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하고 담담하게 미령은 말을 계속 이었다. 그러나…….
짝! 날카로운 소리가 잔잔히 울렸다. 지선의 손이 기어코 미령의 뺨을 후려친 것이다. 입을 열어 말을 하던 도중에 날아든 따귀인 터라 미령은 혀를 질끈 깨물어버리고 말았다. 씁쓸한 피 맛이 느껴진다. 이로써 미령의 머릿속에 자리하고 있던 이성의 끈 또한 끊어졌다.
“건방지게 날 도발해?”
얼마나 힘을 주어 말을 했는지 미세하지만 분명 떨리고 있었다. 매서운 따귀로 얼굴이 돌아간 미령의 머리카락을 지선이 가차 없이 휘어잡았다. 예전엔 독설을 퍼부을지언정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그 어떤 짓을 행해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칼을 뽑아 들어 미령의 심장에 꽂고 싶었다.
“주제를 알고 까불어. 더러운 년! 내가 말했지? 네년이 올 곳이 아니라고 말했잖아. 어제 그런 꼴 당했으면서 왜 또 그곳을 가? 왜!”
지선은 이성의 끈을 놓은 지 오래였다. 그리고 그녀에게 머리채를 잡힌 미령 또한 이성의 끈이 끊어져 버렸고.
머리채를 잡혀 이리저리 쥐어뜯기고만 있던 미령은 두 손을 뻗어 지선의 목을 지나 얼굴을 찾았다. 그리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손톱을 세워 그녀의 얼굴을 긁어버렸다. 악‐. 소름 끼치는 비명소리가 들렸고, 자신의 머리채를 잡고 있던 손이 사라짐을 느꼈다. 고개를 서서히 들어 눈으로 지선을 찾았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 보였다.
“후후. 주제라…… 정말 주제를 모르는 게 누굴까요, 언니?”
이번에는 미령이 득달같이 지선의 머리채를 잡아챘다. 인정사정없이 머리채를 잡아 흔들었고, 이따금씩 발길질을 가하기도 했다. 얼마나 이러했을까? 서서히 놓았던 정신이 돌아오는 듯하더니, 지선의 몰골이 눈앞에 똑똑히 보였다.
“하아…… 하아…….”
볼품없이 바닥에 몸을 웅크리고 있지만 눈빛만은 여전히 날카롭게 미령을 노려보고 있었다. 지선의 서늘한 눈빛과 마주치자 미령은 온몸이 꽁꽁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죽여 버릴 거야’라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는데, 그것은 살기였다. 피로 얼룩진 이복언니의 모습에 미령은 자신이 한 짓이지만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희열을 느끼기도 하였다. 언제나 꿈꿔 왔던 일이었다. 이토록 지선의 얼굴을 뭉개고 싶어 하루에도 수천 번씩 상상해온 일이었다. 꿈꿔온 일이 현실로 일어나니 그녀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어버렸다.
흠칫. 지선의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건방지다고만 생각했던 이복동생의 서늘한 미소에 온몸이 빳빳이 굳었다. 맞은 것도 억울한데, 바닥에 쓰러져 볼썽사납게 뒹구는 자신 앞에 서서 어떤 감정도 담지 않은 눈으로 내려다보는 시선과 이어지는 미소. 간담이 서늘하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무서웠다. 이년의 기세로 보건데, 자신의 심장을 손으로 파내고도 남으리라.

    

엄재양 ejy2006@naver.com

<입술을 깨물었다>, <첫 경험> 외 다수의 책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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