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후 열 살 때. 도미노의 첫 조각이 넘어졌다. 불행의 시작은 엄마의 암이었다. 투병은 10년 동안 이어졌고, 엄마의 죽음으로 마지막 도미노 조각이 쓰러졌다. 남은 건 빚과 아버지.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호스티스가 되었다.
딸이 호스티스가 된 것을 안 아버지는 비관 자살했다. 남쪽 바다에서였다. 이제 살 의미를 잃어버린 그녀는 죽으려고 했다. 갇힌 몸이어서 기회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녀의 하룻밤을 산 남자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그녀는 손목을 깊게 그었다.

서무영. 그는 사랑을 경멸한다. 사랑받지 못하는 어머니를 보고 자란 탓이었다. 어머니는 약물 중독으로 죽었다. 자살이었다.
그저 하룻밤의 쾌락을 위해 산 여자가 그의 앞에서 자살을 기도한다. 어머니처럼. 여자를 구했으나 책임질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놓아주지를 못하겠다. 살려놓고 싶었다. 그래서 계약을 했다. 조건은 한 가지. 잘 살아있을 것. 1년 동안 여자에게 발생하는 모든 비용을 지불한다는 조건도 포함해서. 계약은 365일 동안 유효했다.

-본문 중에서-

돌아서는 그의 발에 금속 밧드가 차여 나동그라졌다. 붕대가 길게 풀리며 달아나고 있었다. 눈길이 붕대의 끝을 좇을 때 등 뒤에서 후다닥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무영은 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너!”
여자가 의료용 가위를 집어 들고 있었다. 여자의 다음 행동을 예상하는 순간 그는 달려들었다. 여자의 손목을 낚아챘다. 가위는 바닥에 떨어졌다.
“너 정말!”
또 한 번 여자를 후릴 기세로 손을 치켜든 무영은 그녀를 완전히 막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여자의 가슴에서 갈래갈래 피가 스며 나오고 있었다. 젖은 옷은 순식간에 피로 물들었다.
그는 무너지는 여자를 안았다.
“정민아! 정민아!”
병실 문이 벌컥 열리고 정민이 뛰어 들어왔다. 널브러진 여자와 낭자한 핏물을 본 정민은 의사를 부르며 뛰쳐나갔다.
“나…… 내버려 둘래요? 부탁해요. 제발…….”
여자의 눈빛은 간절했다. 무영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선택이 잘못되었어. 넌 나를 기회로 삼아선 안 되는 거였어. 내 눈 앞에서 죽겠다고 해서는 안 되는 거였어. 다시는…… 내 앞에서, 아무도 죽을 수 없어. 그 꼴은 못 봐. 그러니까 너. 안 죽겠다고 맹세하면 꺼내줄게. 그 진창 같은 삶에서, 내가…….”
어지러운 발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어떻게 된 겁니까? 비켜 보세요!”
“선생님. 가위로 자해한 거 같은데요.”
뒤로 밀려난 무영은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 황망하게 서 있는 정민에게 말했다.
“빈센트에 연락해. 저 여자를 내가, 사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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