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내 사람은 당신뿐이오.”

본디 용이 되어야 할 고귀한 태생이나 이무기로도 지내지 못하는 제안대군, 이현. 그 날개를 더욱 꺾어두기 위해 짝지워진 것은 세 없는 작은 가문의 딸 김보예이다.

둘의 나이 열둘, 혼례를 올린 동갑내기 어린 부부는 그들을 헤집으려는 세상과 맞서며 씩씩하게 살아나가나, 자꾸만 불어오는 역풍에 결국은 찢기고 마는데…….

“부인은…….”

입술을 달싹이던 이현은 목메었다.

“내 곁에 있어요.”

작고 어린 손을 힘주어 잡는다.

“어디 가지 말고, 그대는. 그대만큼은.”

처음으로 얻은 그만의 사람. 다급해지는 마음에 목소리가 커진다.

“여기 있잖아요.”

“……아.”

“어디 가지 않을게요.”

2. 작가 소개

정연주

최근에 거주 환경이 집필에 최적화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물 좋고 공기 좋은 시골! 흉흉한 소문과 소문보다 더 빡빡한 막차 시간! 덕분에 외출도 어렵고 해서 집필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이 삼박자 떨어지는 곳이 어디냐면 화성입니다. 화성(星) 말고 경기도 화성.

……위험하지 않냐는 지인의 질문에 이렇게 대처하고 있습니다. 그냥 시골이라 제철채소가 참 맛있다고요(웃음).

▣ 출간작

기화, 왕의 기생들

야수의 청혼

인어의 목소리

캔버스 위의 당신

붉은 매듭

도깨비 각시

가희 사랑할지어다

달빛을 밟는 아씨

어드레스

플러스 플러스 마이너스

미라클 스티치

헤스키츠 제국 아카데미(공저)

차아제국 열애사(공저)

허니 앤 베어(공저)

하늘 창(공저 단편집)

겨울 엔딩(공저 단편집)

마음을 낚는 이야기꾼 웹소설 작가 되기(공저)

꽃사슴인 줄 알았더니(공저)

양효진

1989년 3월, 절과 돌탑, 왕릉이 많은 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책읽기를 좋아하긴 했지만

소설을 쓰기 시작한 건 대학교에 들어온 이후.

그 전에는 남들처럼 먹고, 자고, 공부하는 평범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라는 부모님의 말씀에

충실한 지금이 만족스럽답니다.

현재 대한민국 어딘가에 있는 해가 잘 들어오는 집에서

매일매일 마감에 쫓기는 삶을 사는 중.

▣ 출간작

엘샤 꽃나무 아래에 앉아서

계약의 목걸이

너의 온기에 안기다

눈부신 그대

파란만장 태자호위담

그는 내 심장을 뛰게 한다

내 꿈으로 놀러 와요

아이고, 폐하!

드라마틱!

플레누스

헤스키츠 제국 아카데미(공저)

차아제국 열애사(공저)

허니 앤 베어(공저)

마음을 낚는 이야기꾼 웹소설 작가 되기(공저)

하늘 창 (공동저작 단편모음집)

겨울엔딩 (공동저작 단편모음집)

꽃사슴인 줄 알았더니(공저)

3. 차례

#初

#一章. 시전의 호구 도령

#二章. 애기 신부, 애기 신랑

#三章. 비밀의 함을 열면

#四章. 의문의 굴에 떨어지다

#五章. 계속되는 밤

#六章. 버선 든 바구니

#七章. 할 수 없는 것, 할 수 있는 것

#八章. 별 무리

#九章. 달이 뜨고

#十章. 달이 지고

#十一章. 곳간이 차는 계절

#十二章. 독과 독(毒)

#十三章. 어흥이옵니다

#十四章. 날뛰는 달빛

#十五章. 부인열전

#十六章. 가시 꽃

#十七章. 사근사근한 봄

#十八章. 경전하사(鯨戰蝦死)

#十九章. 앉아서 벼락 맞다

#二十章. 단오풍정(端午風情)

#二十一章. 음모의 태동

#二十二章. 파란의 날들

#二十三章.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놈 없다

#二十四章. 이놈이 그놈이다

4. 미리 보기

멀뚱멀뚱 서로만 바라보는 것도 조금 지나니 익숙해졌다. 어린 신랑과 신부는 그제야 주린 배를 붙들었다. 생각해보니 혼례를 치르느라 입에 댄 것이 얼마 없었다. 자연스레 시선은 반상으로 향하고, 이현은 술병과 술잔만 치운 채 젓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직접 반찬을 집어 김보예의 입에 가져다 대는 게 아닌가.

“드시오.”

“저도 손이 있습니다.”

“어디에?”

“…….”

쏜살같이 날아오는 의문에 그만 할 말이 없어졌다. 이 불편하지만 예쁜 예복은 소매가 길어서 손이 푹 파묻혀버리니까. 예쁜 꽃무늬가 찍힌 옷자락을 내려다보며 김보예가 부들부들 떨었다.

그런 신부를 바라보는 신랑의 입가엔 미소 한 줄기가 걸렸다.

“드시게. 팔 떨어지네.”

새침하게 거절하고 싶어도 입에서 침이 고였다. 잊고 있던 허기가 마구 밀려들었다. 어린 나이에 어미를 잃고 자라 버릇없다는 소릴 듣지 않기 위해 김보예는 항상 어른스럽게 행동하려 애썼다.

하지만 먹을 게 많은 잔칫날에 정작 신랑, 신부가 쫄쫄 굶는다는 이야기는 아무도 해주지 않았다. 맛없는 술을 먹어서 얼른 전으로 쓴맛을 지우고 싶었다. 참다못한 그녀는 젓가락에 집혀 있는 전을 냠 물었다.

오물오물. 맛있다. 달걀을 많이 구하더니 아낌없이 썼구나. 그렇게 두 사람은 너 한 입, 나 한 입 하며 얼추 배를 채웠다. 올해로 열두 살. 동갑내기 신랑, 신부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사이좋게 맛난 음식을 먹어치우는 것이었다.

이제 자야 하는데 우려하던 사태가 일어났다.

“어떻게 푸는 거지?”

이현이 짐짓 심각하게 김보예의 옷을 보았다. 그는 자신의 관모를 먼저 벗고 두 팔을 걷어붙였다. 그리고 신부의 옷을 벗기기 위해 애를 썼다.

“아얏!”

“앗, 미안.”

“거기 살살. 살살 해요. 잡아당기지는 말고!”

옥신각신하는 사이 말투도 편해졌다. 마침내 둘 다 의장을 편하게 했을 땐 밥 먹은 것도 다 꺼졌다. 팔을 땅에 댄 채 헉헉 숨을 골라야 했다.

얼추 배를 채운 상태에서 다시 용을 쓰니 피로하고 졸음이 쏟아진다. 부부가 되었으니 아이를 만들어야 한다던데, 아이고 자시고 오늘은 그냥 자고 싶다.

“몸이 곤하니 이제 누웁시다.”

“네!”

묘하게 마음이 잘 맞는다. 김보예는 기뻐하며 이부자리를 정돈했다. 예쁘고 귀한 옷은 저 멀리 치운 지 오래였다. 저 옷이 아주 값비싸며 평생 딱 한 번 입을 수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고생한 걸 떠올리니 당분간은 보고 싶지 않았다.

“이리 오시오.”

이부자리에 앉은 이현이 제 옆을 손으로 톡톡 두드렸다. 김보예는 엉금엉금 그의 곁에 다가가 앉았다. 그리고 가슴께를 부여잡았다. 가까이서 본 남편은 정말 이 세상의 사람 같지 않았다.

진정하기 위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남자는 내실! 겉가죽이 아니라 마음!

“손, 잡아도 되오?”

이현이 머뭇거리며 손을 꼼지락거렸다. 부끄러웠는지 시선을 저 멀리 치웠다. 그 순간 김보예는 가슴이 덜거덕 내려앉았다.

그렇게 몸종인 나슬을 구박했는데 이번엔 이쪽에서 사과해야 할 판이다. 사람은 때때로 내면보다 겉면에 더 구애받는지도 모르겠다.

“부부니까요!”

손잡아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으리라. 어차피 신방에는 둘뿐이다. 김보예는 이현의 손을 잡았다. 희고 보드라운 손이었다. 손끝과 손가락 마디마다 몇몇 굳은살이 느껴졌지만, 손바닥은 참 비단결처럼 고왔다.

손을 꼭 잡자 기분이 좋아졌다.

방실방실 웃는 신부를 신랑은 빤히 바라보았다. 손을 타고 오는 온기에 괜히 가슴이 먹먹해진다.

“부인.”

“네!”

“부인.”

“말씀하셔요.”

“부인은…….”

입술을 달싹이던 이현은 목메었다. 왜 갑자기 약해진단 말인가. 그는 별처럼 빛나는 신부의 눈을 간신히 마주했다.

“내 곁에 있어요.”

작고 어린 손을 힘주어 잡는다.

“어디 가지 말고, 그대는. 그대만큼은.”

처음으로 얻은 그만의 사람. 다급해지는 마음에 목소리가 커진다. 밖의 사람이 들을까 항상 조심하였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김보예는 눈을 끔뻑이다가 아까 그처럼 고개를 갸우뚱했다.

“여기 있잖아요.”

“……아.”

“어디 가지 않을게요.”

소녀는 소년이 마음에 들었다. 목소리도 사근사근하고 잘해줄 것 같다. 부부는 정붙이고 살아야 한다던데, 걱정 안 해도 되겠다.

그래서 김보예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우리 백년해로해요!”

그게 소년에겐 어떤 의미인지 소녀는 모르고.

이현의 눈이 흔들렸다.

「오래 살아라.」

살아야 했다. 하지만 그게 혼자가 되면 무슨 소용일까. 더는 잃기 싫다. 상실은 겪어도, 겪어도 마음이 둔해지기는커녕 뼈를 깎은 듯 날카로워진다. 그 뾰족함에 찔려 피눈물을 흘리는 것이, 이제는 너무도 지쳐서.

“백년해로라고…….”

이 손 하나에 무너진다. 이현은 파르르 떨리는 입꼬리를 애써 움직였다. 웃는다. 웃어야 한다. 질리도록 웃어봤기에 소년의 웃음은 자연스러웠다.

“네. 합시다, 백년해로.”

바삐 호롱불을 입바람으로 껐다. 깜깜한 방에서 애기 신랑과 애기 신부는 손잡은 채 바로 누웠다. 이불을 덮고 상대방의 온기에 의지해 잠이 든다.

소녀는 미소 지었고 소년은 한 줄기 눈물을 흘렸다.

두 사람의 첫날밤은 그런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