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월수화: 달이 부끄러워 구름 뒤로 숨었다 해서 폐월(閉月)
미모에 꽃도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였다 하여 수화(羞花)

“파다가 참 푸르구나.”
뒷짐을 쥐고 있는 소륜이 가슴을 활짝 펴며 수평선 너머를 응시했다.
“이 푸른 바다처럼 푸르게 살고 싶었다. 이 맑은 공기와 하늘처럼 깨끗해지고 싶었다. 그 모든 것들을 초희가 쥐고 있었다. 내 바람은 고작 그 여자 하나를 얻는 것뿐이었다.”
갑판에 몰려든 관광객들을 제지하며 물리쳤다. 왕 비서는 그들을 방해 하지 않기 위해 뒤로 물러났다.
“나는 마음이 커지는 것을 느꼈다. 너의 오만과 방종도 스스럼없이 무마해 줄 만큼 넉넉했었다.”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속삭이듯 소륜이 말했다.
“다음 생에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마음 주지 않는 사내에게는 일찍 마음을 비우도록 해라.”
그리고 난간 가까이 그녀를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밀었다. 그녀가 극에 달하는 공포를 느끼기에 충분한 시간을 가지면서 그렇게 느릿하게 난간 가까이 다가가 섰다.
“밑이 보이느냐?”
이제는 확연히 그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이리 행동하는 것인지 알았다.
“두려우냐?”
새어나오는 흐느낌을 삼키며 머리를 흔들었다.
“이런 두려움을 그 여자는 몇 고비를 넘어서야 나를 만났다. 그런 여자에게 네가 다시 한 번 상처를 주었다. 내가 널 용서할 이유가 있을까?”
자꾸만 주저앉는 다리에 단단히 힘주어 그를 자극하지 않는 것에 주력했다.
“이처럼 높은 곳에 올랐어도 밑도 끝이 없이 추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했어야지. 올라오긴 힘이 들어도 내려가긴 무척 쉽다는 사실도.”
“무서우냐?”
“나는 그 여자가 내 눈앞에 없다는 사실이 무섭고 두렵다. 그 보다 더한 것은 내겐 없어. 그 상처가 곪고 곪아 터져 짓무르도록 아무도 그녀에게 힘이 되어 주지 않았어. 그런 여자가 도망치는 길 밖에 달리 무슨 일을 더 할 수 있었겠어. 죽으려던 그 마음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는 나 또한 미련하기 짝이 없는 놈이었다.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지 못하게 두 눈을 가려 두려 혈안이던 나도 같이 죽어 마땅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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