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행복해지시오, 마가렛. 사랑이란 내가 그대에게 준 것만큼 차갑지 않소. 그대는 아직 어리니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사랑할 시간이 있소. 충분히 행복해질 시간이 있음을, 잊지 마시오.”

다이브 백작가의 둘째 딸 마가렛. 원하지 않았던 시듀르켄 백작과의 결혼, 그리고 사랑이 없던 결혼생활. 6개월 후 미망인이 된 그녀에게 남겨진 것은 남편의 숨겨진 아들이었다. 그녀 앞에 펼쳐진 삶이 어린 나이의 그녀가 감당하기엔 너무 벅차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가렛은 그녀의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도대체……, 당신은 뭐 하는 사람이에요?”

두 번째 같은 질문에도, 테일렛은 전혀 원하는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괜찮아, 마가렛. 지금의 나는 당신에게 위험하지 않아.”

‘진실일지 거짓일지 판단내리기 힘들게 하는 태도에, 행동에, 말투에. 종잡을 수 없는 사람.’

“마가렛. 너무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 마. 이래 봬도 내가 좋은 사람일지 어떻게 알아? 진짜 음흉한 사람은 얼핏 보기에 믿음직하지만, 의도가 있는 사람이야. 나도 의도는 있지만, 순수하지. 나는 정말 미치도록…….”

※ ‘가하 에픽’은 다양한 시대, 색다른 소재, 독특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은 도서출판 가하의 새로운 브랜드입니다. 로맨틱한 판타지가 가득한 가하 에픽, 지금 만나보세요!

2. 작가 소개

한하연

쓰는 일이 좋아서 시작했다가 지금도 쓰고 있는 평범한 글쓴이.

동화와 귀여운 걸 좋아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면도 있는 그런 사람.

▣ 출간작

그녀는 수학을 배운다

엘핀느의 꽃

붉은 벨벳 위 하얀 진주 한 알

달콤한 말 세 방울

푸른 단검과 흰 장미

집(House)(단편집)

비밀의 숲(공저)

▣ 출간 예정작

맑은 하늘 푸른 잎새

목련화

3. 차례

#프롤로그

#1. 아도니스(Pheasant's-eye) : 회상

#2. 히아신스 (Hyacinth) : 마음의 기쁨

#3. 팔손이나무(Fatsia japonica) : 기만

4. 미리 보기

어이를 벗어난 상식 밖의 행동. 아니, 남녀지간에 그렇고 그런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고는 하지만, 이 남자는 상습범이니 동정의 가치가 없다. 그러나 눈앞에서 생글생글 웃는 남자는, 전혀 잘못이 아니라는 듯 태연하다. 기가 막힌다. 마가렛은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문제가 많은 사람이로군요.”

그 말에도 테일렛은 전혀 마음 상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맞는다는 듯 찬찬히 고개를 끄덕이고, 유심히 상대의 표정을 살피고, 게다가 동조까지 한다.

“마가렛, 구제불능이라고 생각하는 게 얼굴에 쓰여 있어.”

“우리는 단 두 번 봤을 뿐이에요. 반말 좀 어떻게 하지 않겠어요?”

“싫어. 억울하면 마가렛도 반말 쓰라고. 아니면 오빠라고 부르든지.”

‘오빠? 맙소사. 이 사람이 지금 미친 걸까? 아니면 원래 이런 성격인 걸까? 지금 당신이 하는 건 귀족에 대한 불경죄로, 목숨 걸고 이러는 건 알고 있는 겁니까?’

마가렛은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저번의 대화를 볼 때, 테일렛은 누구보다도 그런 룰을 잘 아는 남자.

‘진짜, 죽고 싶어서 이러나? 아니면 내가 물렁하게 보이는 걸까? 도대체, 이 남자는 정체가 뭐지?’

“당신, 뭐 하는 사람이에요?”

질문을 들은 남자는, 마가렛을 빤히 바라봤다. 언뜻 언뜻 금빛이 아롱지는 투명한 연둣빛 눈동자는, 거울인 양 마가렛을 비췄다.

“오늘도 아이랑 같이 왔어?”

“같이 왔어요. 마을로 갔으니 조금 있으면 올 거예요.”

그 말에, 테일렛은 미련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자신을 향해 살짝 수그린 얼굴에는 진지함과 장난기, 알 수 없는 쓸쓸함이 동시에 맴돌았다. 말투는 여지없이 털털해 어느 쪽에 장단을 맞춰야 할지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잘 먹었어. 마가렛. 당신은 내 생명의 은인이군. 처음엔 상처를 치료해줘서 부상의 위험에서 벗어나게 하더니, 이번엔 음식을 줘서 아사의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줬으니.”

마치 귀부인에게 하듯 손을 가볍게 내밀며, 테일렛은 마지막 말을 진지하게 내뱉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까?”

마가렛은 내밀어진 손을 당연히 잡지 않고, 대답했다.

“아이를 한번 만나줘요. 그럼.”

그러나 그 말에, 테일렛은 강하게 고개를 휘저었다. 온몸으로 부정의 표시를 하는 남자에게, 마가렛은 울컥했다.

“그건 안 돼. 나는 아이가 싫어. 마가렛, 미안하지만 그 아이는 특히 싫어.”

테오가 어디가 어때서! 누구보다도 예쁘고, 누구보다도 상냥하고, 누구보다도 사랑스러운데! 아니, 누구보다도, 라는 말을 다 빼버리더라도, 그 아이는 착하고, 사람을 좋아하고, 좋은 특성들이 가득하다. 친자식이 아니더라도 사람으로 하여금 애정을 쏟아붓게 하는 매력이, 아이에게는 분명히 있었다. 그 애정에 다정히 화답함으로, 아이는 더 사랑받았다.

그런데 왜 저 남자는 자기 아이를 저리도 싫어하는 걸까? 물론 모든 사람에게 애정을 받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지만 속으로는 생각해도, 저렇게 대놓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어떻게 남의 아이한테 그런 말을!”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야. 마가렛. 왜, 그런 거 있잖아. 자석의 같은 극처럼, 서로를 밀어내는 존재. 뭐, 그런 기분이랄까?”

“도대체……, 당신은 뭐 하는 사람이에요?”

두 번째 같은 질문에도, 테일렛은 전혀 원하는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괜찮아, 마가렛. 지금의 나는 당신에게 위험하지 않아.”

믿어보라는 것처럼 테일렛은 웃음 지었다. 그 웃음은 도무지 여인들을 이리저리 유혹하고 함부로 버리는 사람의 미소 같지 않아, 마가렛은 긴장했다. 조심해야 할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자기 입으로 위험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라니.

‘진실일지 거짓일지 판단내리기 힘들게 하는 태도에, 행동에, 말투에. 종잡을 수 없는 사람.’

그러나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함에도, 마가렛의 얼굴에는 호의 그 이상의 표정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것은 오래 익숙해진 귀족 사회의 가면 같은 것이었다. 속으로야 무슨 생각을 하든, 깨지지 않는 견고한 가면.

그러나 테일렛은, 마가렛의 표정에는 전혀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뭔가를 알려주려는 것처럼, 친절히 말을 이었다.

“마가렛. 너무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 마. 이래 봬도 내가 좋은 사람일지 어떻게 알아? 진짜 음흉한 사람은.”

테일렛은 마을 부근을 흘끔 바라봤다. 아이가 오려면 시간이 있을 거라고 판단이 선 것 같았다. 그는 다시 여유 있게 바구니 쪽을 바라봤다. 배가 덜 찼군. 마가렛은 생각했다.

“얼핏 보기에 믿음직하지만, 의도가 있는 사람이야.”

마지막 말이 주는 울림은 상당한 것이라, 마가렛은 그를 가만히 바라봤다. 여전히 표정 변화는 별로 없이. 테일렛은 그런 마가렛에게 사심 하나 없는 미소를 띠어주었다.

“나도 의도는 있지만, 순수하지. 나는 정말 미치도록…….”

테일렛은 결코 샌드위치 바구니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마가렛은 포기했다. 이건 배고픈 어린아이 하나를 추궁하는 꼴도 아니고. 한 번 베푼 호의는 상대가 적의가 없다는 걸 판단한 순간, 두 번도 베풀어진다. 자신이 이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이었나? 마가렛은 잠시 생각해봤다. 그러나 그런 걸 다 떠나서 남자의 분위기는…….

“배가 고프거든.”

생각은 이어질 수 없었다. 그 한마디에, 마가렛은 배고픈 아이에게 간식거리를 꺼내는 기분으로 테일렛에게 손짓했다. 의도를 알아차린 테일렛은, 방긋 웃으면서 샌드위치 바구니 근처에 앉았다.

음식은 넉넉히 싸 왔으니, 충분히 먹을 수 있겠지. 싱싱한 과일과 샐러드, 푹신한 빵, 삶은 달걀 등을 꺼내면서, 마가렛은 테일렛이 혹시나 하고 챙겨 온 와인 병에게까지 사랑스러운 눈길을 주는 것을 봤다.

맙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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