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원한다. 사내로서.”

“그 말, 진, 진심이에요?”

“사람을 못 믿는 것이냐. 내가 한 입으로 두 말을 하는 사내로 보이더냐?”

“…….”

“난 네가 무엇이라도 상관하지 않는다. 내 곁에 있어라. 내 허락 없이 떠나는 것은 용서하지 않겠다.”

짙은 녹발과 녹안의 소유자, 용의 피를 가장 짙게 받은 화룡의 재래, 라이 크세노.

그에게 세상에서 가장 천하디천한 반요인 린은 결코 어울리지 않았다.

더욱이 반요인 중에서도 가장 큰 힘과 강한 요력을 지닌 금은요동의 그녀는,

그를 불행하게 만들 불길한 존재일 뿐이었다.

그러나 끊을 수 없는 운명의 사슬 안에서 두 사람은 재회하게 되고,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되어 가는데…….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생명, 화룡의 재래 라이 크세노,

세상에서 가장 천한 생명, 금은요동의 반요인 린.

절대로 맺어질 수 없는 두 사람의 운명적 만남이 모든 것을 바꾸어 버렸다!

[본문 내용 중에서]

린은 목이 터질세라 신령의 이름을 외쳐 불렀다.

아이의 다급한 목소리를 듣자 신령은 4개의 눈을 부릅뜨며 날개를 펼쳐 단번에 날아올랐다.

폭포 쪽으로 단번에 날아온 신령은 물속에 있는 아이의 머리 위를 선회하며 그들을 위협할 만한 짐승과 요수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위협이 될만한 것이 없다는 걸 판단하자 신령은 물가에 천천히 내려앉았다.

-무슨 일이지?

물에 빠져 생쥐 꼴이 된 린이 황급히 외쳤다.

“신령! 사람이 있어!”

신령은 사람이 있다는 말을 믿지 않으려 했다.

그들이 머물고 있는 울금산은 산세가 험하고 울창했고 귀신들이 잔뜩 모인다는 귀문이 자리한 곳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이 울금산 주변으로 접근하기도 어렵다.

신령이 린을 보호하기 위해 결계를 복잡하게 쳐놓은 터라 산 자가 이 진법 안으로는 들어올 수 없었다.

신령은 단언했다.

-린, 인간은 들어올 수 없다.

“아냐, 여기 있단 말이야!”

린은 목소리를 높이며 폭포 아래를 필사적으로 가리켰다. 거기엔 옷을 입은 사람의 다리가 보인 듯 했다.

-린, 인간은 위험하다. 그리고 그건 죽은 자일지도 모른다.

“살아있을 거야. 살아있어!”

린은 쓰러진 사람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한쪽 팔을 잡아당겼다. 동시에 사람의 몸에서 흐른 붉은 피가 물줄기 사이로 스며들었다.

린이 다급해져 다리를 동동 굴렸다.

“신령, 도와줘!”

신령은 그제야 몸을 움직였고 린에 비해 터무니없이 사지가 길어 보이는 남자를 끌어냈다.

그는 제법 곱상한 외모의 남자였고 눈을 반쯤 뜬 채 기절한 모습이었다. 소년을 갓 벗어난 듯한 어린 청년은 핏기 하나 없었다.

놀랍게도 청년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물속에 잠겨 선명한 녹색을 띠었다.

그 와중에도 청년의 몸에선 계속 붉은 피가 흘렀다.

“신령, 빨리 꺼내야 해.”

린은 더 조급해졌다.

“신령, 이 사람 몸에서 피가 계속 나와. 아직 살아있는 것 같으니까, 제발 구해 줘! 안 구해 주면 나, 신령을 미워할 거야!”

린의 으름장에도 신령은 계속 망설이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침 날개를 가진 커다란 응룡이 유유히 하늘을 선회했다.

응룡이 부르는 큰 비가 홍수가 되어 천지를 뒤덮을 것이었다.

신령은 인간을 싫어했지만 살아있는 자를 죽이진 않았다. 곧 거센 비가 내릴 것이기에 그는 서두르기로 마음먹었다.

-기다려라, 린.

신령이 사내를 어깨에 들쳐 메기 위해 다가간 순간, 어린 청년이 갑자기 눈을 떴다.

청년은 화령의 섬뜩한 붉은 기가 감도는 눈으로 신령과 린을 쏘아보았다.

그것이 그들의 첫 만남이었다.

[프로필]

효진

성은 김, 이름은 효진. 닉네임 나미브.

한국로맨스소설작가협회(lovepen) 소속.

<종이책 출간작>

춤추는 오렌지에 관한 단상, 북주국이야기

내사랑 김빈곤, 해국이색혼례담, 칼리, 산사나무, 부부전

남주국설화, 북주국야사, 지중해의 불꽃, 적도의 밤, 내 아내는 짐승, 내 남편은 맹수

황궁의 꽃이 되다

<이북 출간작>

만월 기묘한 밤의 이야기, 빛나는 밤 사랑하는 달

검과 왕녀, 스페셜데이(단편집), 베이비돌, 발정은 묘약을 타고,

금단의 관계, 왕과 소녀: 금욕의 관계, 잔인한 복수, 마법사와 결혼하는 방법,

총애, 황제와 소녀: 구속의 관계 등

[목차]

-1권-

#0 ~ #18

-2권-

#19 ~ #33

#외전 - 어떤 봄

-합본-

#0 ~ #33

#외전 - 어떤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