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나와 같이 밤을 보내면 넌 세 가지를 얻게 될 거야.”

“세 가지라고?”

판관댁 주인마님의 질투로 고신당해 여자구실을 할 수 없게 된 여종, 개금

사람을 피해 산속에 혼자 사는 그녀에게 호감을 갖게 된 석재는

적극적인 구애로 개금의 상처를 알게 되고……

“첫 번째, 쾌락. 바라지 않아도 너는 느끼게 될 거야.”

“두 번째, 김 판관이 기억날 때마다 나로 꽉 차서 그놈 따위 생각도 안 나게 만들어 줄게.”

“세 번째, 이대로라면 김 판관이 네 인생의 유일한 남자가 될 거야. 억울하지 않아?”

그 밤, 온몸에 흉터 가득한 개금을 본 석재는 어둠을 틈타 김 판관댁 담을 타 넘고

며칠 후 줄지은 실종 사건으로 마을이 떠들썩해지는데……

-----------------------------------------------------------------------------

[작가 소개]

사는 것이 바쁘다 보니 머릿속에 떠오르는 많은 이야기들이 그냥 사라져 갔습니다.

이제는 잘 기억나지도 않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그렇게 흘려보낸 후 더 늦기 전에 글을 써보자고 작정했지요.

읽는 분들에게 잠시나마 즐거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

[본문 중에서]

개금의 얼굴에 냉소가 어렸다.

“연애는 서로 마음이 통해야지 혼자만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그래서 이렇게 자꾸 오는 거잖아. 얼굴도장 찍고 네 마음에 들고 싶어서.”

“아무리 그래 봤자 네가 내 마음에 들 리 없으니까 꿈 깨시지.”

그녀의 말에 석재가 쿡쿡거리며 낮게 웃었다.

“억울하네. 난 네 모든 게 마음에 드는데 말이다. 네 이름, 개금이. 열쇠라는 뜻이지? 처음 알게 된 바로 그날 넌 신기하게도 아무도 들어온 적 없는 내 마음을 열고 들어왔어. 이름처럼 말이야. 그래서인지 그 이름도 마음에 들어.”

“흔하디흔한 이름 갖고 헛소리하지 마. 그런 닭살 돋는 말도 하지 말고. 난 그런 말에 넘어갈 정도로 순진하지 않으니까.”

개금은 석재를 몰랐던 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조용하게 홀로 살던 그때로.

“와, 정말 너무한다. 너 꼬시려고 며칠이나 고심해서 생각해 낸 말인데 어떻게 그렇게 단숨에 거절을 하냐? 내 마음에 상처 생긴 거 안 보이냐, 응?”

“너랑 말장난하고 싶지 않으니까 이만 가 줘.”

개금의 무뚝뚝한 말과 거절하는 몸짓에 능글능글하던 석재의 태도가 변했다.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더니 위압적인 기운이 사방으로 퍼졌다. 석재가 개금에게 성큼 다가오더니 대뜸 그녀의 어깨를 잡으려 했다.

하지만 개금이 한발 빨랐다. 그의 손을 피한 그녀가 갑자기 품에서 칼을 꺼내 들었다. 그녀는 더 이상 이 미친놈과 실랑이를 하고 싶지 않았다.

“힘으로 밀어붙여 보니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디? 그래, 해 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라고.”

석재는 칼을 보더니 그냥 픽 웃었다.

“그걸로 뭘 하려고? 그 칼로 내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있을 것 같아?”

“아니, 잘못 알았어. 널 어떻게 하려는 게 아냐. 오래전에 스스로 맹세했다. 억지로 사내에게 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자고. 절대로 다시는, 어떤 사내도 내가 싫다는데 날 범할 수 없어. 이것으로 사내를 죽일 수는 없지만 나를 죽이는 건 아주 쉽거든.”

개금이 칼을 제 목에 갖다 댔다. 하지만 석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내가 아주 좋은 핑곗거리가 된 것 같네. 어차피 너 늘 죽고 싶어 했잖아?”

그의 말에 놀랐는지 칼을 든 개금의 손에 힘이 빠졌다.

“내가 무슨 울고 싶은 사람 뺨 쳐 주는 놈인 줄 아냐? 난 그럴 생각 없으니 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죽었다고 핑계 댈 생각 마라.”

개금이 칼을 내리고 허탈한 표정으로 석재를 바라보았다.

“왜, 정곡이 찔려서 할 말이 없냐?”

“내가 늘 죽고 싶어 한다고 누가 그래?”

“누구도 그런 말 해 주지 않았어. 나 말고 아무도 모를걸. 네 마음이 얼마나 지옥인지, 매일매일 어떻게 스스로를 죽이는 꿈을 꾸는지.”

“너는 그걸 어떻게 알지?”

“너한테 관심이 많으니까.”

석재가 개금에게 다가서더니 손에서 칼을 뺏어 멀리 치워 버렸다.

“어떻게 하면 네 마음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나 얘기 좀 해 보자.”

개금이 힘없는 눈빛으로 석재를 보았다.

“네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네가 뭔데?”

“너를 지옥에서 꺼내 줄 남자.”

그렇게 말하고는 석재가 개금에게 더욱 바싹 다가섰다.

“무슨 수로 그렇게 하겠다는 거지?”

“네가 나와 같이 잔다면 나는 너를 그 지옥에서 벗어나게 해 줄 수 있어.”

뻔뻔하게 대놓고 그런 말을 하는 석재에게 개금은 질려 버렸다. 끈질기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속이 빤히 보이는 감언이설로 날 꾀어서 네가 얻는 건 뭐지?”

“내가 얻는 것? 아주 단순해. 나는 네가 마음에 들어. 너를 안는 즐거움이야말로 내가 얻고 싶은 거지. 그래서 무슨 말이든 해서 너를 꾀고 싶지만 그저 거짓말은 아니야. 나는 정말 자신이 있으니까.”

개금은 석재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좋아. 허락하겠어. 그런 이유라면 너를 이용하겠어.”

-----------------------------------------------------------------------------

[목차]

1 염소 치는 처녀

2 사슴 문양 창살

3 도화살에 홍염살

4 첫날밤

5 빠져들다

6 화련이

7 발현된 본성

8 다시 만나서

9 사심 가득한 수사

10 이씨 부인의 말로

11 의심

12 보쌈

13 조리돌림

14 아무에게도 못 했던 이야기

15 아름다운 감옥

16 위험한 목격자

17 그녀에게 낭만이란

18 부창부수(夫唱婦隨)

19 승리자

20 너의 산에서

21 에필로그 비밀을 품은 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