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마.
네가 울면 나도 아파. 하늘이 울면 달도 흐려지며 아파하듯이…….

천공(天公). 하늘에서 관직을 받은 자.
‘변치 않는 낙원’에서만 태어나는 고대의 권능을 계승한 자들.

그런 우리에게 진정으로 쉴 곳은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대해를 건너, 창공을 넘어 서로에게 닿았다.


천공(天空)의 연(戀)


[미리보기]

세―이든 제국력 4101년.

불규칙하게 토해져 나오는 숨이 마치 불타는 것만 같았다. 끝없이 달려온 폐는 터질 것 같았고, 한계를 넘어선 팔과 다리는 아예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질척한 진흙탕은 망자(亡者)처럼 발길을 옭아매 왔다. 그럼에도 그녀는 달리고 있었다, 습윤한 암흑이 내려앉아 마치 마계(魔界)로 통하는 입구인 양 깊고 어두운 숲 속을.
「이건 꿈일 거야……. 이건 꿈이야…….」
정신없이 되뇌어 보았지만, 뒤에서 들려오는 추격자들의 발소리는 먹이를 쫓는 허기진 짐승처럼 끊이지 않고 따라오고 있었다.
「저쪽이다! 쫓아라!」
숲의 안식을 방해하는 침입자들의 시끄러운 고함 소리, 그들이 들고 있는 횃불이 퍼뜨리는 매캐한 연기, 철컥철컥 울려 퍼지는 소름끼치는 쇳소리. 지진처럼 땅을 울리는 그들의 발소리만큼이나 심장이 쿵덕쿵덕 매섭게 뛰었다.
사실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었다. 목숨만큼 귀히 여기던 연인을 잃고 더러운 개처럼 쫓기게 된 마당에 이 부질없는 목숨을 연명해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릴까. 하지만 그녀는 멈출 수 없었다. 무언가가 그녀를 끊임없이 채찍질하고 있기 때문에. 제발 멈추지 말라고. 살아달라고.
「우욱! 흐윽! 흑!」
그녀는 억장이 무너지는 듯한 오열을 토해내면서도 달렸다. 그러나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무작정 달리기만 했기 때문일까. 어느새 숲의 끝에 도달해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성마르게 덤불을 헤치고 지나간 순간, 그녀는 ‘헉!’ 소리를 내지르며 멈춰 섰다. 동시에 전신을 후려치는 강한 바닷바람이 불어와 몸이 쓸려 나갈 듯하자, 그녀는 본능적으로 얼른 두어 걸음 물러섰다. 그러나 눈까지 시리게 만드는 매서운 바람은 조금도 잦아들지 않았다.
팔로 얼굴을 가린 채 주저주저 앞을 바라보자, 심장이 멎을 만큼 장대한 풍경이 펼쳐졌다. 수평선이 보이지도 않을 만큼 까맣게 드리워진 밤바다. 그리고 바로 몇 발자국 앞은 까마득한 단애(斷崖).
꿀꺽, 굵은 침이 목을 타고 넘어갔다. 실수로 몇 발자국만 더 내딛었다면 속수무책으로 저 사나운 파도의 먹잇감이 되었으리라. 그리고 절벽 끝에 부딪혀 장렬한 포말을 토해내는 파도는 예리한 이빨을 드러내고 여린 육체를 아득아득 씹어 삼켰겠지.
거의 발악하듯이 불어닥치는 바닷바람은 마치 검 같아서, 보호막 하나 없이 헤쳐 드러내진 피부를 잔인하게 난도질했다. 그녀는 둔기 같기도 하고, 흉기 같기도 한 바닷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멍하니 생각했다.
밤바다의 냄새는 어쩐지 피 냄새와 비슷하구나…….
잠시 멍해져서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태평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저기다! 저기 있다!」
금세 그녀를 발견한 추격자들이 목청껏 외치는 소리가 고막을 헤쳤다. 그녀는 머리가 아뜩해질 만큼 높은 단애의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절벽의 밑동에 부딪혔다가 사그라지는 파도가 격렬한 손짓을 하고 있었다.
이리 와.
편해질 거야.
그녀는 목에서 잘그락잘그락 흔들리는 두 개의 목걸이를 뜯어낼 듯이 와락, 움켜쥐었다.
「잡았……!」
덤불을 헤치고 나온 침입자들이 무어라 할 틈도 주지 않았다. 그녀는 그들을 돌아보지도 않고 한 치의 주저도 없이, 그녀의 아름다운 육체를 탐내고 있는 검은 괴물의 입속으로 몸을 던졌다.
「저, 저런! 미, 미친……!」
침입자들은 얼른 단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마침 푸웅덩! 하는 소란스러운 물소리가 울리며 높은 파도가 처얼썩! 맹렬하게 허공을 때렸다. 그리고 다시 수면으로 돌아가 무심히 몰아치는 파도의 향연에 섞여들었다. 혹시라도 떠오를까 싶어 한참을 내려다봤지만, 새까만 수면에 삼켜진 붉은 머리칼은 다시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포식한 검은 괴물이 깔깔거리며 웃듯 소름끼치는 파도 소리를 퍼뜨릴 뿐이었다.

물속은 마치 심연(深淵)과 같았다. 아무런 소리도 없고, 아무런 색깔도 없고, 아무런 냄새도 없고, 아무런 고통도 없었다. 마치 양수 속에 누운 태아일 적에 느꼈던 것 같은 안락함. 빈틈없이 몸을 감싸 안는 심해에 서서히 의식이 몽롱해져 갔다.
점차 흐려지는 시야에 표류하는 판자처럼 멀거니 떠 있는 자신의 팔이 보였다. 새까만 물에 대비되는 새하얀 팔은 마치 시체의 것처럼 지독히도 창백했다. 시간이 느려진 것처럼 주변에 일렁일렁 떠다니는 붉은 머리카락은 낭자한 피 같았다. 하지만 이카란은 곧 다가올 안락을 갈구하듯 눈꺼풀을 내리감았다.
‘이렇게 끝이 나는구나…….’
열여섯 살,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가보고 싶은 곳도 많았던 어린 나이에 신의 품에 귀의해 신녀가 되었다. 아기일 때 신전 앞에 버려져 그곳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커온 그녀에게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
신을 상징하는 화롯불 앞에 나서 순결서원을 외치고 평생 당신의 신부로 살겠노라, 맹세했다. 그때는 그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여인에겐 한없이 늦은 해, 우연히 한 남자를 만나 속절없이 사랑에 빠져들고 말았다. 평생 처녀로 살아야 하는 신의 신부에게는 절대 허락되지 않는 연정이었는데도, 멈출 수가 없었다. 이대로 세상이 멸망해도 좋으니 세상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함께하게 해달라고, 신의 분노를 살 만한 말을 감히 내뱉고 말았다.
그럼에도 그 사람을 만난 후로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으로 충만한 나날이었다. 그는 자신을 사랑했고, 자신은 그를 사랑해 문득문득 두려워질 만큼 행복했다. 그래서 어리석게도, 그런 행복이 영속될 거라 믿었다. 그러나 신의 분노는 그들이 함께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자신만 아니었다면 무탈했을 그 고운 사람은 사형대에 목 매달렸고, 자신은 더러운 짐승처럼 쫓기다 시신조차 찾을 수 없는 바다에 투신했다. 하지만 괜찮았다. 그의 곁으로만 갈 수 있다면.
모든 게 끝났음을 직감하고 스르륵 몸에 힘을 뺐을 때였다.
펄떡!
가슴, 아니, 뱃속에서 무언가가 태동했다. 아무런 소리도 없는 암흑 같은 공간에서 유일하게 울리는 소리였기에 이카란은 번뜩 눈을 뜨고 말았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를 깊숙이 집어삼키고 있는 새까만 심연밖에 보이지 않았다.
‘무슨…….’
그 순간이었다.

조례진(마타리아)

출간작
<나의 새벽>, <라이벌>, <유리심장>, <연애, 하고 있습니까?>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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