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넘게 만나고 있지만 우린 서로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잖아. 형제는 있는지, 부모님은 어떤 분들인지 등등 아는 것이 없더라고.”

“그저 만나는 사이에 그렇게 자세한 것들을 알 필요가 있나?”

“당신하고 난 어떤 관계야? 욕망을 잠재우기 위한 방편일 뿐이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오늘 좋았잖아. 갑자기 왜 돌변해서 그래?”

사내 비밀 연애 1년차 하원과 태린.

인기 많은 상사였던 하원에게 자신이 고백하여 사귀게 된 태린이기에

그의 마음이 늘 불안하다.

그러나 어린 시절 부모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입은 하원에게 결혼은 먼 얘기일 뿐

그로 인해 불안해하는 태린이 이해되지 않는다.

서로의 사랑을 믿어 의심치 않지만 미래를 믿지 못하는 두 사람에게

각자 다른 유혹이 시작되는데…….

[본문 내용 중에서]

“우리 시간을 좀 가지자.”

“무슨 시간을 가져? 헤어질 준비를 하자는 거야?”

“오버하지 좀 마. 나한테 불만이 있잖아. 내가 나를 완전히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건 미안하게 생각해. 하지만 당장 어떻게 할 수는 없어. 우리가 사귀는 사이라고 해도 말할 수 없는 것이 있어. 그건 내가 널 싫어한다거나 가볍게 여겨서가 아니야. 내게 상처이기 때문에 그래. 네 앞에서 초라해지고 싶지 않아. 연인이라고 해서 모든 것들을 공유해야 한다고 여기는 건 이기적인 생각이야.”

“그래. 당신 말이 맞아. 알았어. 당신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을게. 당신에게 어떤 상처가 있는지 몰라도 그걸 공유할 수 없다고 하니 존중해줘야겠지.”

“태린아.”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고. 더 이상 말하지 마. 지금 당신이 한 말이 당신의 마음인 거야. 딱 거기까지가 우리 관계라는 말도 되는 거지. 더 이상 이 진실에 살을 덧붙이지 말고 현실을 받아들이자고. 그러다 보면 뭔가 보이는 것이 있겠지. 당신, 원망하지 않을게. 당신이 내 생각을 해주지 못한 것처럼 나도 그랬던 것 같아. 내 앞에서 초라해지기 싫다는 당신의 말이 너무 아프다. 미안해.”

그녀는 화도 내고 사과도 했다. 자신을 완벽하게 이해한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입장을 받아들여준 것 같기는 하다.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꼬이고 비틀어진 자신으로 인해 그녀가 마음의 상처를 입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됐다. 그러고 보면 언제나 그녀가 한 발 물러서고 자신은 고집대로 다 하는 것 같았다. 툴툴거리면서도 그런 자신을 참아주는 그녀가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달리 해줄 수 있는 것은 없고 해서 그는 슬그머니 그녀의 손을 잡았다.

태린은 그에게 미소를 보였지만 마음은 쓰렸다. 자신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상처를 안고 있는 그가 안 됐기도 하지만 상처를 보이지 않으려는 것이 애달프기도 했다. 마치 자신을 믿지 못하는 마음을 엿본 것 같아 가슴 언저리가 저려왔다. 그와 자신이 연인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상의 진도는 나가지 못할 관계라고 확정지은 것 같았다. 만약에 그가 헤어지자고 한다면 어떻게 할까? 매달리지 않고 보내줄 수 있을까? 그와 헤어지고도 꿋꿋하게 살 수 있을까? 그의 말이 차갑고 냉정하게 들려 가슴은 냉각되었지만 잡고 있는 손으로는 그의 따뜻한 체온이 흘러 들어왔다.

[프로필]

김명주

출간작

「사랑의 사계」 「탐욕의 베일」 「연인의 계절」 「리바이벌 러브」

「그대 가까이」 「옥오지애」 「사랑이 전하는 말」 「투베로즈의 중독」

「서약의 잔」 「남자 가정부」 「먼저 시작된 사랑」

[목차]

1장 덜 여문 감정

2장 클로버의 의미

3장 벌어지고 있는 빈틈

4장 딱 거기까지의 마음

5장 나눌 수 없는 과거

6장 복병의 등장

7장 사랑을 흔드는 비애

8장 가슴을 가르는 충격과 절망

9장 밝혀진 진실의 단면

10장 혼란스러운 진실

11장 나누어 든 마음의 짐

12장 불확실한 오늘

13장 뜻밖의 고백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