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다고 했어요?”
지난 며칠 내내 궁금했었다. 물을까, 말까 고민도 했었다. 어떤 대답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하니까 이유 따윈 궁금하지 않아야 옳은데 지원은 그 이유가 미치게 궁금했다. 그래서 돌려서 말하지 않았다. 평소 성격대로 직설적으로 물었다.
“자유연애, 그딴 거 선배 머릿속에는 없는 거잖아요.”
갑자기 그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한쪽 다리에 힘을 슬쩍 빼더니 삐딱하게 선다.
“네가 하자고 했잖아. 그래 놓고 왜 이제 와서 시비야?”
슬쩍 웃는 표정이 귀엽기까지 하다. 지원은 그가 또 장난으로 넘기려고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해 주세요. 왜 마음이 바뀌었는지 궁금해요.”
그녀가 시종일관 진지한 태도를 고수하자 그도 장난기를 잠시 내려놓았다.
“진지 모드네? 그럼 나도 장난 말고 진지하게 대답해야겠지?”
“네.”
경훈이 그녀를 지그시 응시했다. 그렇게 잠시, 아니 그녀가 느끼는 시간은 길었다. 그렇게 길면서도 짧은 시간 동안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응시하던 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너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는 약 지구 세 바퀴 정도인 것 같다.”
지원은 무슨 뜻인지를 몰라 눈살을 찌푸렸다.
“지구 세 바퀴, 멀게 느껴져? 가깝게 느껴져?”
갑작스러운 그의 질문에 지원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멀게 느껴져요.”
“그래? 난 아닌데. 난 가깝게 느껴진다. 그게 너와 나의 차이지. 지구 세 바퀴, 멀어. 걸어서 가면 당연히 엄청나게 멀지. 하지만 비행기, 아니 제트기 같은 거 타고 돌면 며칠 내로 세 바퀴쯤은 문제없이 돌 수 있는 거리야. 여기서 중요한 거.”
그가 한 걸음 앞으로 내딛더니 그녀의 코앞으로 다가왔다. 지원의 목은 그를 올려다보기 위해 더 꺾였다.
“지구 세 바퀴라는 거리는 멀지만 불가능한 거리는 아니라는 거지. 난 걷고 뛰고, 때로는 물리적인 장치를 이용해서라도 거리를 좁힐 생각이야. 아주 빨리 움직일 때도 있을 테고 느리게 움직일 때도 있겠지. 또 때로는 그 자리에 멈춰서 숨을 고를 때도 있을 거야. 하지만 돌아가지는 않을 생각이다. 난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끈질기거든. 그리고 그 끈질김은 널 만난 후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어. 넌 느끼지도 못할 거야. 아니, 내가 이만큼 가까이 다가온 걸 네가 깨달았을 때는 너무 늦었을 거야. 네가 도망가기에는 너무 늦을 만큼 내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을 테니까. 널 붙잡을 수 있을 만큼 아주 가까이. 이렇게.”
그가 그녀의 허리를 잡고 당겼다. 지원은 속수무책으로 경훈의 품 안으로 당겨졌다. 쿵쿵. 최경훈의 강인한 심장 소리가 힘 있게 울렸다.
아니, 이 격렬한 심장 소리는 내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입술이 내려왔다. 지원의 눈이 마지막으로 응시한 건 그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가로등 빛이었다. 지원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입술에 닿는 그의 입술이 가로등의 불빛만큼 따스하고 포근했다.
정말로, 그가 아주 가까이 있는 느낌. 그녀의 가슴속 깊숙이 그가 있는 것 같은 느낌으로 심장 가득 행복의 물결이 출렁였다.
그가 입술을 떼고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눈빛이 그녀의 심장처럼 출렁였다. 지원은 그 순간 깨달았다.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 이토록 가슴 벅찬 느낌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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