입니다.

유쾌하고 달달한 스토리로 독자님들의 하루에 짧은 기쁨을 선물해드리고 싶습니다.

좋은 작가가 될 수 있도록 늘 정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3. 차례

#Chapter 5. 감사합니다, 친절하시네요

#Chapter 6. 꽃사슴의 추적

#Chapter 7. 삼자대면

#Chapter 8. 파티원이 추가되었습니다!

4. 미리 보기

“그럼, 몸 조심히 가게. 또 보자, 리리.”

아론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능글맞게 미소 지었다.

‘마지막으로 손이나 한 번 더 잡을까.’

그는 잠시 고민하였으나 단념하였다. 원래의 그라면 아무렇지 않았을 텐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쉬워 보이고 싶진 않았다. 마찬가지로, 이상하게도.

아론은 검을 제대로 고쳐 쥐고 동굴을 벗어나 수풀 사이로 나왔다. 리리안이 있는 곳에서 멀어져야 했다. 대규모의 마법을 쓸 생각이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 상태에서 쓰는 건 또 처음인데.’

아론은 어지러운 시야를 무시하고 발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리스크가 컸다. 그러나 다른 방법도 없었다. 자객들은 점점 포위망을 좁혀왔고 상황이 급해졌다. 그러나 어느 순간 아론의 발걸음이 멎었다. 누군가가 그의 옷자락을 잡고 있었다. 작은 힘이었으나 그는 움직일 수 없었다. 아론은 돌아보지 않고 입을 열었다.

“리리.”

“미안해요.”

이럴 시간이 없다고 말하려던 아론을 느닷없는 사과가 가로막았다.

“후우…….”

리리안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아론이 듣기엔 더욱더 느닷없는 말을 했다.

“감사합니다, 친절하시네요.”

마침내 용사가 등장할 타이밍이었다.

알 수 없는 말에 아론이 되물으려는 찰나, 리리안의 손에서 새하얀 빛이 터져 나왔다. 다양한 마나를 접해본 그로서도 처음 느끼는 아득한 기운의 빛이었다. 리리안의 손가락에서 시작된 그것은 순식간에 번져 그녀의 온몸을 감쌌다.

이내 그녀의 머리칼 한 올마저 보이지 않았고 아론은 지나친 눈부심에 절로 눈을 찌푸렸다. 성스러운 빛은 잠시간 머물다 금세 잦아들었고, 아예 사라지자 아론의 눈앞에는 다른 사람이 서 있었다.

“리…… 리……?”

아론의 입이 저도 모르게 벌어졌다. 분명 리리안이 있던 곳인데 갑자기 나타난 사람은 그녀라기엔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아론의 것보다 진한 벌꿀색 금발이 바람에 살랑거렸고, 검은 복면 위로는 평소와 달리 날카로운 눈매 속에 푸른 눈동자가 반짝였다. 제법 강인해 보이는 어깨에는 검은 망토가 걸쳐져 휘날렸고 키도 커져 있었다.

‘귀여운 얼굴선, 자그마한 코, 통통한 입술, 손목 굵기까지 리리안이 맞는데.’

분명히 그녀건만 묘하게 달랐다. 그리고 그 순간 잊고 있던 기억이 문득 그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수도에서 만났던 대단한 힘의 남장한 여자. 깊숙이 눌러쓴 모자 아래로 보았던 그 얼굴의 하관은 리리안의 것과 정확히 일치했다.

그러나 상념도 잠시 사방에서 자객들의 기척이 다가왔다. 이제 완전히 포위당한 입장이었다. 아론은 이 상황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으나 우선 급선무를 처리하기 위해 검을 쥐고 나섰다. 그러나 그런 그의 행동을 리리안이 막아섰다.

“가만히 있어요.”

“목소리가……?”

소년 같은 목소리. 이것 또한 저번의 그 사람과 같았다. 그러나 리리안은 아론이 말을 잇게 두지 않았다.

“방해되니까. 가만히.”

아론을 향한 푸른 눈동자에는 여태껏 본 적 없던 무시무시한 기운이 담겨 있었다. 그것을 마주한 순간 아론은 저 깊숙한 곳에서부터 소름이 몰려오는 기분이었다.

“저기다! 죽여라!”

“죽여라!”

아론과 리리안을 발견한 자객들이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수를 세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인원이었다. 그리고 리리안은 그들을 바라보며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검.”

리리안이 낮게 읊조리자 장갑을 낀 그녀의 손안에서 반짝거리는 하얀 검이 생성되었다. 아론은 이게 무슨 일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어 말없이 뒤에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발사!”

짧은 외침 후 자객들이 아론과 리리안을 향해 사방에서 화살을 쏘았다. 그리고 그 순간 무지막지한 힘이 아론을 끌어당겼다. 차가운 바람이 아론의 얼굴을 때렸다. 어느새 그는 공중에 떠 있었다. 리리안의 듬직한 어깨에 둘러메진 상태로.

“무슨……!”

자객들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당황하여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왕자와 함께 있던 누군가가 그를 잡고 하늘로 도약했고, 그 도약력은 인간이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화살보다 위로 뛴다고?’

모든 상황에 대비할 수 있도록 훈련받은 자객이었으나 이런 것은 매뉴얼에 없었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날아오르다시피 높게 뛰었던 검은 인영은 빠른 속도로 땅과 가까워졌고, 착지하는 순간 거대한 진동과 함께 흙먼지가 일었다.

콰앙!

“아아악!”

“크악!”

거센 파동에 중심을 잡기도 전 매서운 칼날이 원을 그리며 퍼부어졌다. 가장 가까이 있던 자객들은 재기 불가능할 상처를 입고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강한 의지로 인해 부동의 마음이 크게 상승합니다! 현재 수치 60.>

리리안의 귓가에 뽀삐의 신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순간, 리리안은 자신이 이제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일 수 있음을 깨달았다.

“공격, 공격해라!”

대장 격의 사내는 전의를 다잡고자 명령을 내렸다. 빠르게 정신을 차린 자객들은 흙먼지 속에 기척을 감추며 검은 인영을 향해 검을 휘둘렀고 후방에서도 단검을 날리며 지원했다. 그러나 리리안에겐 애들 장난과 같았다. 공격은 제법 날카로웠으나 상급 몬스터의 공격에 비하면 간지러운 수준이었다.

날아오는 단검쯤은 고개만 살짝 비틀어도 피할 수 있을 정도로 느렸다. 리리안은 단검 서너 개를 건성으로 피하며 제게 접근한 자객들에게 유려하게 검을 휘둘렀다. 눈을 깜빡하자 순식간에 자객들의 몸이 이등분되어 우수수 떨어져내렸다. 몸을 낮춘 덕에 유일하게 그녀의 근처에서 살아남은 자객 하나는 흡 하고 숨을 들이쉬었다.

‘왕자를 노려야……!’

자객 중에서도 제법 높은 등급이었던 그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고 검은 사내의 어깨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왕자를 향해 칼날을 휘둘렀다. 아니, 휘두르려 하였다. 그러나 검을 움직인 찰나 섬뜩한 푸른 눈과 시선을 마주하고 말았다.

“어딜 감히.”

소년같이 어린 목소리가 싸늘하게 깔렸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생에서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와드득.

리리안은 왼손을 뻗어 자객의 머리를 쥐었다. 강철같이 단단한 몬스터의 피부도 뚫는 그 힘으로 머리를 붙잡자 연약한 인간의 머리는 두부처럼 뭉개졌다.

“허억……!”

자객들의 대장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뒷걸음질 쳤다. 순식간에 저를 뺀 모두가 죽었다. 그리고 자신도 곧 죽으리라. 섬뜩한 직감에 그는 황급히 뒤돌아 뛰었다. 빠른 속력이 그의 가장 큰 장기였기에 운이 좋다면 도망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오만이었다.

“어디 가려고?”

분명 저가 먼저 출발했을진대 눈앞에 검은 옷을 입은 소년이 서 있었다. 자객은 빠르게 방향을 돌려 뛰었고 리리안은 그런 그의 뒷모습을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멀리 뛰어가는 그를 향해 짧게 검을 휘둘렀다. 하얀빛의 검기는 순식간에 자객에게 도달하였다. 자객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몸이 찢기고 녹아내렸다. 치이익, 하고 살갗이 타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푸르던 산은 붉은 피로 잔뜩 젖어 있었다. 자객 중 살아남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리리안은 아직이라는 듯 검을 놓지 않았다.

“꽉 잡아요.”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엄청난 속력으로 뛰기 시작했다. 나무들이 빠르게 지나갔고 풍경이 바뀌었다. 몇 분 지난 것 같지도 않은데 벌써 여관이었다.

“아론 님!”

온몸에 상처를 입고 자객들과 대치 중이던 요셉은 눈을 커다랗게 뜨고 다가온 사람을 바라보았다. 웬 검은 복장을 한 금발 소년이 제 상관을 들고 있었다. 그 또한 자객이라 판단한 요셉은 절망하여 표정을 일그러트렸으나 이어진 상황은 예상과 달랐다.

“요셉, 데리고 있어요.”

“리……리안?”

리리안은 벙한 요셉을 무시하고 아론을 그의 곁에 내려주었다. 나머지 잔당들도 처리할 시간이었다.

아까와 같은 살육이 이어졌다. 이미 전투로 상처를 입은 자객들은 갑작스러운 실력자의 등장에 속수무책으로 목숨을 내어주었다. 요셉은 흉악한 기운에 몸을 발발 떨며 그녀의 일방적인 학살을 지켜보았다. 자신이 한참이나 고전한 상대건만 몇 분도 되지 않아 전멸했다.

“휴우.”

리리안은 손안의 검을 사라지게 한 후 피 묻은 장갑을 벗었다. 답답한 복면도 벗어젖히며 그녀만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아론과 요셉을 향해 다가갔다. 복면 속 리리안의 얼굴을 확인한 아론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대…… 정체가 무엇인가?”

예상한 질문이었기에 리리안은 씨익 웃으며 답했다.

“용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