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을 배경으로 나란히 선 여학생들을 찍어주고 돌아서니 서은은 샐쭉해져 있었다.
“왜.”
“누구더러 아저씨래. 감히.”
“만날 아저씨 아저씨, 그러는 게 누군데.”
“이제부터 아저씨라고 안 할까 봐. 우리 오빠랑 겨우 두 살 차인데, 오빠라고 할까요? 진우 오빠, 이렇게.”
진우……오빠. 그건 나쁜 기억을 불러온다. 진우는 완강히 고개를 저었다.
“하던 대로 해. 원래대로.”
“아저씨라고 부르는 거, 싫잖아요.”
“안 싫어.”
“정말?”
“그래.”
“그래도 좋지는 않잖아요.”
“아니, 좋아.”
“좋아요?”
“그래.”
“정말?”
“꼬박꼬박 확인하는 거 싫댔지.”
“알았어요.”
금세 풀이 죽어 어깨를 늘어뜨리는 서은을 가까이로 끌어당겼다. 동그란 어깨에 내려앉은 햇볕을 팔로 가리며.
“한서은이 아저씨라고 부르는 거, 듣기 좋아. 아주 많이.”
서은이 조용히 품은 미소가 느껴졌다. 행복할 땐 한 순간 넋을 놓은 듯 고요해지는 그녀, 서은. 그럴 때 그녀의 마음의 파장을 이제는 진우도 알 것 같았다. 조심조심, 서은의 손이 반대편 옆구리로 건너왔다. 옷자락을 잡으며 두근거릴 그녀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렇게 연인처럼 산책로를 따라 햇빛 속을 말없이 걸었다. 바람도 잠들고, 꽃도 나무도 새도 잠들고, 하늘의 구름도 잠시 멈추어 잠이 든 것 같은, 긴장과 평화가 공존하는 시간이 얼마간 흘렀다.
이윽고 서은이 말했다. 잠결인 듯, 꿈결인 듯, 여리게.
“나무 냄새가 난다……. 아저씨한테서 나무 냄새가 나.”
서은, 너한테서는……바람의 냄새가 나.
“아저씨, 지금 뭐라고 했어요?”
“아무 말도 안 했어.”
“이상하다. 뭐라고 얘기 한 것 같은데…….”
맑디맑은 바람, 하늘을 건너온 바람, 바다를 건너온 바람, 먼 나라의 숲을 날아온 바람, 별빛을 안은 바람, 달빛을 지닌 바람, 투명하디 투명한……바람의 냄새가.
가슴 속 가장 밑바닥, 가장 깊은 곳이 흔들린다. 그 흔들림에다 진우는 어떤 이름도 붙이지 않았다. 다만 들여다볼 뿐.

봄을 좋아한다.
쓰는 즐거움으로 행복해지길 바라며
다양한 빛깔의 삶과 사랑과 사람을 그리고 싶다.

* 종이책 & 전자책 출간작
푸른 속눈썹. 오르골. 햇빛 아래 그가 있다.
계절사랑 시리즈 / 겨울사랑(2권). 여름사랑. 봄사랑. 가을사랑
연지. 올 오아 낫씽(2권). 풀잎연가. 이끌림. 느낌. 귀엣말.
열대의 시간. 타임. 포옹. 당신의 숲. 가장 투명한 빨강.
파문이 나를 새길 때. 곰곰, 하는 중입니까?

* 전자책 출간작
동그라미. 눈사람에게. 약속. 이안류.

* 장편동화 <엄지>와 동화집 <나의 철부지 아빠(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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