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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오란도스의 주인 2권
김경미 지음도서출판 가하2022.07.18
| 판매정가 | : |
|---|---|
| 판매가격 | : 2,300원 |
| 적 립 금 | : 0원 |
| 파일용량 | : 602 KByte |
| 이용환경 | : PC/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타블렛 |
| 독자평점 | :  [참여수 1명] |
| 듣기기능 | :  TTS 제공 |
| ISBN | : 979-11-300-53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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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 교체 안내] (2023/02/17)
1. 작품 소개
“이렇게 간청드립니다, 대공 각하. 저를 각하의 부인으로 맞아주실 수는 없으십니까? 정부인이 아니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이디야 제국의 2황녀 세이레이아. 검은 숲의 맹약을 맺기 위해 그녀와 영혼의 쌍둥이인 이세계(異世界)의 정예연을 불러냈다.
외모 빼고는 닮은 구석을 찾기 힘든 두 사람인데, 중원에서 거칠게 살아가던 예연이 과연 황녀의 대역을 잘 해낼 수 있을까? 그리고, 세이레이아로부터 넘겨받은 기억 중 이 모멸스럽고 수치스러운 장면은 무엇이지?
“대공 각하.”
“이제는 이름을 불러도 되는 사이지 않습니까?”
“……그게 익숙하지 않아서요.”
“익숙해지도록 하십시오. 저도 마마라는 호칭 대신 세이레이아 님이라 부를 테니까요.”
2. 작가 소개
김경미
2002년 『그린 핑거』로 데뷔했다. 같은 해 『카사블랑카』를 시작으로 『야래향』, 『노란 우산』, 『청애』, 『눈 노을』, 『위험한 휴가』, 『매의 검』, 『화잠』, 『어긋난 휴가』를 냈다.
3. 차례
#외출
#건국제
#암습 (1)
#암습 (2)
4. 미리 보기
“흠…….”
세이레이아는 고개를 모로 틀며 숙녀용 안장을 노려봤다.
머릿속으로 아무리 자세를 그려봐도 어떻게 타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세이레이아의 기억 속에도 승마에 대한 것은 남아 있지 않았다. 흥분해 발을 구르는 흑마의 콧잔등을 쓰다듬으며 진정시킨 카타하르가 다가왔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마마?”
“이 안장 말인데, 일반용으로 바꿔주시면 안 될까요? 숙녀용은 익숙하지 않아서요.”
“숙녀용이 더 익숙하실 텐데요. 황궁에서 승마를 배울 때 숙녀용으로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게…… 잘 모르겠어요. 지워진 기억 부분인지 떠오르지가 않네요. 일반용이라면 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제야 카타하르는 세이레이아 황녀의 기억 중 일부가 지워졌다는 사실이 떠올렸다. 기억상실의 당사자가 너무나 태연하게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하는 탓에 그 사실을 잊어버리게 된다.
“그 차림으로는 무리입니다. 안장의 높이 때문에 치마가 말려 올라가 발목이 보일 겁니다.”
세이레이아는 오하라와 시녀들이 달라붙어 최대한 꾸며준 자신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봤다. 빳빳한 재질의 속치마가 안에서 모양을 갖춰져 옅은 하늘색의 드레스는 봉긋한 반원을 만들었다. 가슴 아래에서부터 허리까지 끈으로 복잡한 매듭을 잡은 것 외에 다른 장식이 없는 단순한 드레스였다.
“발목쯤이야 보여도 상관없지 않나요? 허벅지도 아니고…….”
“절대로 안 됩니다! 귀부인은 맨살을 함부로 내보이지 않는 법입니다. 하물며 마마께서는 황녀이십니다!”
본인이 여인이고, 황녀라는 자각은 있는 것인지 모르겠군.
카타하르는 의외로 강하게 반박했다.
그녀의 말에 저도 모르게 시선이 둥글게 부푼 치맛자락으로 내려가는 것을 참았다.
“그럼, 방법은 하나뿐이네요.”
“네?”
지금이라도 사람을 보내 갈아입을 옷을 가져오라고 해야 하나 생각하던 카타하르는 방법이라는 말에 세이레이아를 쳐다봤다. 세이레이아는 잡고 있던 고삐를 옆에 있는 기사에게 다시 넘겼다.
“잠깐 잡고 있어요.”
뻣뻣하게 굳은 기사는 대답도 하지 못하고 고삐만 움켜쥐었다. 세이레이아는 갈색 말의 안장을 풀었다. 옆으로 미끄러져 떨어지는 안장을 카타하르가 잡았다. 세이레이아는 마치 가볍게 도움닫기를 하듯 가벼운 몸놀림으로 안장 없는 말의 등에 올라탔다.
“이렇게 하면 괜찮죠?”
긴 치맛자락에 가려져 겉으로는 안장의 유무를 알 수 없었다. 말의 등을 뒤덮은 치마는 발목은 물론 구두까지 꼼꼼히 감춰주었다.
세이레이아는 깜짝 놀란 기사에게서 뺏다시피 고삐를 받고서 카타하르를 돌아봤다.
경중의 차이는 있어도 카타하르도 놀랐다. 안장 없이 말을 탄다는 생각 자체가 놀라웠다. 어지간한 승마 실력으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걱정 반, 의구심 반으로 물었다.
“안장 없이 괜찮으시겠습니까?”
세이레이아는 재미있는 소릴 들었다는 듯 피식 웃었다.
“먼저 갈게요. 따라오세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세이레이아는 말의 배를 찼다. 주인의 명을 받은 갈색 말이 땅을 박차고 앞으로 달려갔다.
카타하르는 말 등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는 세이레이아를 보고 불안을 떨쳐냈다. 그녀는 능숙한 실력으로 말을 몰고 있었다.
저 정도면 낙마해 목이 부러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군.
카타하르는 재빨리 흑마에 올랐다. 어느새 저 멀리 달리고 있는 갈색 말을 뒤쫓았다. 오랜만에 주인을 태운 흑마는 기분이 좋은 듯 힘차게 땅을 박찼다.
세이레이아는 얼굴을 때리고 지나가는 바람의 숨결을 느꼈다.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바람을 거스르며 시원한 저항감을 즐겼다. 오랜만의 자유다. 이대로 마음이 원할 때까지 끝없이 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장애물처럼 가로막고 있는 높다란 수풀더미를 쉽게 훌쩍 뛰어넘었다. 세이레이아의 기분을 읽은 갈색 말의 속도가 한층 빨라졌다. 얕은 개울가를 단숨에 넘은 말은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세상 끝까지 달릴 듯하던 세이레이아는 거칠어진 갈색 말의 숨소리에 고삐를 당겼다. 주인의 뜻을 읽은 갈색 말이 긴 울음소리를 내며 앞발을 치켜들었다. 제자리걸음을 하던 말은 머리를 흔들며 투레질을 했다. 땀범벅으로 젖은 말은 뜨거운 콧김을 뿜으며 거친 숨소리를 냈다.
“쉬. 수고했어. 네 덕분에 답답한 속이 조금 가벼워졌어. 고마워.”
상체를 숙인 세이레이아는 말의 귓가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말의 목덜미를 손바닥으로 다독이며 말을 달랬다. 그 곁으로 카타하르의 커다란 흑마가 나란히 했다.
“놀랍습니다, 황녀마마. 설마, 마마의 승마 실력이 이 정도로 뛰어날 줄은 몰랐습니다.”
말을 다독이던 세이레이아는 대답 대신 달리지 못한 앞쪽을 바라봤다. 지평선까지 내다보이는 넓은 평원이다. 하늘과 땅이 맞닿아 있는 지평선에서 세이레이아는 눈을 떼지 못했다. 그녀의 속마음을 읽은 카타하르가 침묵하는 그녀 대신 말했다.
“지평선까지 달리고 싶으십니까? 아니, 그 너머까지 달릴 수 있는 한 끝없이 달려가고 싶으신 겁니까?”
그녀의 자유로운 영혼을, 그 진면목을 처음 엿봤다.
그녀에게 산책 겸 승마를 권한 것은 황궁의 이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사실 그녀가 말을 타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그저 말을 타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는 핑계가 필요했을 뿐이다. 앞만을 바라보며 말을 달리는 그녀의 뒷모습을 쫓아 달리며 카타하르는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자신을 얽매는 답답한 족쇄를 모두 끊고 마침내 큰 날개를 활짝 펼친 모습.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갈망하던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기 직전!
카타하르는 자신도 모르게 말의 속도를 높이며 손을 뻗었다. 붙잡아야 한다! 그러나 그의 손은 텅 빈 공간만 휘저었다. 갑자기 세이레이아가 말을 멈춰 세웠기 때문이다. 아쉬운 마음을 빈주먹과 함께 접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다 빈손에서 느낀 씁쓸한 뒷맛에 불쑥 그녀에게서 읽은 본심을 찔렀다. 물으면서도 아차 싶었다. 연거푸 물으면서도 그녀의 대답은 듣지 못하겠구나 싶었다. 그답지 않은 실수였다. 그런데 세이레이아가 답했다.
“마음먹은 대로 하자면, 세상 끝인들 못 갈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달리고 달려 결국은 떠났던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한여름 밤의 짧고 허망한 꿈일지라도 출발할 때의 그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면 충분했다. 세이레이아는 어지러운 감상들을 떨쳐냈다.
당장은 아쉽지만, 지금은 목전까지 닥친 귀찮은 일부터 처리해야 했다. 그 비만 도마뱀에게 제 이름까지 걸고서 맹세하지 않았던가.
자신은 아직 본격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주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였지만, 그것도 얼추 끝났다. 결국 에반의 의중이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그녀의 움직임도 정해질 것이다.
상체를 바로 세운 세이레이아는 말 머리를 맞대고 있는 카타하르를 봤다.
“좋아요. 이제 하고 싶은 말을 해보세요. 그저 답답한 내 속을 풀어주겠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움직이지는 않으셨을 테니. 뭔가요?”
궁을 나올 때부터 사람들에게 숨기고 싶은 얘기가 있구나 짐작했다.
“이상하군요. 웬만해서는 평정심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마마께서 짜증을 보이시니 말입니다. 대신관의 어떤 말이 마마의 심기를 건드린 것입니까? 주신전의 대신관에게 마마는 그야말로 하늘에서 떨어진 보물일 텐데요.”
주신전의 대신관은 온갖 미사여구로 세이레이아의 환심을 사려 했을 텐데…….
“그러니 날 위하는 척 굴면서 온통 이용해먹을 궁리만 하고 있지요. 신녀? 하! 누굴 위한 신녀란 말입니까? 말이 좋아 신녀이지, 그저 그들의 뜻대로 휘둘러질 도구가 되라는 게 아닙니까!”
보는 이들마다 시커먼 제 속은 감추고서 그녀를 위하는 척 굴었다. 얼굴에 덮어쓴 위선적인 가면이 훤히 보일 정도로 투명하다는 것도 알지 못한 채.
“그래서 대공의 용건은 뭔가요?”
카타하르가 난처한 듯 미간을 좁혔다. 보기 싫은 고랑이 얕게 파였다.
“음, 제가 때를 잘못 맞춘 것 같군요.”
“네?”
“저 역시 마마를 이용하고자 하니까요.”
이런저런 화려한 언변 따위 없었다. 이미 상대의 계산을 알고 있는 그녀 앞에서 변죽만 친들 귀찮은 변명으로만 들릴 테니까.
“이용이요?”
되묻는 세이레이아의 목소리가 재미있는 장난감을 받은 듯 밝아졌다. 그에 반해 카타하르는 중요한 결투를 눈앞에 둔 기사처럼 엄숙했다.
“네. 정확히는 거래를 제안하는 겁니다.”
거래라는 말 때문일까. 두 사람은 동시에 얼마 되지 않은 과거의 한 조각을 떠올렸다.
세이레이아에게서 넘겨받은 기억들 중 가장 선명한 부분이었다. 그녀의 수치스럽고 절망스러웠던 감정과 함께.
세이레이아는 장난기를 지웠다.
“거래 내용은 뭐죠?”
“……마마께서도 짐작하셨다시피 아스카 대공가는 제국 건국 때부터 이어져온 이디야 황실과의 관계를 끊고자 합니다. 후대로 내려오면서 이디야 황실에 끌려가는 개로 전락한 가문의 숙원입니다. 거기에 황녀마마의, 정확히는 주신에게 선택된 맹약자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도움을 말하면서도 카타하르는 당당했다. 일방적으로 구걸하려는 것이 아니다. 도움이라 표현하긴 했지만, 이것은 앞서 말한 대로 거래라고 불러야 옳다.
“킥! 최소한 다른 자들보다 솔직하기는 하군요. 당당하게 맹약자라는 쓸데없는 이름에 붙은 힘을 이용하고 싶다고 하다니. 지금까지 제게 접근했었던 사람들 중 가장 낫네요.”
“그럼, 거래를 받아들이실 겁니까?”
카타하르는 속으로 초조해하며 대답을 기다렸다. 원래는 이렇게 서두를 생각이 아니었다. 각 세력들의 쟁탈전에 끼여 오도 가도 못하는 세이레이아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며 자연스럽게 제 요구사항을 말할 계획이었다.
1황자와 2황자, 대신관의 교묘한 술수에 빠져 옴짝달싹 못하는 처지이니, 마지막 구명줄처럼 나타난 그를 내치지 못할 거라는 계산이었다.
문제는 계획이 기억을 잃기 전의 세이레이아 황녀에게 맞춰졌다는 거다. 황도에서 다시 만난 세이레이아 황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사람이 다르면 계획도 바꿔야 한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맹약자인 세이레이아 황녀는 남동생과 함께 황궁을 벗어나려는 생각 같았다. 어느 쪽에도 개입하지 않은 채 아예 무대에서 빠져나갈 계획을 세운 듯했다.
카타하르는 다급해졌다. 만약 세이레이아가 사라진다면, 새로운 맹약자가 나타날 때까지 다시 몇백 년을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그녀의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몸이 약한 에반 황자가 기나긴 여정을 감당할 정도의 체력을 키운 다음에는 눈길도 두 번 주지 않고 황궁을 떠나버릴 것이다.
그 전에 세이레이아를 잡아야 했다. 그녀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도움을 청해야 했다. 그녀는 변명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을 속이는 것도, 자신을 마음대로 휘두르려 하는 것도 싫어한다.
“방금 제게 하신 말이 황제 폐하에 대한 반역이라는 것쯤은 당연히 알고 계시겠군요.”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세이레이아는 확인하듯 카타하르를 봤다. 그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반역이라는 낙인을 감수하고서라도 대공가는 벗어나기를 바라는 것이다.
마침 때가 좋다고 해야 하나. 제위를 노린 황자들의 권력다툼에 내전이라도 벌어진다면 아스카 대공가가 떨어져나간다 주장해도 황실에서는 당장 손쓸 수 없을 테니까. 그 기회를 대공가는 알뜰하게 사용할 것이다. 내전을 끝낸 상처투성이의 제국을 상대할 수 있도록.
생각지 못한 패가 강제로 손에 쥐여졌다. 세이레이아는 얕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내저었다. 오랜만에 비운 머릿속이 여러 경우의 수로 다시 복잡해졌다.
“지금 당장 답을 드려야 하나요?”
“건국제가 끝나기 전, 제가 다시 한번 여쭐 겁니다. 그때 답을 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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