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로위 여행. 설산에서의 비행기 추락사고. 깨어나 보니 친구는 깨어날 수 없는 상황이었고, 느닷없이 들이닥친 낯선 사람들에 의해 끌려간 곳에서 만난 원시인. 원시인의 변신이 시작되면서 싹트는 감정들.

지아 : 평범한 삶을 살기를 원했던 여자. 절친한 친구의 죽음의 충격이 가지기도 전에 나타난 사람으로 인해 어둠속에 살아야 하는 여자. 모든 여자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일에만 매달리는 여자.

보리스 : 원시인. 그의 뜨거운 피속엔 차가운 전사가 자리잡고 있다. 빙하속에 갖혀있다가 지아로 인해 새 삶을 부여받은 남자. 그가 인지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지아뿐이다. 그런 지아로 인해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녀로 인해 상처를 받는다. 과거의 아픔이 지아때문이 아니면서도 원망스러움을 감출수 없다.


본문 중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인기척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등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으려고 했다. 가운을 단단히 여미며 천천히 돌아섰다. 눈앞에 보이는 사람 때문에 온몸이 돌처럼 굳어 버렸다. 그는 그녀가 기억하고 있는 모습보다 더 근사하게 변해 있었다. 그 당시 문명화되기 전 모습이라면 지금 그의 모습은 완벽한 문명인보다 더 문명인다워 있었다. 흑발의 머리는 뒤로 단정히 묶여 있었고, 거칠면서도 남성적인 이목구비는 더 선명해져 있었다. 굵은 목선 아래로 떡 벌어진 어깨와 단단하면서 넓은 가슴, 잘록한 허리와…… 당황한 나머지 눈을 다시 얼굴로 가져갔다. 그의 눈동자는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고, 오뚝 선 콧날과 정열적인 키스를 해 주던 입술, 턱 선까지 모든 것이 아찔할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눈을 믿지 않으려고 했다. 아니 잘못 본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라고 외면하려고 했다.
“오랜만이군. 지아.”
이곳에 어떻게 그가 있는지 믿겨지지 않았다. 떨리는 손을 들어 입을 가리며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여길 빠져나가야 했다. 분명 뭔가 착각하고 있을 것이다. 닮은 사람이 어떻게 그녀의 이름을 아는지 모르겠지만 이곳에서 벗어나야 했다. 조심스럽던 발걸음을 돌려 문을 찾았다. 불안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흐릿한 눈에 문이 보일 리가 없었다.
“또 도망가는 건가?”
멈칫!
지아의 모든 것이 정지 상태에 돌입했다. 착각이어야 했다. 저 사람이 어떻게 이곳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녀와 관련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보고 싶지 않았나?”
누군가 심장에 비수를 꼽고 비트는 것 같았다.
“내가 그립지 않았나?”
비수가 낸 상처 난 사이로 피가 철철 넘쳐흘렀다. 그가 그녀를 고문하고 있었다.
“나를 잊을 수 있던가?”
오열을 막기 위해 주먹으로 입을 틀어막아야 했다. 보고 싶어도 보고 싶지 않다고 해야 했고, 그리워서 죽을 것 같았어도 그립지 않았다고 말해야 했고, 아직도 잊지 못해서 괴로워하고 있으면서도 잊었다고 말해야 했다. 그렇게 말해야 그가 이 세상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지금이야 말로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뒤돌아서 나를 봐. 지아야.”
“…….”
지아는 차마 고개를 돌려 그를 볼 수 없었다. 그의 얼굴은 이미 그녀의 가슴에 알알이 박혀 있기에 더 본다면 헤어 나오지 못할 것 같았다. 그녀의 떨리는 어깨 위에 그렇게 잊지 못하던 커다랗고 따스한 손이 올려졌다. 그 느낌은 그녀의 온몸에 피를 돌게 하고 있었다.
“나를 봐.”
지아는 고개를 저으며 그의 손에서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단단한 품이 그녀를 가둬 버렸다. 그의 잔잔한 숨결이 느껴졌다. 그 숨결만으로도 그녀의 심장은 신호를 보내듯 떨려왔다.
“보고 싶었다.”
“…….”
“그리웠다. 미치도록 그리워서 죽을 것 같았다.”
“…….”
그의 고백에 숨 쉬는 것도 잊고 소리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입을 틀어막아야 했다.
“당신을 잊을 수가 없어서, 당신을 이렇게 안고 싶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나? 당신이 내 곁에 없는데 내가 살 수 있을 거라고 여겼나? 그래서 그렇게 도망쳤나? 나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건가? 난 당신 없으면 안 되는데, 당신이 떠난 후로 내 심장은 죽어버렸는데 그래도 그게 옳았다고 생각하나?”
보리스의 모든 말들이 그녀를 향해 원망을 쏟아내고 있었다. 모든 것을 감수하면서도 그의 곁을 떠났던 것은 그의 행복을 빌어서였다. 그런데 그는 힘들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심장이 죽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만이 아니고 그도 지옥에서 지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봇물이 터지듯 그녀의 오열은 힘들어 했다. 다리에서 힘이 풀리는 줄도 모르고 오열했다. 그가 그녀를 돌려세워 품에 안고 등을 쓸어 주는데도 그녀의 오열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nun pia, amore m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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