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혹시 고르기아스의 연애회의주의라고 알아?”

갑작스레 등장한 괴상한 이름에 재인의 표정이 막막하다 못해 험상궂어졌다.

“첫째, 멋진 이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둘째, 존재하더라도 알아볼 수 없다. 셋째, 알아보더라도 만나 주지 않는다. 그게 연애회의주의래. 그거 딱 내 얘기야.”



<본문 중에서>

“재미없어.”

“…….”

“하나도 재미없다고, 이소운. 답답하고 화만 나기 시작한지 오래됐어. 언제까지 할 거야.”

애가 타는 듯한 녀석의 목소리에 걸음이 저절로 멈췄다. 녀석이 진지하게 나올수록 왠지 이 상황이 진짜 같지 않았다. 왜 하필 지금 이러는 걸까. 적어도 이 비슷한 고양감을 느꼈던 때가 나는 지금까지 몇 번이나 있었다.

연후는 내 생일을 자주 잊어버리곤 했다. 연후 뿐 아니라 꽤 친하다는 다른 친구들도. 내 생일파티는 자주 생략되었다. 생일이 지난 걸 알고 친구들이 화를 냈던 걸 생각하면 그 애들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의도적으로 그런 기척을 죽였다. 선물 같은 것에 얽매이기는 싫었다. 좀 부담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고3 생일에 제일 먼저 축하한다고 말해주려고 학교 입구에서 재인에 기다리고 있었을 때 내가 울 뻔 했던 걸 보면 기척을 죽여도 알아줄 누군가를 원했던 건지도 모른다. 남들보다 바라는 게 더 많은 애였던 것이다.

녀석은 그런 나를 알아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내가 그런 일들을 일일이 사랑으로 연결 짓지 않은 것은 스스로 뭔가 남들과 다른 이상한 애라는 자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원래 이런 애, 라고 넓게 생각하면 아무것도 특별해지지 않았다.

그런데 왜 이제와…….

눈을 꾹, 하고 감고 있으니 뒤에서 차가운 손이 뻗어와 볼과 귀를 거쳐 머리카락을 건드렸다. 어떤 의미가 있는 자극이었다.

“너 끝까지 모르는 척 할 거야?”

녀석이 목적어가 없는 질문을 했지만 나는 알아듣고 있었다. 끌리는 걸 모르는 척 할 거냐고. 키스했던 걸. 혹은 싸웠던 걸. 갖다 붙이자면 끝도 없이 나올 수 있지만 나는 내가 느낀 걸 재인도 똑같이 느끼고 있다고 믿었다. 체념과 포기가 뒤섞인 하지만 어딘가 따뜻하고 설레는 그 묘한 감정덩어리.

“아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큰 폭의 성장이나 변화 없이 오랜 기간 친밀하게 지내는 데 한계가 있는 거라면 그래서 지금 적당히 무심한 관계가 되든 애인이 돼서 아예 끝을 보든 혹은 애인이 된 후 또 적당히 무심한 관계가 되든 그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거면 나는 조금 더 시간이 연장되는 쪽을 택하고 싶었다.

“이제 모르는 척 안 해.”

잠시 후 이어진 녀석의 키스는 그날과 달랐다. 침범하듯 내 입술을 가르고 들어와 혀를 느릿느릿 뜨겁게 얽는 남자의 키스였다

게으른 잔나비띠, B형과 친한 A형, 변덕 심한 쌍둥이자리,
몽상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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