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단번만이라도 그 아이가 내 이름을 불러준다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여자는 그의 이름을 부르면 자신을 돌아 봐 주지 않을까 두려워 끝까지 부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그만을 보았다.

말을 잃은 그녀와 그런 그녀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그.
하지만 너무나 사랑해도 또다시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그들.


1권

그는 얼어 버릴 듯한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말을 했다.
“나 같은 놈이, 나 같은 새끼가 잠깐 너랑 있으면서 깨끗한 척, 착한 척, 멋진 척 한 거야. 난 그때도 지금도 속이 시커먼 놈이고 더러운 놈이고 못된 놈이니깐. 그러니깐! 그러니깐!”
잠시 말을 멈추었던 해준은 떨리는 손을 뻗어 자신이 입을 맞추었던 미이의 입술에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자신의 흔적을 닦아 내듯 그녀의 입술을 문질렀다.
“잊어라, 미안했다, 이미이.”
그의 손이 힘없이 툭하고 떨어졌다. 그리고는 눈물을 흘리는 그녀를 그대로 둔 채 몸을 돌려 막다른 그 길을 벗어나 버렸다.
덩그러니 그곳에 혼자 남은 미이는 소리도 없이 눈물을 흘렸다.
잊으라고 한다. 미안하다고 한다.
그렇게 따듯하게 손을 잡아 주고 안아 줬으면서, 그렇게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 놓고는, 다정한 입맞춤을 해놓고는 그는 이 모든 걸 잊으라고 말했다.~

서월(曙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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