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제겐 지금 애인이 필요하거든요.”
제 딴에는 돌려 말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말했지만 거리는 꽤나 한적했고, 그녀의 말투는 그의 육체를 하룻밤 사겠다는 것과 별 다를 바가 없이 흘러나와 버렸다.
“지금 방금 애인라고 했습니까?”
“네.”
동욱의 미간이 잔뜩 좁혀졌다.
“전혀 알지 못하는 낯선 상대에게 갑자기 이런 말을 듣고 있는 상황이 얼마나 어이없고 황당할지 짐작 못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 지금 그쪽에게 제안을 하려는 거예요. 그리고 가능하다면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녀의 눈빛은 더할 수 없을 만큼 진지하고 간절했다. 하지만 호기심과 신중함이 뒤섞인 시선으로 그녀를 탐색하던 그의 눈빛은 그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뚜렷하게 경멸 섞인 비난의 눈빛으로 바뀌고 있었다.
“날이 저물어 어둑어둑해지고 있는 한적한 길가에서 오늘 처음 본 남자에게 제안을 하겠다고요?”
그의 한쪽 입술 꼬리가 위쪽을 향해 살짝 끌려 올라갔다 아주 천천히 제자리로 내려왔다.
“네.”
승현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 그의 시선은 아주 천천히 그녀의 얼굴을 맴돌다 쇄골을 지나쳐 가슴 아래쪽으로 흘러내렸다. 그 노골적인 시선에 승현은 온몸이 나무토막처럼 뻣뻣하게 굳어가는 것 같았다. 그는 그녀가 한 얘기를 다른 의미로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것도 상대를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애인이 되어달라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내가 지금 그쪽이 한 말을 제대로 알아들은 게 맞습니까?”
“맞아요. 애인이 필요해요, 전.”


미리보기:

“그럼 이사님 이쪽을 보시고 포즈 한번만 취해 주십시오.”
이어지는 기자의 요청에 동욱은 승현의 어깨를 감쌌던 팔을 풀고 양손으로 어깨를 잡다. 그가 마주 서자 승현도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그녀의 흑요석처럼 검은 눈동자 안에 자신의 모습이 오롯하게 담겼지만 실상 그녀가 진짜로 응시하고 있는 곳은 그가 아닌 뒤쪽의 하늘 어딘가 쯤 인 것 같았다. 동욱은 그 사실이 이유 없이 신경에 거슬렸다. 아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실 그녀와 재호 사이에 분명 무슨 일인가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에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라는 듯 자신을 꽁꽁 숨기려들고 있는 승현에게 화가 났다. 자신을 움켜잡으라고 분명하게 말을 해줬건만 왜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일까? 혼자 우뚝 서 있을 만큼 강하지도 못하면서. 차라리 독하고 이기적이기라도 하다면 이렇게 마음이 쓰이고 불안하지는 않을 텐데.
동욱은 살짝 몸을 굽혀 그녀의 뺨을 두 손으로 감쌌다. 그제야 승현의 시선이 그의 얼굴에 고정되었고, 물기가 살짝 고여 있는 그녀의 촉촉한 눈동자가 그의 눈동자와 일직선을 이뤘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마치 도자기 인형 같았다. 너무 섬세하고 투명해 세게 움켜쥐기라도 한다면 금방이라도 부서져 버릴 것처럼 연약해 보였지만, 또한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웠다. 지금까지는 일 때문에 그녀와 만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는데, 아마도 지금 이 모습은 그의 기억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 동욱은 이렇게 공공연한 자리에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녀의 모습이, 그리고 눈물이 자신의 가슴속으로 깊이 파고들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가 없었다.
“지금 당신이 운다면 사람들은 아마 내가 당신을 울린 줄 알 것 같은데. 설마 날 그런 나쁜 남자로 만들고 싶은 건 아니겠지?”
그가 좀 더 고개를 숙여 그녀의 귀에 대고 나지막한 소리로 속삭이자 승현의 입술이 그제야 위쪽을 향해 조심스럽게 반원을 그렸다. 달빛에 반짝이는 그녀의 단아한 입술이 그의 입 안에 침을 고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동그란 이마 위로 살며시 입술을 가져다 댔다. 따스한 온기가 그의 입술 전체로 퍼져나갈 무렵 그녀의 몸이 진동하듯 파르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 진동은 그의 가슴에도 잔잔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잠시만 그대로 계셔 주십시오!”
“두 분 너무 잘 어울리십니다.”
그가 입술을 떼고 다시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봤을 때 그녀의 눈동자에 가득 고여 있던 눈물이 투명한 구슬이 되어 뺨을 타고 또르르 굴러 떨어지고 있었다. 동욱은 눈물이 흘러내린 자리를 손바닥으로 감싼 채 그녀의 입술 위에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그녀의 입술은 너무나 부드럽고 뜨거웠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녀의 발꿈치가 들리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뺨을 놓아주고 두 손으로 등과 허리를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요란한 플래시는 세례는 여전히 그들을 화려하게 감싸고 있었다.

제가 그리고픈 모든 사랑을 한마디로 정의 할 수 없듯이, 아직은 제 자신도 몇 줄의 정의로는 소개를 하기가 힘이 듭니다. 하지만 언제나 제가 만들어 낸 모든 주인공들을 매 순간 미친 듯이 사랑하며 글을 쓰는 작가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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