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하는 유정인의 직업만으로 가십을 쫓는 기자라고 오해하고, 정인은 세간에 알려진 이미지로 박권하를 오만하며 자기 잘난 맛에 사는 배우로 오해한다. 서로에게 오해를 가지고 있던 그들은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그 오해를 기반으로 감정이 싹트게 되는데……. 평소에 다른 사람을 만날 때 적잖은 오해를 가지고 시작한 관계가 긍정적인 연인관계로 끝날 수도 있을까?

한가롭기 그지 없는 바(bar) 안에 또 다른 손님이 찾아든 것은 그때였다. 딸랑이는 벨소리와 함께 새까맣게 칠한 유리문을 열고 들어온 사내는 멀리서 봐도 한눈에 띌 정도로 훤칠했다. 180은 가뿐히 넘어 보일 것 같은 키는 둘째치더라도 적당히 근육 잡힌 몸이 철저한 관리로 만들어진 것임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잠시 경계하는 빛으로 주위를 한번 휙휙 둘러보던 그는 가게가 비었다고 생각했는지 이내 씩 웃으며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리고는 바(bar) 주인이 무어라 말할 새도 없이 기분 좋은 표정으로 겅중겅중 뛰어와서는 잔을 들고 있는 주인을 끌어안으며 볼에 격한 뽀뽀를 날렸다. 

금방이라도 비명을 내지를 듯 사내의 목소리에는 행복함이 가득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바(bar) 주인은 같이 기뻐해 주는 대신 자신을 성민이라 부른 남자를 금방이라도 죽여 버릴 것처럼 매섭게 노려봤다. 그는 한 손으로 남자의 얼굴을 쭉 밀어내며 말했다.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에 말문이 막힌 성민의 고개가 삐걱이며 돌아갔다. 그는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는 정인을 보며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방금 전 자신의 넋두리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던 여자의 직업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반드시 연락을 하라며 억지로 쥐여 준 명함에 자랑스럽게 새겨져 있던 직업. 그것은 지금 상황이 최악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경종 같은 것이었다. 

반면 권하는 그제야 여자의 존재를 알아차렸는지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동그랗게 뜬 두 눈은 평소 카리스마 넘치는 배우로 자리매김 한 브라운관 속 그의 모습에서는 쉽사리 볼 수 없는 표정이었다. 

놀란 두 남자를 뒤로한 채 여자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도 놀라울 정도의 직업의식을 발휘해 지금의 상황을 판단하기 시작했다. 아니, 외려 알코올이 들어간 뇌는 팽팽히 돌며 평소보다 열심히 생각이란 걸 시작했다. 낮 2시, 손님이라고는 자신밖에 없는 바(bar), 갑작스레 그 바(bar) 안으로 난입한 이 시대 최고의 배우 박권하, 그리고 친근해 보이는 관계에 격한 뽀뽀…….

하나하나 상황을 정리해 나가던 그녀의 안색이 점차 하얗게 질려 가기 시작했다. 술에 취해 흐리멍덩하던 두 눈에 이채가 돌고, 두 남자 사이를 바삐 오갔다. 그리고 그녀는 권하나 성민이 지금 상황에 대해 무어라 변명을 하기도 전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구부정하게 휘어진 손가락을 애써 곧게 펴려고 애를 쓰며, 이 시대의 자랑스러운 여기자는 삑사리가 난 목소리로 외쳤다.

그야말로 확신에 가득 찬 한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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