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품 소개

Q. 도련님은 운명 같은 것은 믿으십니까?

A. 개떡 같은 소리 말고 일이나 하게.

- 바이헤르 가의 집사와 헤이든의 담화 中

릴리아나 나뜨완 라핀트. 너무나 평범한 그녀는 ‘우연의 신’을 만난 후 살짝 미인이 되지만, 그 대신 후작님을 차지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분야에서 완벽한 헤이든 라델프 바이헤르는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상대인데……. 희세 작가가 선사하는 유쾌한 로맨스 ‘후작님, 후작님!’

우는 건 오랜만이었는데, 그러니까, 아주 오랜만이었는데. 후작님 때문에 울다니, 부끄러워. 아무것도 아닌데. 울면 안 되는데. 모르는 척해야 하는데.

좋아하지 않으시면서, 어째서 입맞춤을 하셨어요?

좋아하지 않으시면서, 어째서 잘해주세요?

좋아하지 않으시면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기대하게, 좋아하게 하셨어요?

저는 좋아하는데. 좋아하게 되어버렸는데, 어떡하면 좋아요?

※ ‘가하 에픽’은 다양한 시대, 색다른 소재, 독특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은 도서출판 가하의 새로운 브랜드입니다. 로맨틱한 판타지가 가득한 가하 에픽, 지금 만나보세요!

2. 작가 소개

희세

조아라에서 ‘라시아’ 느긋하게 연재 중인 아직은 창창한 20대.

언니랑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강아지님과 서울에서 살고 있습니다.

호화판 외국 여행이 꿈인 소시민.

딸기와 자몽과 고기를 좋아합니다.

▣ 출간작

어느 날 일어났더니

후작님, 후작님!

▣ 출간 예정작

라시아

3. 차례

#프롤로그

#1. 이렇게 하면 후작님을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4. 미리 보기

어디선가 성가대의 아아아아아 하는 웅장한 소리가 들렸다. 앗, 이 소리는! 이런 소리가 나오는 걸로 봐서 뭔가 대단하고 위대한 것이 내려오겠지! 보통은 그러더라고요! 잔뜩 기대한 채로 목이 꺾여라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는데 누군가 말을 걸었다.

“야, 어디 보냐?”

“끄앙!”

언제나 여성스럽지 못하다는 평을 듣는 비명을 지르며 눈앞을 바라보니 반쯤 솟아오르고 있는 남자의 얼굴이 있었다. 아, 깜짝이야. 바닥에서 솟아오르는 얼굴이 정말 어……. 잘생기셨네요! 미남이시네요!

“안녕하세요, 저는 당연히 위에서 내려올 줄 알고.”

“난 반전 있는 신이니까.”

남자인데 긴 머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처음 봐서 조금 많이 신기했고, 그렇게 긴 머리의 남자가 자기가 신이라고 하니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이렇게 잘생긴 사람은 처음 보았기 때문에 대충 이 존재가 신이라는 것을 믿기로 했다. 역시 사람, 아니 신은 잘생기고 볼 일이라지! 게다가 상식적인 선에서는 있을 수 없는 것으로 알려진 무지갯빛 머리카락을 갖고 있어서 내 없던 신심을 끌어올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신성하고 막 위엄이 넘쳐서 금방이라도 무릎 꿇고 싶은 그런 감정은 안 생기는 것은 역시 가벼워 보이는 잘생긴 얼굴 탓이려나!

“아……. 그러세요.”

“후후후, 막 감동 받았지? 멋있지? 신 처음 보니까 느낌이 어때? 눈물이 막 흐를 것 같아?”

어……. 눈물, 음. 신을 처음 보면 원래 눈물이 나는 건가 싶었지만 이렇게 신이 나서 놀고 있는 걸 보니 좀 귀여우시기도 하고, 아무튼 영 눈물은 안 났다. 이렇게 울기를 바라시니 나름대로 울어주고 싶은데 남동생 같은 느낌 때문인가……. 

물론 카샨은 워낙 똑똑한 데다 이렇게 난봉난봉한 느낌이 아녀서 진짜 남동생 같다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지만.

“예에……. 어, 혹시 그……. 신님께서 저를 여기로 부르신 건가요?”

“그렇다. 내 너를 친히 이렇게 불렀느니. 영광으로 알아라. 이 동네 저 동네 자랑하고 다녀도 된다.”

“아뇨, 그럴 마음 별로 없어서……. 제가 좀 소박해서요!”

그러자 제가 신이라고 주장하는 남자가 약간 토라진 얼굴을 하더니 말했다. 아, 화려하게 자랑하고 다녔어야 했나.

“아무튼, 내가 널 이렇게 책 속에 부른 것은 너에게 임무를 내리기 위해서란다.”

“임무요? 앗, 혹시 저 성직자 만드시게요?”

성직자라면 충분히 괜찮은 직업군이었다. 스물셋에 신의 부름을 받다니, 인생에 한 번은 볕 들 날이 온다고! 이미 나이가 나이인지라 결혼할 가능성도 낮았고, 솔직히 내 평판을 고려하면 결혼할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성직자는 읽을 수 있는 책 종류가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고, 그래서 그다지 내게는 매력적인 직업은 아닌데. 조금 아쉬운 마음……. 그런 마음. 

사실 내게는 적당히 지금처럼 시간이나 죽이다가 내 몫의 상속분과 지참금을 챙겨서 시골 어느 구석에 내려가 오두막을 하나 산 후에 거기서 생을 마감하는 그런 멋진 노후계획이 있었는데……. 하지만 신이 이렇게 직접 불러주신다면야 거부할 수 없을 게 자명하고, 그러면 멋진 성직자도 괜찮을 것 같은데. 당연히 고위 성직자 정도는 시켜주시겠지요? 신의 사자라든지! 신의 사자라거나! 신의 사자일 수도!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근데 너 내가 무슨 신인지는 아니?”

그런 건 안 궁금한데. 그래도 뭐 맞혀보라는 듯이 눈을 반짝반짝거리기에 앗, 퀴즈라는 생각이 들어서 손을 번쩍 들고 대답했다.

“어……. 미모의 신?!”

솔직히 내가 본 누구보다 잘생겼기 때문에 대충 던진 건데,

“흐흐흥. 정마알? 나, 그렇게 잘생겼어? 하긴 내가 좀, 잘생기기는 했지. 미모의 신 걔 제외하고선 솔직히 내가 제일 잘생기기도 했고.”

……이분 너무 좋아하신다. 분명히 신이실 텐데 그다지 정상이 아닌 것 같아서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면서 헤실헤실 웃고만 있었다. 가까이 가면 병이 옮을지도 몰라.

“흠, 아무튼. 나는 미모의 신 같은 게 아니고……. 우연의 신이랍니다아.”

짜라란, 하고 어디서 노래가 튀어나오고 종이 가루가 날아왔다. 음, 그렇군요! 신기하다, 종이 가루가 날아와! 하면서 손으로 받아 다시 뿌리며 놀고 있자니 우연의 신님이 기분이 나빠졌는지 인상을 찌푸리면서 말씀하셨다.

“……아니, 나 우연의 신이라니까?”

다시 색종이 가루가 날아왔다. 색종이 가루는 바닥에 떨어지다가 희한하게도 사라져버렸고, 그것이 신기해서 바닥만 내려다보느라 대충 대답했다.

“네, 우연의 신님.”

“…….”

뭐지 이 분위기. 신님은 분명히 만족하지 않으셨다. 음, 뭔가 분명히 내게 바라는 반응이 있는데, 대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 건지 전혀 짐작이 안 되어서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우연의 신님을 올려다보았다. 아……. 근데 무지갯빛 머리 진짜 신기하다.

“우연의 신! 나는 우연의 신!”

색종이는 두 번 터져서 나를 또다시 괴롭게 했다. 이럴 때는 직접 묻는 게 최고지, 싶어서 뭘 해드리면 좋을까요, 하고 물었더니 주변을 지나가던 책 속의 존재들이 손을 맞부딪히는 시늉을 하기에, 오호라 이거구나 싶어서 손을 들고 힘껏 손뼉을 쳤다.

“와아 와아! 대단해요! 우연의 신님 짱짱!”

다행이다, 마음에 아주 쏙 드셨구나. 이번에도 종이 가루를 맞으면 아무리 나라도 좀 힘들 것 같았는데. 몰래 등 뒤로 엄지를 치켜들자 책 속의 존재들이 함께 엄지를 치켜들어 주었다. 

우연의 신님이 고개를 끄덕이자 어딘가에서 아~ 아~ 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어쩐지 신성한 마음이 마구 차올라서 핫, 신은 있어……! 하고 신자로 돌변할 뻔했다. 정신 차려야지.

“좋다, 우매한 인간이여.”

우매한 인간이라는 소리에 좀 기분이 상한 나는 입술을 조금 내밀고 앞으로 우연이라고 부를 거라고 속으로 투덜댔다.

“그래서 네가 해야 할 일은 뭐냐면, 그……. 남자 하나를 유혹하는 거란다.”

“……남자요?”

“음, 그렇지. 너도 잘 알 텐데, 이름은 헤이든 라델프 바이헤르라고, 너희 나라에 그, 후작 있잖아.”

엑, 하고 나는 인상을 썼다. 왜 모르겠는가. 1등 신랑감! 생김새로는 누구보다 우월해야 할 황자님을 가볍게 제친 미모에, 나라에서 제일 크고 실한 영지를 보유한 가문의 외동아들이자 후계자! 하다못해 바이헤르 가(家)를 상징하는 장미인 라 렌 로즈조차 훌륭한 돈벌이가 되는 것으로 유명하니까 재력에 대해서는 정말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잘생겼는데 돈까지 많다니, 쉽지 않은 조합인데……. 신의 총아라고 하는 걸까, 이런 걸.

게다가 자세히는 모르지만, 본인도 조금 무뚝뚝해서 그렇지 똑똑하고 성실하다고 어디서 주워들은 적이 있었다. 무엇보다 모든 여자가 원하는 바로 그 조건인 부모님의 성격이 좋다! 까지 갖췄으니 그야말로 1등 신랑감이시네요. 

아직 공작위(位)에 계시는 바이헤르 공작님은 후작님과 똑같은 어두운 금발이신데, 연보랏빛 눈이며 얼굴이며, 굉장히 잘생긴 중년이라고 여동생 카레아가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후작님, 그러니까 헤이든 라델프 바이헤르 공은 청람색 눈동자신데, 그건 사교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큰 손인 바이헤르 공작 부인이 청람색 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탄탄한 미모와 몸매를 자랑하는 바이헤르 공작 부인은 성격이 좋기로도 유명한 데다, 두말할 것 없이 최고의 센스와 사교계 매너를 갖추고 있어서 모든 이들이 갖고 싶은 시어머니로 꼽는 분이었다. 

사실은 나 또한 몇 번, 우연히 휴게실에서 만나본 기억이 있는데, 누구에게나 상냥하고 곧은 태도가 인상적이어서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분이었다. 메, 멜린다 님……! 뭐, 내가 이렇게 열렬히 그분을 존경하거나 말거나 그분은 나를 기억하지 못하시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몇 번인가 짧은 대화도 나눈 적이 있었다. 공작 부인은 좀 만나 뵙고 싶은데. 엄청 예쁘신데. 저, 사실은 팬이랍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말하지 못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그……. 좀 무리인데요.”

“아니, 왜 무리야! 네가 어디가 어때서!”

에……. 뭐 어디가 어떠냐고 물으신다면 대답해드리는 게 인지상정이지만, 그런 걸 제 입으로 말하기는 참 쑥스럽고 부끄럽고 창피하네요……. 해서, 그를 빤히 바라보자 우연이가 가만히 나를 보더니 말했다.

“……물론 조금, 아주 조금 외모가 딸리긴 하지만.”

조금? 이걸 조금이라고 말하다니, 과연 신답게 아주 자애로우시다. 카레아와 비교해서는 아주 구제불능의 수준인데.

“그냥……. 수준으로 보자면 상중하에서 중, 그 정도? 특별히 예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특별히 모난 데도 없는 적당히 둥글둥글하고 흐리멍덩한 외모라고나 할까. 짙은 갈색 머리카락에 초록색 눈동자는 어디 특별한 구석 없이 흔해빠진 색이고, 얼굴은 하얗지만, 주근깨도 심해서 분칠을 한참 하지 않으면 깨끗한 피부표현은 무리긴 하지. 제 점수는요, 아니 이게 아니고. 입술은 그냥……. 평범한 색이고 몸매는 말랐는데 가슴도 같이 말라서……. 흠. 그나마 다행인 건 팔다리가 길고 얼굴이 작다는 정도……. 키도 작은 편이고……. 그래도 희망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라, 릴리아나 나뜨완 라핀트!”

에에, 이렇게 들으니 정말로 철저하게 못생긴 기분이 들었지만, 일단 사실이기는 하고, 우리는 사실을 부정해서는 진보할 수 없……. 아무튼, 생각해보면 우리 어머니는 미인으로 유명하고, 쌍둥이 동생들도 어머니를 쏙 빼닮은 미남 미녀인데 나만 이런 걸 보면 좀 억울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평범하기 그지없는 아버지를 닮았는데. 원래 첫째 딸은 아버지를 닮는다잖아요? 아니면 말고.

“그래도 일단 얘기는 들어볼게요. ……제가 왜 필요하신 거예요?”

“그게 말이지. 난 사실 운명이랑 같이 일하는 신이거든. 우린 하나에서 둘로 갈라졌으나 결국은 하나인……. 아무튼 신계란 좀 복잡하니까 정확히 알 필요는 없는데, 서로가 필요한 존재들이야. 난 우연의 신이긴 한데, 좀 더 자세히 말하면 모든 ‘운’의 신이거든. 왜 운수 따르는 날이라거나, 오늘따라 뭐 재수가 없다거나. 이런 건 전부 내 소관이야. 그리고 운명의 신, 걔는 내 우연들을 골라서 한 사람의 운명을 쌓아가고 말이지.”

“신기하네요. 그런데요?”

“그런데 얘가 100년 전에 그러는 거야! 사실 나 없어도 잘할 수 있다고! 결국 결정하는 건 자기니까 인간들의 삶은 자기한테 달린 거라고!”

다시 생각해도 꽤 분한지, 우연은 억울한 표정으로 발길질을 크게 했다. 책 속의 신들은 똥 밟았다, 도망가자 하는 느낌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는데, 과연 발길질 한 번에 땅이 다 뒤틀리는 게……

“저기, 우연의 신님……. 저……. 우읍, 토할, 토할 거 같아요.”

“어, 미안. 음……. 아무튼 그래서 그 날 이후로 대판 싸웠거든. 근데 솔직히 이건 결판이 안 나는 싸움이잖아. 이래서야 뭐가 제대로 되겠나 싶어서, 내기로 결판을 내기로 했지.”

와 이런 걸 라임이라고 하던가. 내기로 결판을 내기로 했지. 내기로 내기로! ……이럴 때가 아니고.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300년 전에 운명의 신이 죽고 그 신체에서 태어났다는 두 명의 신들이 이렇게 철이 없어서야. 혼이 나야겠네요! ……너무 어처구니가 없고 현실감이 안 나다 보니 자꾸 이런 헛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니 같이 태어난 거면 같이 일해야지, 뭘 그걸 가지고 싸우고 있대. 운명의 신이 잘못했네. 습관적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원래 그 후작이랑 이어지게 되는 건 그, 아리아나라는 여잔데……. 네가 얠 알라나.”

“아리아나 레자르 에바르셀 영애 말씀하시는 거면, 알아요. 얼굴은 못 봤는데 소문이 워낙 무성해서요.”

얼마나 예쁘다고들 하는지. 사교계에 아직 나타나지도 않은 아가씨를 두고 온갖 소문이 무성했다. 그러고 보니 곧 데뷔하겠구나. 정식 사교계 데뷔를 한다는 건 결혼할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나 다름없었고, 그런 의미에서 이번 시즌의 다이아몬드는 그야말로 예약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소문만큼 예뻐야 가능한 이야기지만.

“음, 그 여자애거든. 그런데 걔는 운명의 신이 선택한 애고, 넌 내가 선택한 애란 말이지. 그러니까 네가 꼭 그 남자를 사로잡아서 나도 중요한 존재라는 걸 증명해줘야 해, 알았지?”

“아니 왜 저를……. 제가 엄청 상냥하게 충고해드리는 건데요. 저기, 도박은 나쁜 거예요. 특히 저처럼 별로 예쁘지도 않고 특별한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닌 데다 후작님이랑 안면도 아예 없는 쪽에 돈을 거시면 망하는 건 한 방인데. 게다가 저 사교계에서는 거의 왕따에, 곧 나이 때문에 사교계 은퇴할 때도 다가와서……. 어, 결론은……. 다른 사람 고르시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아니야! 안 돼! 꼭 너여야만 한다고! 우연들이 모인 것 중에서 운명이 선택한다고 했잖아! 다른 애들은 가능성이 쥐뿔도 없는데, 너는 그나마 운명이 선택하지 않았을 뿐이지 상당히 많이 연결되어 있어서 가장 가능성 있는 사람이란 말이야!”

나밖에는 안 되는 일. 나는 그를 멍하니, 한참을 바라보았다. 뛰어난 능력도 없고, 그렇게 예쁘지도 않은 내가 할 수 있는, 일.

“……저기, 저로 괜찮으시겠어요?”

“너라야 된단 말이야! 다른 사람은 안 돼!”

그렇다면 하고 싶었다. 해주고 싶었기 때문에, 나는 그러면 저, 힘 내볼게요. 하고 웃었다.

“정말?! 진짜지! 너 무르기 없다!”

고개를 끄덕이자 얼쑤 절쑤 신이 난 듯한 신님의 모습이 귀엽다고 하면 신성 모독인가. 저렇게 밝고 귀여운 성격이라면 조금쯤은 자신을 예쁘게 볼 수 있었을까.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한 나 자신의 모습이 작아 보여서 조금 슬퍼졌다. 저렇게 귀여우려면 뭘 먹어야 하죠!

“저기, 열심히 해줘야 해, 알았지?”

네가 지면 난 쓸모없는 신으로 다시 100년을 살아야 한단 말이야……. 우울하게 그가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릴리아나 라핀트!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말인데, 신이 쓸모가 없을 리가 없잖아요.”

인간이면 모를까, 하고 나는 웃었다. 아무튼 운이라는 걸 관장하는 엄청난 일을 맡은 건데 그렇게 무시하다니. 기왕 이렇게 된 거 열심히 해서 그, 운명의 신이라는 놈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고 싶었다. 나 열심히 할게 우연아!

“그런 의미에서 힘도 내보겠습니다!”

“음! 좋아 그 자세! 그리고 저기, 음……. 혹시 불쾌할지도 모르지만, 널 조금 바꿔도 될까?”

“……제 뭘 바꾸시게요?”

“응, 다른 건 아니고 기왕 할 거 그래도 승률이 좀 높으면 좋잖아? 얼굴이 다는 아니더라도 어……. 뭐랄까, 이렇게 순순히 참여해주는 데에 대한 보상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은데.”

“헉! 저 혹시 엄청나게 예뻐지는 거예요? 아리아나 레자르 에바르셀 영애 급으로?!”

횡재했다! 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그렇고 그런 평범한 얼굴과 몸매로 살아온 지 23년, 솔직히 콩고물에 가슴이 두근두근 뛰는 것을 숨길 수가 없었다. 자연스레 얼굴이 발그레 상기되면서 만세, 포즈를 취하자 우연의 신님의 표정이 조금 뻘쭘하게 변했다.

“어, 그게, 이건 원래 네 육체잖니?”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 육체가 뼈부터 촤르륵 바뀌어서 순식간에 어머니를 닮은 적금발을 가지게 되고, 그리고 가슴도 커지고,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즐거워하자 그가 말했다.

“그리고 넌 사실 그냥…….”

반짝반짝, 하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 어, 평범한 편이잖니? 사실 네 얼굴이라든지 등등을 전부 그 급으로 바꾸려면, 네가 네 번 정도 다시 태어나는 수밖에는…….”

내 얼굴이 자연스럽게 일그러졌다. 뭐라고요, 이 신님아.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가, 어……. 널 최선의 모습으로 만들어주는 수밖에는 없단다. 뭐, 앞트임 뒤트임, 정도? 블랙헤드 없고 주근깨도 없도록 피부도 광나게 해주마. 음……. 입술도 밸런스 맞춰 주고, 색도 예쁘게 해줄게. 절대 탈모가 일어나지 않는 건강하고 숱 많은 머리카락에 결도 늘 좋게 해주겠어!”

왜 쟤가 말할수록 왜 기분이 나빠지지……. 나는 팔짱을 끼고 신을 불퉁하게 바라보았다. 주근깨가 사라진다니 고마운 노릇이지만……

“에 또……. 가, 가슴도 좀 키워줄까?”

나는 얌전히 입고 있는 원피스의 가슴 쪽 천을 당겨 내 허허벌판을 잠시 바라보다가 말했다.

“B나 C로 될까요? 꽉 찬 B컵이나 덜 찬 C컵이라도 좋은데.”

“……키도 한 2센티미터 크게 해줄 수 있으려나…….”

“다리 길게 해주고 얼굴 작게 해주면 안 돼요?”

“아니, 뼈는 건드리기가 힘들어. 자세 교정은 해주마. 양악은 회복 기간이 너무 길어서…….”

“양악? 양악이 뭐예요?”

“암튼 그건 안 된다고. ……뭐, 이 정도가 최선인 것 같은데.”

“먹어도 먹어도 살찌지 않는 그런 체질로 만들어주면 안 되나요?”

“너 지금도 그런 체질이야. 너희 아빠 마르셨잖냐.”

하긴 가슴이 없을 뿐 비쩍 마르기는 말랐다. 유일하게 동생 카레아가 날 보고 부러워하는 건 그것뿐이니까. 그래도 요즘 대세가 마른 여자도 아니고, 내가 보기에는 글래머러스한 게 예쁘던데.

“엉덩이 살도 붙여주세요. 저도 나올 데 나오고 들어갈 데 들어간 그런 몸매 갖고 싶어요.”

“아, 너 제모도 다 해줄까?”

“우연의 신님 뭘 좀 아시네요!”

그가 엣헴, 내가 뭘 좀 아는 신이기는 하지, 하며 뻐기면서 웃더니 거울을 만들어냈다. 

“자, 이제 끝났다. 약간 예쁘장한 정도로 만족하고 살려무나.”

나는 내 모습을 보고 말했다.

“……이게 정말 제 최선인가요?”

신은 말했다.

“이응이응.”

……. 이게 최선입니까?! 정말이에요?! 말도 안 돼……! 아니, 그보다 이응이응이 뭐죠? 앙이(아니)의 줄임말인가! 응응의 줄임말일 리 없어!

그렇게 나는 책 속에서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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