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거? 일곱 살 잘난 아들 그리고 쬐그만 김밥 가게 뿐.
하지만 무식하게 씩씩하다. 대책 없이 당당하다.
스물다섯, 대한민국 아줌마 정보라! 그녀를 보라!

이, 이거 꿈이지? 응? 그렇지? 저 사람이 여기 와 있을 리가 없잖아.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보던 보라는 바닥을 짚고 있던 손으로 허벅지를 세게 꼬집어보았다.
꿈이 아니구나. 현실이야. 그리고 눈앞의 저 남자는 그가 맞아. 그. 류태화.

보라의 조촐하다 못해 초라한 인생 속으로 갑자기 뛰어든 한 남자.

그런데 내가 어디서 저 여자를 본 적이 있나? 왜 이렇게 얼굴이 낯익게 느껴지는 것이지? 흔한 생김이라 그런가? 그래. 그럴 것이다.

너무 다른 두 사람 아니 세 사람이, 때론 싸우고 때론 화해하며 닮아가는 이야기. <보라, 그녀>



-본문 중에서-

1. 김밥 가게 아줌마

“뭐 하는 짓이야, 당신!”
버럭 입구에서 내질러지는 고함에 화들짝 놀라, 보라는 ‘까아!’ 하는 비명과 함께 칼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수직으로 낙하하는 칼날에 찍히지 않기 위해 제법 날렵하게 발을 빼던 그녀는 그만 비틀거렸고, 그 바람에 식탁모서리에 엉덩이를 부딪쳐 볼썽사납게 넘어지기까지 했다.
“누나, 괜찮아?”
어느새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아 묻는 제윤의 눈동자에 걱정이 그득했다.
너 같으면 괜찮겠냐? 이씨, 아파.
그러나 이를 악물고 그저 짧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보라는 입구에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선, 자신을 이렇게 만든 존재를 비스듬히 고개를 들어 노려보았다.
다짜고짜 고함이라니! 도대체 어떤 뻔대 자식이야!
화를 억누르며 반질반질한 수제 구두부터 날이 잘 잡힌 바지를 지나 날렵한 허리선을 드러내는 재킷까지 훑어보던 그녀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려 했다.
거참, 기럭지 한번 짜증나게 길다!
투덜거리면서도 그녀는 거의 목이 꺾이다시피 고개를 들어올려 새하얀 와이셔츠 깃과 고집스러움을 담은 턱, 깎아놓은 듯한 콧날마저 관찰했다. 그러다 마침내 사람을 압도하는 차가운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 너무 놀란 나머지 석상처럼 몸이 굳어지고 말았다.
이, 이거 꿈이지? 응? 그렇지? 저 사람이 여기 와 있을 리가 없잖아. 그래, 맞아. 지금 나, 김밥 썰다가 깜빡 졸고 있는 거야.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보던 보라는 바닥을 짚고 있던 손으로 허벅지를 세게 꼬집어보았다.
“아, 아야야~”
아팠다.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그런 자신을 ‘저거 바보 아냐?’라는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그를 보노라니 맥이 탁 풀렸다.
꿈이 아니구나. 현실이야. 그리고 눈앞의 저 남자는 그가 맞아. 그, 류태화.
‘혹시나’, ‘어쩌면’하고 바랐지만 지난 7년간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재회는 상상에서처럼 멋지지 않았다. 아니, 그는 멋졌지만 그녀는 아니었다. 하필 오늘따라 늦잠을 자 머리를 감기는커녕 세수만 겨우 한 몰골에, 김밥 가게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있는 꼴이라니.
지금 심정을 노래로 표현하자면 ‘울~고~ 싶어라~’뿐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그런 속내를 알 리 없는, 다시 들려온 태화의 목소리는 고드름같이 날카롭고 차가웠다.
“홍제윤, 너 이리 안 와?”
그녀를 기억하는 기색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미 알고 있었던 일이지만, 그녀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 그의 태도에 마음이 아팠다. 멍하니 있던 보라는, 순간 머릿속에 밀려드는 갑작스런 깨달음으로 겨우 태화에게서 시선을 뗄 수 있었다.
응? 그런데 저 사람, 방금 ‘홍제윤’이라고 불렀지? 그가 제윤일 알아?
제윤의 맑은 눈망울을 응시하며 묻는 그녀의 목소리는 저도 모르는 사이 떨려 나오고 있었다.
“아, 아는 사람이야?”
“응. 우리…… 외.삼.촌.”
그러자 어깨를 으쓱하며 제윤이 한 대답에 보라는 놀라움의 신음을 삼키려 이로 입술을 지그시 깨물어야 했다.
태어나 기절은커녕 현기증조차 몇 번 느껴본 적 없는 그녀였건만, 순간 세상이 빙그르르 도는 것만 같았다.

정유하


힘들고 고독한 작업이긴 하지만, 글 쓸 때가 가장 행복하다.
그런데 요즘은 행복한 때가 또 있다. 바로 첫돌배기 아들의 웃는 모습을 볼 때.

독자들에게 기쁨을 주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
또한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는 엄마가 되고 싶다.


출간작 : 비의 재회, 감자의 사랑니, 해바라기, 질주, 안녕 내 사랑, 원조연애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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