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없이 행복한 가운데 이틀이 지나갔다. 그간 조이는 알렉이 자기 몸을 마음대로 부풀리거나 줄어들게 하면서 자유자재로 놀리는 것을 보고 경탄을 금치 못했다. 그것은 남편이 다른 모든 일을 행할 때도 보이는 ‘한다면 한다’는 제어력이자 통제력이었다. 조이는 그런 생각을 남편에게 말했다. 그러자 그는 다시 한차례 껄껄 웃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그 귀에 거슬리는 낯선 소리를 마치 요정의 소중한 소망이라도 되는 양 가슴 깊이 간직해오고 있었다.
알렉은 조이의 재촉으로 그녀와 여러 시간 이야기를 했다. 런던이 어떤 곳인지도 말해주었지만 런던이 남편이 말한 것처럼 그렇게 끔찍한 곳이라는 걸 믿을 수 없었다. 아무튼 이 남자는 눈[雪]의 아름다움도 보지 못하는 사람이니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알렉은 여러 번 되풀이해서 앞으로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각별히 행동하라고 말했다. 그 의미는 마법은 물론이고 마법으로 오인 받을 수 있는 행동조차 일절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알렉은 트렁크의 내용물에 대해서는 잘못 생각했음을 인정했다. 그리고 목욕 후에 그녀의 머리를 빗겨주며, 목욕통에서 흘러 넘친 물이 그렇게 많지만 않았다면 자신도 그녀와 함께 통 안에 들어갔을 거라며 중얼거렸다. 조이는 안주인의 시녀 노릇을 자진하는 공작이 이상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자신의 긴 머리칼을 천천히 빗어 내리는 남편을 보니 그것을 시중드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았다. 알렉은 그녀의 머리칼에 매혹된 것 같았다. 그런 남편을 바라보며 조이는 그와의 깊은 사랑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을 받았다.
나중에 알렉은 빗은 참 운이 좋은 놈이라고 말했다. 면도 도구와 빛바랜 평평한 양철에 그려진 구식 체스판을 보고도 같은 말을 했다. 그는 체스를 하지 않았지만 조이는 그것을 매우 좋아했다. 그 때문에 조이는 빗과 면도기와 그 밖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몇몇 물건들과 함께 체스판을 뚝딱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몇 가지 실수를 했지만 남편은 버섯 한 봉지며 칼날, 몇 장이 빠진 카드 한 벌을, 당연하게 트렁크 안의 버림받은 전혀 쓸모 없는 물건들로 여겼다.
조이는 알렉이 모른다고 해서 해가 될 건 없다고 생각했다.
이제 조이는 부엌에서 인간의 방법으로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마법으로 근사한 저녁을 뚝딱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게 마녀 체면에 손상을 주긴 했지만, 만들어도 알렉은 먹으려 하지 않을 것이었다. 조이는 남편이 아직도 돌아오지 않고 있음을 상기하며 출입문을 흘긋 쳐다보았다. 남편은 장작도 더 가져올 겸 젖소에게 먹이를 주려고 밖으로 나간 것이었다. 조이는 빙긋 웃었다. 벨모어 공작이 젖소를 먹인다, 언뜻 상상이 되지 않았다.
지난 며칠 동안 알렉은 그리 딱딱하게 굴지도 않았고 명망 있는 벨모어 가문의 체면을 그리 의식하지도 않았다. 목소리는 한결 부드러웠고 말은 명령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는 한층 가까이하기 쉬운 사람이 되어 있었고,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시간에도 분위기는 훨씬 누그러져 있었다. 지내고 보니 마녀와의 결혼 생활도 그리 나쁘진 않다고 생각하는 것도 같았다.
조이는 알렉의 그런 점을 좋아했다. 처음 눈을 들여다보던 순간 감지했던, 내면에 감추어진 부분을 지금도 엿볼 수 있었다. 누군가가 채워줘야만 할 그 공허감, 손대지 않은 채 고스란히 남아 있는 그 심장, 그녀를 필요로 하는 그 가슴. 그 자신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하더라도 조이는 알 수 있었다. 알렉이 안아줄 때마다, 사랑해줄 때마다 느낄 수 있었다.
조이는 알렉이 그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나름대로 노력했다. 그에게 사랑과 함께 몸과 마음을 주었다. 조이는 사랑하는 사람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 사람이 고집 센 잉글랜드 공작이라 할지라도.
조이는 한숨을 쉬었다. 목구멍이 칼칼해서 침을 삼켰다. 목이 아려서 몸이 움츠러들었다. 목구멍이 바짝바짝 마르고 날카로운 것으로 긁는 것 같았다. 귀도 아팠다. 조이는 애써 그것들을 무시했다. 마음이 바쁘면 아픈 것을 잊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는 불 위의 수프를 확인한 뒤 몸을 돌려 작업대 위에 있는 순무들에 시선을 주었다. 껍질을 깎아야 할 것들이었다.
그 옆에 그릇에 담긴 탈지유가 버터로 제조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이는 우선 버터부터 만들고 야채들을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간질간질한 코를 소매로 쓱 닦고 버터 제조기로 가서 탈지유를 부었다. 그리고 제조기의 축(軸)을 아래위로 작동시키면서 이따금 손놀림을 멈추고 콧물을 훔쳤다.
몇 분 지나지 않아 그 일이 힘들게 느껴졌다. 팔이 아파 왔고, 잡념이 머릿속에 기어들기 시작했다. 땀방울이 관자놀이께에 송골송골 맺혔지만 조이는 일을 멈추지는 않았다. 버터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입술을 깨물며 고집스런 눈매를 한 조이는 축을 움직이고 또 움직였다. 이제 버터가 되었겠지 하고 내용물을 확인해봤지만 버터는 없었다.
조이는 이마에서 땀이 빗방울처럼 뚝뚝 떨어질 때까지 제조기를 돌렸다. 버터를 제조하는 일은 지금까지 해본 것 중에서 가장 힘들고 지루한 작업이었다. 다시 내용물을 확인해봤지만, 크림은 뻑뻑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픈 두 팔을 위로 쭉 뻗었다가 움켜쥔 한 손을 허리에 얹은 다음 인상을 찌푸린 채 흰 내용물을 가만히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마법을 조금만 쓰면 이렇게 고생을 하지 않고도 금방 버터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알렉이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일하는 건 정말이지 싫었다. 조이는 아픈 팔을 주물렀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일종의 타협이었다. 조이는 제조기 축을 노려보다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알렉은 보이지 않았다. 무슨 재미있는 착상이라도 떠올랐는지 그녀의 두 눈이 반짝이더니 이내 빙긋 웃었다. 두 가지 방법을 함께 사용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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