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사랑하던 우희에게 어느 날 표절 시비가 붙었고, 그대로 우희는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피해 숨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 존재는 우희의 곁을 키다리 아저씨처럼 몰래 지켜주던 사람이었는데…….



-본문 중에서-

“우희 씨.”

덜컥. 심장이 내려앉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침착하니 숨을 쉰 우희는 모른 척 하며 재빨리 안으로 들어가 닫힘 버튼을 우선 눌렀다. 그러나 남자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더 빨랐다.

“저 이상한 사람 아닙니다.”

“……그럼 누구세요?”

“당신을 찾아다녔어요.”

희미하니 떨리는 손으로 버튼을 누른 우희는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느낌에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저는 13층에 살지만 10층을 눌렀다. 남자를 밀어버리고 다시 올라갈 생각이었다. 단, 남자의 이어지는 목소리가 아니었더라면 그 생각은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예인 누나는 기절할 때도 있고, 해일 형은 살이 쭉쭉 빠지고 있어요.”

아는 사람의 이름만 아니었으면, 친하다는 듯이 말을 꺼내는 남자의 목소리만 아니라면, 분명 남자를 밀어버렸을 것이다.

“그래서 수소문 끝에 찾아왔어요.”

결국 우희는 눈에 보일 정도로 떨리는 손으로 13층을 눌렀다. 그 모습이 안쓰러웠지만 남자는 내색하지 않았다. 제대로 자신이 사는 층을 눌렀다는 것은 이야기를 해볼 것이라는 의사 표현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일단 된 것이다.

10층에서 13층까지, 단지 3층 사이였지만 올라가는 동안 숨 막히는 침묵이 이어졌다. 집 안에 들어가서도 그 침묵은 이어졌다. 너무 무거웠지만 우희는 입을 꾹 다물었고, 결국 남자가 먼저 집 안에 들어가자마자 입을 열었다.

“우희 씨, 저는…….”

그 때였다. 남자의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분위기에 맞지 않은 귀여운 그 소리에 우희가 잠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배를 잡은 남자는 귓가 근처까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아하하. 하하. 아하하!”

오랜만에 소리를 내서 웃어보는 것만 같았다. 우희가 웃을수록 점점 고개를 집어넣는 거북이처럼 모양새가 변하는 남자로 인해 결국 우희는 두 손, 두 발 들었다는 듯이 부엌으로 들어가며 남자에게 말을 건넸다.

“마침 저도 배가 고팠거든요. 라면, 괜찮죠?”

“아, 네……. 상관없습니다.”

“많이 배가 고프시면 빵이라도 드실래요?”

“하하…… 있다면, 신세 좀 지겠습니다.”

이상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아 집 안에 들였다. 그리고 남자의 방금 전 모습을 보아 조금은 확신을 하게 되었다. 모르는 사람이지만 해일과 예인은 알고 있으니까.

우희가 라면을 끓이는 동안 은호는 식탁 의자에 앉아 우희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그녀가 건넨 빵을 먹었다. 우희는 목이 막히지 않게 우유까지 내어 주었다. 괜찮다 했지만 그녀는 잔을 내려놓고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그 때, 우희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남자는 잠깐 놀랐다.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아, 박은호라 합니다.”

“해일 오빠랑 예인 언니랑은…… 어떤 사이인가요?”

“해일 형하고는 대학 선후배 사이입니다.”

“그렇군요.”

해일과 친하니 자연스럽게 예인과도 아는 모양이다.

박은호라 불린 남자의 방문은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 그리워했던 사람들의 이름으로 인해 점심까지 대접하게 되었다. 2년 동안 많이 그리웠던 모양이다. 많은 것을 물어보고 싶었지만 우희는 물어보지 않았다. 아까 전에 충분히 들었으니까. 저로 인해 몇 사람들이 아파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게 알았다.

어느새 다 끓인 라면에는 맛있는 냄새가 나 있었다. 계란까지 넣은 우희는 은호에게 숟가락과 젓가락을 건넸다. 이내 조용히 식사는 이루어졌다. 어쩐지 알고 지낸 사람처럼 은호가 불편하지만은 않았다. 처음 본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이 편안한 사람.

“밥은 말아 먹나요?”

“아, 우희 씨가 먹고 싶다면…….”

일어나서 밥까지 말아온 후, 그것까지 같이 먹었다. 처음 본 사이에 오래 만난 사람처럼 이러는 행동이 조금은 웃겨서 우희는 살짝 웃었다. 하필 그 때 은호와 눈이 마주쳤고, 은호도 웃었지만 그는 굉장히 부드럽게 웃었다. 처음 느꼈던 그의 첫인상과 잘 어울리는 미소였다. 잠시 넋을 잃은 것처럼 은호의 얼굴을 바라보던 우희는 금방 정신을 차리고선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녹차랑 홍차 있는데 어떤 거 마실래요?”

“홍차 쪽이요.”

“잠시 만요.”

커피포트를 연결한 후, 물이 끓기를 기다리며 잔 두 개를 꺼낸 우희는 잠시 준비를 멍하니 서있다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입을 열었다. 은호는 우희의 등을 응시하고 있었다.

“당신이 왜 왔는지 알 것 같아요.”

“……그런가요.”

“네. 그래서 미리 대답 해 드릴게요.”

사실 가장 겁이 나는 것은, 이하정은 아직도 활동을 하는데 다시 가서 또 그렇게 당하면 어쩌냐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저는 아예 살아서 숨도 쉬지 못 할 것이다. 미리 겁부터 났다. 전전긍긍하며 노래를 부를 바에는 차라리 부르지 않는 것이 더 편안할 것이다.

“그 전에 저는 우희 씨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마침 물이 끓었을 때, 은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딱딱한 목소리가 아니라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미소도 전체적인 분위기도, 목소리도 참 부드러운 남자다. 얼핏 그런 생각을 하던 우희는 은호의 앞에 홍차를 내밀며 대꾸를 했다.

“어떤 거죠?”

“우희 씨는 돌아오고 싶지 않은가요?”

“네.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이게 제가 하려던 대답과 겹치네요.”

홍차를 한 모금 마시던 우희가 마저 대답을 이었다.

“저는 절대 돌아갈 생각 없어요.”

자신의 안에서 자라고 있는 모순덩어리가 저를 괴롭힌다. 사실은 돌아가고 싶은 것과, 또 다시 그런 경험을 할까 두려운 것. 두 가지 마음이 맞물려 서로를 괴롭히며 모순덩어리가 되어만 간다.

“그러니 돌아가 주세요.”

미디어 리뷰가 없습니다.

별점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